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봉쇄 국제 유가 급등 우려…중간선거 앞둔 트럼프 출구전략 고민

이란 정부도 하메네이 사망 소식을 공식화 했다. 이날 이란 국영방송 프레스TV와 국영통신 IRNA는 “이슬람혁명의 지도자 하메네이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공격으로 순교했다”고 보도했다. 현지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하메네이는 테헤란 집무실에서 사망했다. 이란 정부는 40일간 전국민적 추도 기간과 일주일간의 공휴일을 선포했다.
하메네이는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권력 핵심으로 부상해 1981년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1989년 초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 사망 이후 최고지도자에 올라 36년 넘게 최고지도자로서 이란을 통치했다.
하메네이 사망으로 당분간 이란 내 권력 공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대통령이 아닌 최고지도자에게 ‘절대 권력’을 부여한다. 이란의 서열 2위는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지만 그가 바로 최고지도자 역할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이란 헌법 제111조에 따르면 최고지도자 유고시 대통령, 대법원장, 그리고 ‘헌법수호위원회’ 소속 고위 성직자인 이슬람 율법학자 등 3명으로 구성된 비상위원회가 임시로 최고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은 신속히 차기 최고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하메네이는 지난해 6월 ‘12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의 압박이 거세지자 본인 유고시 권력 승계 후보자 3인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전문가들은 ‘하메네이의 오른팔’로 불린 모흐베르 전 부통령과 현재 군사·안보를 총괄하는 알리 라리자니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이 실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장기화 우려도 있다. 이스라엘은 “향후 수일간 수천 개 목표물을 타격할 것”이라며 추가 공습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28일(현지 시각)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 인터뷰에서 “장기전으로 (이란) 전체를 장악할 수 있고, 2~3일 후 (공습을) 중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란은 미국에 대한 보복 공격을 이어가며 장기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란은 이라크 등 미국 주둔 공항을 공습했다. 이슬람혁명수비대는 1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사망을 공식 확인하면서 “움라(이슬람공동체)의 이맘(이슬람 시아파의 영적지도자)을 살해한 자들을 가혹하고 결정적이며 후회하게 할 처벌을 내리겠다”며 날을 세웠다.
이란 전문가는 기존 이란 정권의 붕괴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미 싱크탱크 외교협회(CFR)의 린다 로빈슨 선임연구원은 “하메네이 제거하는 것이 곧 정권교체와 동일하지 않다. 정권의 실체가 이슬람혁명수비대 자체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으로 국제 경제도 불확실성에 놓였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자 이슬람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바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주요 산유국의 원유 수송로다.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최대 3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지나간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는 국제 유가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란은 그동안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박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실제 봉쇄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JP모건 등 글로벌 투자은행(IB)과 경제연구소들은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고 군사 움직임이 확대돼 긴장감이 지속되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 선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70% 이상 높다.
이런 배경 탓에 트럼프 대통령도 신속히 갈등 상황을 마무리할 출구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의 공습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가운데 단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있을 중간선거(연방 상·하 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고전하고 있다.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는 미국의 고물가 기조가 꼽힌다. 트럼프 정부가 내세운 상호 관세 전략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미국 현지시각) 집권 2기 출범 후 첫 국정연설에서 물가 상승에 대한 해명에 상당 시간을 투입했던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작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유가 급등으로 물가가 상승하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 우리 정부도 상황에 맞춰 대응하고 있다. 청와대는 하메네이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우리 재외국민의 안전을 위한 다각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제 부문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도 나섰다. 한국은 원유의 70.7%를 중동에서 수입하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2월 28일부터 ‘긴급대책반’을 가동 중이다. 아울러 미국이 이란을 공격한 2월 28일과 3월 1일 실물경제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자원 수급현황을 점검했다. 우리 정부가 파악한 현재 우리나라의 비축 원유는 수개월 분량이다. 만약 원유 수급 차질이 현실화하면 중동 외 물량을 도입할 예정이다.
산업부는 “향후 사태의 전개 추이와 국내 가격 동향, 선박 운항 현황 등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면서 관계 부처 및 유관기관과 공조할 계획”이라며 “비축 방출 등 비상조치를 면밀히 점검하고, 유가변동이 국내 휘발유, 가스요금 등 국민 체감 물가에 과도하게 전이되지 않도록 관리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