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정’은 민주당 내에서 개혁신당을 주창해온 신주류 강경파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의원 세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강경파 속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이들 세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차기 대권을 겨냥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 민주당의 차세대 리더군으로 떠오른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의원 (왼쪽부터) 등 개혁 3인방은 각각 대권꿈을 키우는 것으로 알려 졌다. | ||
이들은 지난 대선 직후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주장한 ‘서명파’의 핵심으로 이후 줄곧 신당 논의의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 특히 이들은 신당 창당과 관련,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전국정당 창당을 최대 목표로 설정했다. 한국정치의 최대 질곡은 지역구도고 이를 타파하지 않으면 정치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 이들에게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전국정당화는 왜 중요할까. 표면적 이유는 이 같은 신당 창당을 통해 17대 총선에서 원내 제1당을 차지해 지역구도를 타파하고 노무현 정부의 개혁정책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분석도 가능한데 그것이 바로 이들의 대권 의지와 연결된다. 즉 일단 신당을 통해 구주류에 대한 인적청산을 시도, 신당의 주도권을 장악한 뒤 이를 바탕으로 차기 대권을 겨냥한다는 것이다.
정동영 의원은 이미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만 정치권의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노무현 대통령처럼 기득권층의 다양한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천정배 신기남 의원의 경우 신당 창당을 통한 정계 개편으로 정치권의 주도 세력으로 부상하지 않을 경우 차기 후보군으로 분류되기에는 아직 정치적 비중이 미약하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세 사람의 이해가 일치하는 셈이다.
지역구도 타파가 강조되는 것도 마찬가지. 정동영, 천정배 의원은 각각 전주와 목포 출신으로 호남출신이란 지역적 한계를 갖고 있다. 영호남을 가리지 않고 지지받는 전국정당이 창당되고 그 당의 후보가 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반면 신기남 의원은 또 다른 차원에서 전국정당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신 의원은 경기중·고 출신인데다 지역구도 서울 강서갑이다. 민주당이 유지돼 호남당 색깔을 탈색하지 못할 경우 민주당의 주도세력은 호남인사가 될 수밖에 없고 대권후보 역시 호남인이거나 호남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수도권 의원은 나름대로 목소리를 높일 수는 있지만 권력의 핵심에 접근하기는 어렵다.
현재 정치적 비중으로 따지면 정 의원이 천 의원이나 신 의원을 월등히 앞서는 것으로 비쳐지지만 이들의 경력이나 지난 대선에서의 공헌에 따른 노 대통령과의 친밀도, 기타 정치적 환경 등을 감안하면 서로 결코 만만치 않은 경쟁 관계에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 의원은 전주고와 서울대 국사학과를 나온 뒤 MBC에 입사해 사회부· 정치부 기자, 특파원에 이어 뉴스 앵커를 거치며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준수한 외모와 정연한 논리 등으로 15대와 16대 총선에서 전국 최다득표라는 기록으로 당선된 뒤 이를 바탕으로 최고위원에 당선됐고 지난해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서 끝까지 선전, 전국적 지도자로 부상했다. 또 지난 대선과정에서는 노무현 후보를 헌신적으로 지원, 대선 막바지에는 차기 대권 후보로 인정받기도 했다.
천정배, 신기남 의원은 정 의원과 같이 전국적 정치인으로서 대중적 인기를 모을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간단치 않은 ‘내공’을 갖고 있다. 49세로 정 의원보다 한 살 아래인 천 의원은 호남의 소문난 수재로 목포고·서울법대를 졸업,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인권변호사로 활약하다 민변을 창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후 대한변협 인권위원 등으로 활동하다 역시 정 의원과 함께 15대 총선에서 정계에 입문했다. 재선으로서 김대중 정권 초기 경제청문회, 파업유도청문회 등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천 의원이 가장 주목받는 대목은 지난해 당내 대권후보 경선 초기에 노무현 당시 후보를 최초로 유일하게 지지했던 현역의원이라는 점이다. 천 의원이 노 대통령 당선 이후 유일하게 주 1회 독대를 하고 노 대통령의 비공식적인 요청을 받아 일본을 방문하는 등 측근 중 측근으로 부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 의원에 비해 한 살이 많은 신 의원은 ‘KS’(경기고·서울법대)출신으로 전형적인 수재다. 인권 변호사 활동과 방송활동 등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끝에 15대 총선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국민회의 대변인, 민주당 제3정조위원장 등 주요 당직을 거친 뒤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바른정치실천연구회 회장을 맡았고 마침내 당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그는 지난 대선 후보 경선과 대선 과정에서 노 후보를 일관되게 지지했고 대선 후에는 당 개혁을 촉구하며 최고위원직을 던지는 결단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천 의원과 신 의원의 경우 비록 현재는 정 의원과 같은 전국적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지만 결코 자신의 정치적 비중을 정 의원에 비해 낮게 평가하지 않는다.
세 사람 중 가장 논리적이며 차분하지만 가장 원칙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쪽은 천정배 의원이다. 당 개혁안이 성안된 뒤 구주류측이 지구당위원장직 폐지에 반발하자 솔선수범해 지구당위원장직을 포기했을 정도로 당 개혁과 신당창당에 있어서는 대표적인 원칙파로 꼽힌다. 탈당 1호로 거론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개혁신당론을 접고 ‘통합신당론’으로 회귀한 사람은 천정배 의원이었다. 천 의원의 이 같은 선택을 둘러싸고 민주당 전통 지지세력이 초강세 지역인 지역구(경기 안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천 의원의 이 같은 선회는 역시 ‘성공 가능성이 낮은 개혁적 이미지만으로 승부하는 것은 모험주의적 선택으로 차기 대권주자에게는 결코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다’라는 판단에서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정동영 의원 역시 지난달 31일 열린 당 최고위원 및 상임고문 연석회의에서 “신당파가 대선 승리 직후 민주당의 ‘선 발전적 해체’를 주장했으나 이 주장은 현재 철회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인물 신당배제론’에 대해서도 “이런 주장을 했던 몇몇 신당파의 의원들이 이미 사과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 역시 천 의원과 비슷한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이다.
신 의원의 경우 천 의원과 정 의원의 잇단 입장변화에 대해 “구주류를 설득해 신당을 하기 위한 마지막 노력이 아니겠느냐, 이해한다”며 “이런 여건하에서 개혁신당이든 통합신당이든 신당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개혁”이라고 말해 통합신당안에 사실상 동의함을 피력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개혁신당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못했고 마침내 한나라당 탈당파 의원들에 대해 “정치개혁을 위해 큰 용기를 낸 분들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신당 추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결론이 안나면 신당하려는 사람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 의원의 이 같은 어정쩡한 태도는 천 의원이나 정 의원과 다른 정치적 상황 때문이다. 호남권 출신인 두 사람과 달리 수도권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신 의원으로서는 민주당의 기득권 유지를 사실상 보장해주는 ‘통합신당론’이 천 의원이나 정 의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점들을 부각시킬 기회를 뺏어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