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들의 눈물’ 보고 서둘러 이사 중?
▲ 동양그룹은 그동안 공들여 키워온 동양레저 대신 동양메이저를 그룹의 지주회사로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현재현 회장의 외아들 승담 씨 역시 동양메이저 지분을 늘리고 있다. | ||
동양그룹이 2세 체제 구축을 위한 기반 조성에 나서고 있다. 올 초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둘째딸 경담 씨가 경영일선에 배치된 데 이어 외아들 승담 씨는 새롭게 지주회사로 떠오르고 있는 동양메이저의 지분을 사들이고 있는 것.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승담 씨는 지난 11월 들어 동양메이저 주식 4000여 주가량을 꾸준히 매입했다. 승담 씨가 주식시장에서 동양메이저 주식을 사들인 것은 2005년 8월 이후 2년여 만에 처음이다. 이로 인해 승담 씨의 동양메이저 보유 지분은 약 72만 3000주, 1.01%로 늘었다.
재계 20위권(공기업·민영화된 공기업 제외)인 동양그룹은 동양메이저 한일합섬 등 제조업 16개사와 동양종금증권 동양생명 등 금융 7개사 등 총 23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그룹 지배구조는 현재 동양레저를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삼고 동양메이저가 그 아래에 배치돼 동양캐피탈을 지배하는 형태로 돼있다. 동양종합금융증권 역시 동양레저가 지배하는 형태다.
즉 동양레저의 지분을 확보하면 다른 계열사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전형적인 지주회사 형태를 갖춰가고 있는 상태였던 것.
게다가 동양레저는 대주주인 현재현 회장이 30%를 보유 중이고 승담 씨도 20%를 갖고 있어 조금만 더 ‘작업’을 하면 승담 씨는 언제든 그룹 전체를 완벽히 지배할 수 있는 상태다. 상황이 이런데도 승담 씨가 동양레저를 제쳐두고 동양메이저 주식을 사들이고 있는 이유는 뭘까.
재계는 동양그룹의 기존 지주회사 체제의 구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동양레저가 지주회사 자리를 내놓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그동안 뒷전으로 물러선 모양새였던 동양메이저가 다시 나서 제조 및 건설, 레저를 아우르는 지주회사가 될 공산이 크다는 것. 실제로 동양메이저는 동양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많은 12개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동양그룹과 현 회장은 왜 동양레저라는 손쉬운 경영승계 방법을 두고 애써 새로운 지배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이는 동양레저가 갑작스럽게 그룹 지배구조의 핵으로 떠오르면서 발생한 부작용들과 관계가 있다. 특히 시민단체들을 비롯한 외부의 따가운 시선이 동양그룹 입장에서는 못내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동양레저는 자본금 10억 원으로 설립된 동양그룹의 초미니 비상장 계열사다. 골프장을 운영하는 이 회사는 지난 2004년 유상증자를 실시했는데 이때 현재현 회장은 6억 원이라는 비교적 적은 돈으로 동양레저의 지분 60%를 사들였다. 현 회장은 기존에 갖고 있던 지분 20%를 더해 동양레저 주식 80%를 보유하게 됐고 아들 승담 씨도 20%를 갖고 있었다. 결국 지분 100%를 현 회장 부자가 갖고 있었던 것.
문제는 이듬해 불거졌다. 동양레저는 2005년 5월 실시된 동양메이저의 유상증자에 동양그룹 계열사 가운데 유일하게 참가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당시까지 동양메이저는 동양그룹의 지주회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다.
결국 현재현 회장은 ‘단돈’ 6억 원으로 지금의 동양그룹 지배구조, 즉 동양레저를 정점으로 동양메이저가 뒤를 받치는 방식의 정점에 올라선 것이다.
이 일로 인해 현 회장은 외부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시민단체에서는 “동양레저가 제2의 글로비스나 에버랜드가 되는 것 아니냐”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도 그럴 것이 비록 동양레저의 자본금은 10억 원에 불과했지만 이 회사는 당시 갖고 있던 계열사 지분의 시가총액이 1500억 원을 넘었고 경기도 안성 등에 위치한 골프장의 땅값도 2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동양레저 지분 취득과 동양메이저 유상증자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하자 현 회장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그는 6억 원을 주고 사들였던 동양레저 지분 50% 전량을 무상으로 계열사인 동양캐피탈에 증여하고 손을 털었다.
그리고 현 회장은 올 6월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내년으로 예정된 동양생명 상장에 맞춰 그룹의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고려하겠다”는 뜻을 직접 밝혔다. 물론 동양레저를 포기하고 동양메이저를 지주회사로 올리겠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그룹내부와 재계에서는 동양메이저로의 ‘귀환’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을 통해 어떻게 승담 씨에게 경영권을 승계해주느냐다. 현재 승담 씨가 가진 동양메이저 지분은 1% 수준에 불과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승담 씨의 동양메이저 주식 확보는 창립 50주년 기념일을 전후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동양메이저는 지난 7월 말 유상증자를 통해 현 회장 일가에게 300만 주가 넘는 주식을 배정했다. 이 과정에서 승담 씨도 20만 주가량을 배정받아 주식이 52만 주에서 71만 주로 늘었다. 그리고 11월에는 아예 장내에서 현금을 주고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남은 과제는 현 회장 일가의 자금력이다. 동양메이저의 유상증자가 처음 계획되던 지난 5월 재계에서는 현 회장 일가의 현금 동원력을 의심하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현 회장 일가의 기존 동양그룹 주식은 대부분 빚을 지고 사들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번 유상증자에 참가할 여력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이 소문은 유상증자가 실권주 발생이 거의 없이 무사히 완료됨으로써 불식됐지만 앞으로의 과정도 그리 만만치는 않다. 승담 씨가 지금의 방식처럼 주식을 시장에서 직접 사들일 경우 막대한 현금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현 회장 부부가 자신들이 가진 주식을 승담 씨에게 물려줄 경우에도 엄청난 액수의 세금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학생 신분인 승담 씨가 자금을 얼마나 끌어올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게다가 설령 돈이 있다 해도 자금의 출처를 놓고 시비가 생길 소지가 있다. 현 회장 부부가 돈을 대준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재벌가에서는 부모가 주식매입 자금을 대주거나 세금을 대신 내줬다가 증여로 간주돼 막대한 세금을 얻어맞는 사례가 있다. 첩첩산중에 들어선 동양그룹이 어떤 묘안을 짜낼지 지켜 볼 일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