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와 신명이 넘쳐나는 수영 사람들의 탈놀음

구전에 따르면, 약 200년 전 좌수영의 관리가 초계 밤마리(현재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의 장터)의 대광대패들을 불러다가 놀게 하였는데, 부하들이 이를 보고 배운 데서 수영야류가 시작된 것이라 전해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영 사람들이 밤마리에서 오광대를 보고 배워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수영야류는 정초부터 일련의 준비과정을 거쳐 정월 대보름에 행해진다. 먼저 탈 제작자들은 부정을 타지 않은 신성한 장소에서 들놀음에 쓰일 탈과 여러 도구를 만든다. 특히 탈 제작이 끝나면, 마당에 탈들을 놓고 간단한 제물을 차려 고사를 지내는데 이를 ‘탈제’라고 한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놀이꾼들은 풍물패를 대동하고 지역의 산신령을 모신 동제당과 대표적인 우물(먼물샘), 그리고 최영장군 묘에 들러 고사를 지낸다. 이어 마을사람들은 가면과 의상을 갖추고 길놀이를 시작한다. 선두에 소등대(새끼줄에 등을 단 소년들의 대열)가 자리를 잡고 다음에 풍물패, 길군악대, 팔선녀, 사자 혹은 거마를 탄 수양반(우두머리 양반 역의 놀이꾼), 탈놀음패 등등의 순서로 화려하고 장대한 행렬이 풍물을 치고 춤추고 노래하며 놀이마당으로 향한다.
길놀이 행렬이 놀이마당에 도착하면 풍물패의 장단과 가락에 맞춰 덧배기춤(토속 춤의 하나)을 추며 한바탕 춤판이 벌어진다. 마을사람들은 물론 구경 온 타지방 사람들도 춤판에 나와 집단으로 허튼춤(자유롭게 추는 즉흥춤)을 추며 어울린다. 한마당 춤놀이 판이 펼쳐진 후 개복청(탈놀음 놀이꾼들이 옷을 갈아입는 장소)에서 쉬고 있던 수양반이 놀이마당에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탈놀음이 시작된다.

양반 과장에선 양반과 하인인 말뚝이가 대립하여 극이 전개된다. 말뚝이는 양반을 풍자하며 심한 모욕을 주고, 수양반만 남겨둔 채 양반들이 퇴장하면서 두 번째 과장인 영노 과장으로 이어진다. 영노는 천상에서 내려와 양반 아흔아홉을 잡아먹고 하나만 더 잡아먹으면 득천한다(하늘로 올라간다)는 상상의 동물. 영노가 무서워하는 유일한 대상은 ‘참양반’이다. 수양반은 사대부집안 운운하며 참양반을 자처하지만 결국 영노는 그를 ‘가짜 양반’으로 여기고 잡아먹고 만다. 이는 사람은 혈통과 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됨과 행실이 중요하다는 민중의식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 과장인 할미·영감 과장은 영감과 본처인 할미, 그리고 첩인 제대각시 사이의 갈등과 파국을 그려낸다. 마지막 과장인 사자무 과장은 무언극으로 진행되는데, 사자와 범이 춤추며 싸우다가 범이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영 지방이 호환(호랑이로 인한 화)이 있던 곳이라, 사자 가면을 쓰고 호랑이의 침입을 막으려는 의도에서 사자춤을 만들어 낸 것으로 추정된다. 사자를 잡귀·잡신을 쫓는 존재로 보고 벽사진경(나쁜 귀신을 쫓고 경사로운 일을 맞이함)의 의식을 춤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 민족문화 말살 정책으로 인해 연희가 중단되었던 수영야류는 광복 후 과거 수양반 역을 맡았던 최한복 선생, 말뚝이 역을 맡았던 조두영 선생에 의해 옛 모습의 탈을 복원하게 되었다. 또한 여러 연희자들의 노력과 참여를 통해 놀이가 재연되어 1971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현재 (사)수영야류보존회를 중심으로 김성율 수영야류 예능보유자(연희·가면제작·악사)와 태한영, 문명헌, 강모세, 김영석, 안귀연 전승교육사 등이 전승과 공연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자료협조=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