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장미엔 가시가 있다투자 전에 ‘보고 또 보고’
이런 창업 아이템이 있다면 누구나 ‘혹’ 하기 마련이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이러한 문구로 예비 창업자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자극, 가맹점을 개설한 뒤 수익은커녕 연락조차 되지 않는 ‘무점포 유사 프랜차이즈’ 피해 사례가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오크통 와인’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무점포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직장인 A 씨. 방송과 광고를 통해 ‘무점포 오크통 와인’ 사업을 접한 그는 상담을 위해 본사를 찾았다가 곧바로 계약을 맺었다. 1380만 원을 투자하면 특정지역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받을 수 있고, 본사에서 이미 확보해둔 대형 음식점과 레스토랑 등 위탁판매점에 지속적으로 와인을 공급, 월 300만 원 정도의 수익이 가능하다는 말에 ‘혹’했다.
A 씨는 와인을 담을 수 있는 10ℓ 크기 오크통 6개, 5ℓ짜리 와인 12팩, 와인잔 30개와 전단지 등을 공급받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전혀 달랐다. 위탁판매점으로부터의 재주문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답답한 마음에 본사에 문의를 하니 “첫술에 배부를 수 있느냐”며 “3개월 정도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퇴근 후 늦은 저녁 시간까지 위탁업체를 방문해 무료 시음 행사 등을 실시하며 매출을 올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도 매출은 전혀 변동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위탁판매점으로부터 오크통을 치워달라는 요구까지 발생했다. 알고 보니 계약 없이 본사 측에서 한 달 정도 설치해보고 찾는 사람이 없으면 치워도 된다는 말에 들여놓았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속았다’는 생각에 A 씨는 본사를 찾아가 계약 해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난 시점이어서 해지가 불가하다는 통보가 돌아왔다. A 씨는 “생각해보니 3개월 정도 장사를 해봐야 매출이 나온다며 다독거린 것이 결국 계약해지를 어렵게 하려는 꼼수였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울며 겨자 먹기로 2년 동안 사업을 유지했지만 그가 판매한 와인은 고작 8팩. 수익금은 15만 원에 불과했다.
결국 A 씨는 33명의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공정위에 본사를 고소했고 지난 1월 17일, 공정위는 ‘창업비용에 비해 큰 수익을 얻었다’며 큰 만족감을 표하는 광고가 거짓이었다고 판단,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00만 원을 부과했다. 해당 업체는 홈페이지에 관련 동영상을 삭제한 상태다.
A 씨는 “계약금이 1380만 원이지, 이 사업을 통해 실제로 피해를 본 금액은 2000만 원이 넘는다. 또 본사 이메일을 통해 확인된 계약자가 34명에 불과할 뿐 실제 계약자는 더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피해금액도 공정위에서 발표한 4억 원을 훌쩍 넘는 수준일 것”이라며 “적은 금액으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한순간에 현혹된 것이 너무도 후회스러울 뿐”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공정위 발표가 공식화되면 10여 명의 피해자들과 본사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나설 계획이다.
알려지지 않은 피해사례는 적지 않다. 이번엔 결혼하면서 아내와 함께 창업을 하기로 한 직장인 B 씨의 이야기다. 그는 괜찮은 창업 아이템을 찾던 중 신문광고를 통해 한 피자, 닭꼬치 공급 사업을 접하게 됐다. 본사와 지역 계약을 맺으면, 상품을 공급받아 해당 지역 편의점 분식점 등 위탁판매점에 제품을 독점 판매하여 수익을 얻는, 일종의 무점포 창업 아이템이었다.
본사에서는 창업비용이 780만 원으로 저렴하고, 아이들과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먹(을)거리 상품을 넓은 영업 지역에 독점으로 판매, 월 3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쉽게 벌어들일 수 있다며 B 씨를 유혹했다. 창업 초보인 B 씨가 고민하며 계약에 뜸을 들이자 본사에서는 “매출이 잘 나올 것으로 확신하는 지역이 있는데, 당장 계약을 하지 않으면 대기 중인 다른 신청자가 해당 지역을 배정받게 된다”며 B 씨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B 씨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본사로부터 소형 물품냉장고, 전단지, 피자와 닭꼬치 등 관련 상품과 물품을 공급받았다.
그런데 막상 영업을 시작한 B 씨는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본사에서 소개한 15곳의 위탁판매점이 대부분 동네의 조그만 구멍가게 슈퍼들이었던 것. 피자와 닭꼬치 판매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창고에 쌓인 재고의 유통기한까지 지나면서 상품을 전량 폐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B 씨는 본사에 창업비용 반환을 요구했지만 ‘회사도 사업을 막 시작한 터라 자금 사정이 어렵다’ ‘기다려 달라’ 등 핑계를 대며 계약금 반환을 미루기 시작했다.
화가 난 B 씨가 홈페이지와 관련 카페 등에 항의 글을 올리자 본사에서는 그에게 게시글을 삭제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놨고 결국 법적 분쟁으로까지 이어져 본사는 법원으로부터 협박 혐의로 벌금 50만 원을 부과 받았다. 하지만 창업비용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돌려받지 못한 상태다.
같은 업체와 계약한 또 다른 창업자 C 씨는 장사가 안 된다는 하소연에 본사에서 다른 품목을 추가로 들여놓을 것을 제안, 감언이설에 속아 4000만 원을 추가로 투자했다. 그래도 허사였다. 결국 가맹 해지를 원하자 본사에서는 ‘가맹금을 돌려받으려면 200만 원을 추가 입금해야 한다’는 등 또 다른 비용을 청구하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문제가 커지자 해당 업체는 잠적했다.
그런데 또 다른 피해자의 얘기에 따르면 해당 업체가 상호를 바꾸고 피자, 치킨강정, 삼겹살, CCTV 등의 품목을 새롭게 구성해 또 다른 무점포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추가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해당 업체 대리점들은 피해자 모임을 구성하고 법률 상담 등 투자금을 조금이라도 돌려받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해결이 쉽지 않을 것 같아 답답한 심정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가맹사업거래 분쟁조정협의회 조정신청 건수는 2008년 291건, 2009년 357건, 2010년 479건, 2011년 733건으로 해마다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위 소비자과 이태휘 과장은 “무점포 창업의 경우 본사 대부분이 사업 규모가 영세하고 문제가 될 경우 폐업 도주 우려가 높다. 또 이후에 취급 품목을 변경하여 새로 창업자를 모집하는 사례가 많으므로 창업자들의 보다 신중한 투자가 요구된다”고 당부했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 분쟁민원상담 곽철원 가맹거래사는 “계약서에 사인하고 본사에 입금한 뒤 사인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후회하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 그런 경우 법적인 반환절차나 분쟁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가맹거래사나 변호사 수임료 등이 추가로 부담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계약 전에 공정위에 정보공개서를 등록한 곳인지 확인하고 등록된 정보공개서를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또 법인과의 계약 외에 대표이사 개인과 연대보증 특약을 맺는 것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앞서 피해 사례는 모두 공정위에 정보공개서 등록을 하지 않은 업체들이었다.
김미영 객원기자 may424@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