고공행진 내각 지지율 업고 이례적 1월 해산…두 야당 ‘합체’ 중도 포지션 선점, 만만찮은 도전
[일요신문]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1월 23일 소집되는 정기국회 첫날, 중의원을 해산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총리에게 중의원 해산은 정국을 단숨에 뒤집는 카드다. 잘 사용하면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할 수 있지만, 해산 직후 총선에서 패배하면 퇴진 위기까지 몰릴 수 있다. 이번 선택이 ‘정치생명을 건 도박’으로 읽히는 이유다. 맞불도 거세다. 야권의 두 축인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은 신당 ‘중도개혁연합’을 결성하며 선거 전면전에 들어갔다. 자민당 1강 체제로의 회귀인가, 양대 블록화인가, 아니면 다당제로의 재편인가. 갈림길에 선 일본 유권자들의 선택에 관심이 쏠린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월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1월 23일 정기국회 개회와 동시에 중의원을 해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진=교도/연합뉴스#정기국회 첫날 해산, 왜 지금인가
“다카이치 사나에가 총리여도 좋은가를 주권자인 국민이 정해주기를 바란다.” 1월 19일 오후 6시, 기자회견장에 선 다카이치 총리는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내각에 대한 민심의 지지를 확인하고, 정책 추진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1월 23일 정기국회 개회와 동시에 중의원(하원)을 해산하겠다”고 밝혔다. 총선 일정도 못 박았다. 선거는 2월 8일 치러진다. 해산부터 투표까지 기간은 16일로,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 가장 짧은 선거전이 될 전망이다.
중의원 정원은 465석. 다카이치가 당수를 맡는 자민당은 현재 196석으로 제1당이지만, 단독으로는 과반에 미치지 못한다. 연립정권을 구성하는 일본유신회(34석)와 무소속(3석)까지 더해야 겨우 과반선(233석)을 넘기는 수준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과 유신회가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이번 선거의 목표”라며 “총리직 진퇴를 걸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선거가 단순한 ‘과반 방어전’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적극 재정과 안보 강화 등 다카이치 색채가 짙은 정책을 밀어붙이려면, 지금보다 확실한 의석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목표는 결국 ‘자민당 단독 과반’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내각 출범 3개월 만에 ‘중의원 해산’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높은 지지율이다. JNN이 실시한 최근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78.1%를 기록했다. 다른 조사에서도 60~80%대의 높은 수치가 이어지는 분위기다. 다케시타 세이지로 시즈오카대 교수는 “이 인기를 바탕으로 자민당이 중의원에서 단독 과반을 확보해 보다 대담한 정책을 추진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JNN이 실시한 최근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이 78.1%를 기록했다. 사진=TBS 뉴스 캡처그렇다고 해도 1월 해산은 이례적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정기국회 첫날 해산은 1966년 이후 60년 만이다. 아사히는 조기 해산을 연초에 결심한 배경으로 “연정 확대 실패와 중·일 관계 악화”를 꼽았다. 여당과 협력 가능성이 거론됐던 제2야당 국민민주당이 연립정권 참여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면서, 다카이치 총리가 의석 확대를 위해 조기 총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대외 변수도 겹쳤다. “지난 1월 6일 중국이 희토류가 포함된 이중용도(군사·민간 양용) 물자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한 점도 해산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해 정권 기반을 굳히면 대중(對中) 협상력도 달라질 수 있다는 계산이다. 총리관저 관계자는 “선거에서 이겨 강한 정권이 지속되면 중국도 (일본에 대한) 전략을 바꿔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의원 해산과 조기 총선이라는 ‘도박’에는 그만한 리스크가 따른다. 무엇보다 자민당의 지도력이 흔들리고 있다. 다카이치는 최근 5년 사이 네 번째 총리다. 전임 총리들은 지지율 하락과 각종 스캔들에 발목 잡혀, 당 총재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다.
가장 최근 전임자인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 역시 취임 직후 해산을 선택한 바 있다. 결과는 참담했다. 자민당 의석은 큰 폭으로 줄었고, 중의원 과반도 내줬다. 게다가 이번엔 상대가 더 까다롭다. 새롭게 합체한 야당이 선거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조기 총선의 변수는 한층 커졌다.
2월 8일 총선을 앞두고 나가노현 지쿠마의 한 간판 제작업체가 총선 게시물 제작으로 분주하다. 사진=교도/연합뉴스#‘연합 야권’이 흔들어놓은 선거판
정치의 세계에서 선거는 ‘사느냐 죽느냐’의 싸움터다. 권력을 쥔 쪽은 판세가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순간 기습을 감행한다. 수세에 몰린 쪽은 방어선을 재정비하고, 때로는 연합군을 꾸려 맞선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전격 해산은 2014년과 2017년 아베 신조 당시 총리의 해산극을 방불케 한다”고 전했다. 아베 전 총리는 국면 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중의원 해산과 조기 총선을 승부수로 활용해왔다. 선거에서 승리하며 자민당 1강 체제를 공고히 했고, 이를 장기집권의 동력으로 삼았다.
야권도 ‘연합’으로 맞불을 놨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은 공명당과 손잡고 신당 ‘중도개혁연합’을 출범시켰다. 중의원 148석과 24석을 합친 ‘덩치’만으로도 자민당에겐 무시하기 어려운 상대다. 일각에서는 “오랫동안 자민당을 뒷받침해 온 공명당이 사실상 입헌민주당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일부 격전 지역구에서는 자민당이 불리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신당에 대해 입헌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대표는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기울지 않겠다”며 중도 노선을 강조했다. 미국 정치학자 앤서니 다운스의 ‘중위 투표자 정리’라는 가설이 있다. 정당이 표를 최대화하려 하면 정책은 결국 ‘가운데’로 수렴한다는 이론이다. 다카이치 정권의 보수적 색채가 짙어질수록 선거의 승부처는 중도층이 된다. 중도개혁연합은 바로 그 공간을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자민당과 정면으로 맞서는 구도에 성공하면 일본 정치는 양대 블록 경쟁에 가까워질 수 있다. 공산당이나 사민당 등 진보 정당이 ‘반(反)자민당’ 기치를 내걸고 협력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건이 맞으면 ‘정권 교체’ 시나리오도 완전히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다.
노다 요시히코 입헌민주당 대표(왼쪽)와 사이토 데쓰오 공명당 대표가 1월 16일 중도개혁연합 출범을 발표했다. 사진=교도/연합뉴스다만 변수가 남아 있다. 노동조합의 지지를 받는 동시에 온라인 여론에서도 존재감을 키운 국민민주당은 중도개혁연합의 ‘러브콜’에도 합류하지 않았다. “좌우 대립 축과는 다른 자리에서 독자 노선을 택하겠다”는 판단이다. 국민민주당을 비롯해 참정당 같은 신흥 세력이 이번 선거에서도 의석을 늘린다면, 일본 정치는 다시 다당제 흐름으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중도개혁연합은 정책의 핵심 키워드로 ‘생활자(민생) 퍼스트’를 내세웠다. 일례로 “식품 소비세를 0%로 낮춘다”는 공약을 앞세워 민심을 공략한다. 고물가에 대응해 세금 부담을 낮추고 가계의 숨통을 틔우겠다는 전략이다. 정책 노선은 기존 입헌민주당보다 한층 ‘중도’로 이동했다. 입헌민주당이 원자력발전소 재가동에 부정적이었다면, 신당은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를 지향하면서도 안전성이 확인될 경우 재가동을 허용하기로 했다. 안보 분야에서도 안전보장 관련 법제를 합헌으로 평가하는 등 이전보다 보수적인 색채가 묻어난다는 평가다.
야당의 공약에 맞서 자민당도 식료품 소비세 인하를 공약에 포함하는 쪽으로 서두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식품 소비세를 현행 8%에서 2년간 0%로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은 이를 ‘재원 대책 없는 포퓰리즘’ 성격으로 보고 있다. 세계적 신용평가사 S&P는 “다카이치 총리의 감세안이 일본의 세수 기반을 지속적으로 약화시켜, 선진국 중 부채 비중이 가장 높은 일본의 재정 상황을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앞다퉈 소비세 감세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며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일본 재정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고 짚었다. 감세가 ‘민생 구호’로 시작됐지만, 자칫하면 선거가 끝난 뒤 일본 경제가 치러야 할 청구서만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자민당 1강 싫지만, 또 신당이냐” 일본 유권자들 피로감
총선 체제로 들어가면, 앞으로 2주 남짓 일본 정치는 사실상 멈춰 선다. 고물가에 허덕이는 유권자들에게 ‘전격 해산’은 어떻게 비칠까. 불과 지난해만 해도 자민당은 “전 국민에게 2만 엔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당시 이시바 총리는 “감세보다 지원금이 더 빠르게 가계에 도움이 된다”며 “올해 안에 널리 퍼지도록 하겠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이시바 정권은 오래 버티지 못했고, 지원금은 결국 현실이 되지 못했다.
뒤이어 등장한 다카이치 총리도 취임 기자회견에서 “경제 대책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강조했다. 기대를 걸었던 시민들도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해산 선언은 그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 시민은 “총리가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겠다’고 말하더니 정작 우리 삶을 위해 일하기 전에 해산해 버렸다”며 “정치인은 서민의 생활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마이니치신문에 말했다.
다카이치 내각의 지지율은 80%에 육박할 정도로 고공행진이다. 그러나 자민당의 정당 지지율은 30%대에 머물고 있다. 한 정치 저널리스트는 “다카이치 개인은 응원하고 싶지만, 비자금 문제로 흔들린 자민당 조직이 충분히 ‘정화’됐다고 느끼지 못하는 국민이 많다”고 전했다. 자민당이 단독 과반을 확보할 경우, 다시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독주하던 ‘예전의 자민당 정치’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불안이 지지율의 괴리로 나타난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불안한 표심은 어디로 향할까. 원래라면 제1야당이 그 수용처가 돼야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이 결성한 신당 ‘중도개혁연합’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차갑다. 이념과 정책보다 ‘반(反)자민당’이라는 목표 아래 급히 뭉친 인상, 다시 말해 “선거를 위한 결합”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 정치에서 ‘야당 연합’은 처음이 아니다. 과거에도 반자민당 결집을 목표로 한 신당과 연대가 여러 차례 등장했으나, 상당수는 실패의 역사였다. 아사히신문이 1월 17~18일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서도 냉소는 확인된다. 중도개혁연합이 다카이치 정권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이 될 것인지 묻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이 되지 않는다”는 응답이 69%였고, “된다”는 20%에 그쳤다. “자민당 1강은 싫지만, 또 신당이냐”는 피로감이 여론에 배어 있는 셈이다.
‘적극 재정’ 본격화 기대…주가만 웃었다
중의원 해산 소식에 일본 금융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자민당이 승리할 경우 다카이치 총리가 내세운 ‘적극 재정’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퍼지면서다. 재정 지출 확대와 감세 등 경기부양책이 힘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주가를 끌어올리는 한편, 국채 발행이 늘어 재정이 악화될 수 있다는 불안이 엔화와 채권 시장을 흔들고 있다.
조기 총선 관측 확산으로 1월 14일 닛케이225 평균주가가 사상 처음 5만 4000엔을 돌파했다. 사진=닛테레 뉴스 캡처시장에서는 주가 상승·엔저·채권 약세가 동시에 나타나는 이른바 ‘다카이치 트레이드’가 가속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일본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는 관련 보도가 나온 1월 14일 사상 처음으로 5만 4000엔을 돌파했다. 19일 종가도 5만 3583엔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요미우리신문이 새로 만든 주가지수 요미우리333 역시 19일까지 5거래일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반면 외환·채권 시장의 반응은 정반대다. 재정 지출 확대가 현실화할 경우 국채 발행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엔화는 약세를 보였고, 금리는 오르는 흐름이 나타났다. 해산 보도 이후 달러당 환율은 160엔에 근접했으며, 장기 금리의 대표 지표인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19일 한때 2.275%까지 상승했다. 1999년 2월 이후 약 27년 만의 최고치다.
채권 금리가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채권 가격이 하락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쓰비시UFJ모건스탠리증권의 무구루마 나오미는 “재정 규율에 대한 여야의 위기감 결여가 시장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