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선 고지 오르는 동안 패한 적 없어,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 공 세워

이 전 총리는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재학 시절인 1972년 10월 유신은 이 전 총리 인생을 바꿨다. 이 전 총리는 학생운동에 투신했고, 이 과정에서 두 차례 옥살이를 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조작 사건 때였다. 이 전 총리는 서울대를 14년 만에 졸업했다.
이 전 총리는 대학 졸업 후인 1988년 13대 총선 때 서울 관악구을에 출마해 당선되며 국회에 첫 발을 들였다.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총재가 이 전 총리를 영입했다. 이 전 총리는 관악구을에서만 17대까지 내리 당선되며 5선 고지에 올랐다.
이 전 총리는 정치권에서 킹 메이커이자 선거 전략가로 꼽힌다. 시작은 1995년 1회 지방선거 때였다. 그는 조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선거를 진두지휘하며 승리해냈다. 당시 이 전 총리 나이는 43세였다. 이 전 총리는 15대 대선에선 김대중 후보 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을 맡아 DJP 연합을 성공시켰다. 정권 교체를 해낸 이 전 총리는 김대중 정부 교육부 장관을 맡았다.
이 전 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이 전 총리는 ‘친노 좌장’으로 불리며 노 전 대통령을 도왔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직에 올랐다. 당시 이 전 총리는 야당 의원들과 거친 설전을 벌여 화제를 모았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 도전을 이끌었던 것도 이 전 총리였다. 문 전 대통령은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문재인 정부 때 이 전 총리는 집권당 대표를 맡아 202년 21대 총선에서 180석으로 압승했다.
이재명 대통령 정치 역정에서도 이 전 총리는 빼놓을 수 없다.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거쳐 대권에 도전하던 이 대통령은 민주당의 비주류였다. 하지만 이 전 총리는 ‘이재명 멘토’를 자처하며 직‧간접적으로 도왔다. 이 전 총리의 조직표가 이 대통령을 여러 차례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 총리가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3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는 데 공을 세운 셈이다.
국회의원 선거에 7번 나와 한 번도 지지 않았던 이 전 총리였지만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전 총리는 2012년 지역구를 세종시로 바꿔 6선에 올랐다. 하지만 2016년엔 당시 ‘김종인 지도부’가 세종시를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정하면서 사실상 이 전 총리를 공천에서 배제했다. 이 전 총리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복귀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