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이후 K-콘텐츠 위상 커졌지만 IP는 넷플릭스로…제작사 종속 우려 확산
강동한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부문 부사장(VP)은 지난 21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넥스트 온 넷플릭스 2026 코리아’ 행사에서 향후 계획을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서비스를 공식적으로 시작한 지 10년이 된 시점에 내놓은 입장이라 꽤 의미심장하다. K-콘텐츠가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영향력을 키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동행을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막대한 영향력 앞에 K-콘텐츠가 종속되고 있다는 인상도 강하다. 그들의 자본 앞에 지식재산권(IP)을 내놓고 있는 탓이다. 콘텐츠에 대한 어떤 권리도 없는 ‘무늬만 한국산’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 넷플릭스와 K-콘텐츠의 역학 관계는 점차 수평적 공생이 아닌 수직적 하청 구조를 띠는 모양새다.

넷플릭스가 처음부터 한국 시장에서 통한 것은 아니었다. 유독 자국 드라마·영화 제작 시장이 발달한 한국에서 초창기 넷플릭스는 영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러자 넷플릭스는 승부수를 띄웠다. 한국을 비롯해 글로벌 시장에서도 가장 인지도가 높은 감독 중 한 명인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에 투자했고, 당시 K-콘텐츠를 대표하던 ‘태양의 후예’를 유통했다.
K-콘텐츠의 본격적인 진격을 알린 작품은 ‘킹덤’ 시리즈였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물로, 좀비라는 익숙한 캐릭터와 한국의 사극이라는 생소한 배경을 접목시켜 글로벌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당시 주인공이 쓰고 나온 ‘갓’이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2021년 9월 공개된 ‘오징어 게임’은 게임 체인저 역할을 했다. ‘오징어 게임’이 발표된 직후 국내 반응은 미지근했다. 오히려 몇몇 자극적 설정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세계인이 열광하자 국내에서도 반응이 바뀌었다. 극 중 게임에 참가하는 이들이 입고 나온 초록색 트레이닝복이 전 세계에 물결쳤고, 실제 이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작품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역대 넷플릭스에서 가장 높은 시청수를 기록한 K-콘텐츠였다.
이후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믿고 보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학교 폭력을 소재로 한 ‘더 글로리’와 또 다른 좀비물인 ‘지금 우리 학교는’에 대한 관심도 남달랐다.
웃음 포인트와 정서가 다르기 때문에 해외 시장에서 통하기 어렵다는 예능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흑백요리사: 요리계급전쟁’이 시즌2까지 제작됐고, 짝짓기 예능인 ‘솔로지옥’도 어느덧 5번째 시즌을 맞았다. 일단 ‘K’가 붙으면 열린 마음으로 클릭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셈이다.
넷플릭스는 K-콘텐츠를 앞세워 아시아를 넘어 미주·유럽 시장까지 섭렵했다. 한국 시장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한국을 위한 선택이 아니다. 투자 이상의 가치를 일굴 수 있다는 넷플릭스가 가진 자신감의 표현이다.

엄밀히 말해 넷플릭스가 없었다면 K-콘텐츠의 글로벌화도 더딜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아시아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넷플릭스와 K-콘텐츠는 철저히 공생 관계였다. 어느 쪽이 일방적으로 득을 봤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공생 관계로서 넷플릭스가 K-콘텐츠 시장과 공평하게 성과를 나눠 가졌을까.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오리지널’로 소개되는 작품의 국적은 한국이 아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아니라 ‘메이드 인 USA’라는 뜻이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과 주연 배우 이정재가 미국을 대표하는 방송 시상식인 에미상에서 수상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오징어 게임’이 미국 콘텐츠였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 콘텐츠 시장에서는 ‘돈이 말랐다’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팬데믹을 거치며 ‘극장 가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충무로는 고사 직전에 놓였다. 그 수요를 스마트폰을 활용한 구독 서비스로 콘텐츠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이 흡수했다. 최고 수혜자는 넷플릭스였다.
인건비를 포함한 제작비 상승으로 국내 방송사는 제작 편수를 줄이고 있다. 그나마도 제작비가 낮아 소위 ‘대작’을 만들거나 거물급 스타를 섭외하기도 어렵다. 유명 배우, 작가, 감독들도 더 많은 국가에 어필할 수 있는 넷플릭스 작품을 선호한다. 넷플릭스는 각 제작사가 손해 보지 않도록 해준다. ‘대박’은 없지만 ‘손해’도 없다.
넷플릭스의 품 안에 담긴 K-콘텐츠는 서서히 끓는 냄비에 담긴 개구리와 다르지 않다. 넷플릭스가 대주는 제작비와 작은 수익에 기대는 사이, 콘텐츠에 대한 모든 권리는 넷플릭스가 거머쥔다. K-콘텐츠 시장이 아주 독특하고 독보적인 IP를 생산해내는 기지에서 넷플릭스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mast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