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어찌할까요” 그도 전남도 ‘우왕좌왕’
▲ 윤석영이 우여곡절 끝에 박지성이 뛰고 있는 QPR로의 이적을 매듭지었다. 사진제공=전남 드래곤즈 |
11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의 탄생은 수월하지 않았다. 내내 반전의 연속이었고,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한 장면이 연출됐다. 주인공은 한국 축구의 ‘차세대 왼쪽 풀백’ 윤석영(23·전남 드래곤즈)이었다. 결국 퀸즈파크레인저스(QPR)에 둥지를 튼 윤석영이 QPR과 풀럼을 두고 벌였던 드라마틱한 이적 뒷얘기를 공개한다.
지난 24일 오후 3시20분 무렵, 갑작스레 전남 구단에서 축구 담당 기자들에게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윤석영 이적 관련 (구단) 오피셜 (발표) 나갑니다. 이메일 확인하세요.” 전남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퀸즈파크레인저스(QPR)가 윤석영의 이적에 전격적인 합의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거듭된 반전 시리즈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23일 ‘윤석영, 풀럼FC행 급물살’이라는 보도가 터졌는데, 그 이후 전남은 다른 매체들을 통해 “트라이얼(입단테스트)을 받을 수 있는지 의향을 묻는 공문이었다”며 애써 내용을 축소하려 했다. 하지만 윤석영 에이전트의 견해는 달랐다. “입단테스트가 아니었다. 사실은 윤석영이 K리그 시즌을 마친 후 오랜 시간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즉각 투입이 가능한지를 보기 위해 몸 상태를 체크하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구 해석을 놓고 전남과 에이전트의 생각이 달랐던 것이다. 또 이 공문에는 “마틴 욜 감독과 대면 미팅과 함께 입단이 성사되면 전남이 책정한 윤석영의 바이아웃(75만 달러·약 7억 9000만 원)도 충족시켜주겠다”는 문구도 삽입돼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사태는 직후에 벌어졌다. 당시 전남은 “테스트를 원치 않지만, 풀럼과의 협상은 계속 이어가겠다”는 공식 입장을 전했는데, 바로 그날(23일) 오전 윤석영의 본래 에이전트가 아닌, QPR과 연계된 다른 국내 에이전트가 QPR의 이적 제안서를 전남에 제출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실제로 22일 밤, 전남 고위층에 QPR행 의향서가 도착했고, 다음 날 이적 공문이 왔다. 풀럼보다 내용이 알찼다고 한다. 80만 파운드(약 13억 5000만 원) 이적료와 함께 23세 이하 선수들을 영입할 때 친정 팀에게 지급해야 하는 훈련보상금도 일부 채워주겠다는 얘기도 있었다. 전남은 23일 구단 입장을 통보받기 위해 광양에서 기다리던 윤석영의 에이전트를 돌려보낸 뒤 그대로 QPR행을 전격 발표해 버렸다.
▲ ‘QPR이냐 풀럼이냐.’ 고민이 그대로 묻어나는 윤석영의 트윗글. |
비슷한 시간, 태국 방콕에서 전남 선수단과 함께 동계훈련을 받던 윤석영은 QPR과 계약을 맺기 위해 런던으로 출국한 상황이었다. 선수 에이전트의 입장에서 보면 며칠 광양에 머물고 전남과 상황을 조율하려다 그냥 뒤통수를 맞은 꼴이었다. 전남 구단은 “선수 측과도 충분히 의견을 나눈 결과, QPR에 입단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윤석영은 자신의 에이전트가 아닌 다른 에이전트를 통해 팀을 알아봤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부 도의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반전의 클라이맥스는 런던 도착(25일 새벽) 이후였다. 런던히드로 국제공항에서 영국 특파원들과 인터뷰에 참석, “QPR 박지성 선배의 도움을 받아, 이영표 선배와 같은 EPL 아시아 최고 수비수로 거듭나겠다”는 발언을 한 윤석영은 돌연 자신의 SNS 트위터에 “하나님, 하루만 더 시간을 주세요. 지금 당장 (행선지를) 결정하지 못하겠습니다. 좀 더 (상황을) 되돌아보고 생각하겠습니다. 부디 제 생각을 존중해 주세요”라는 아주 의미심장한 글귀를 남겼다.
깜짝 놀랄 만한 내용이었다. 사실 이유가 있었다. 25일 오전, 풀럼은 당초 보낸 공문보다 크게 정리된 구체적인 내용의 영입 레터를 다시 전남으로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적료와 훈련보상금 등 전남이 계속 희망해온 조건도 상당히 충족시키는 제안이었다. 마침 이날은 윤석영이 QPR 입단을 위해 메디컬테스트를 받아야 하는 시점이라 하루 종일 국내 축구 팬들과 스포츠 매체들은 윤석영과 전남 측의 움직임에 촉각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전남 관계자는 “비즈니스 룰이나 상도의상, 이미 QPR과 이적을 놓고 양측 견해를 정리한 마당에 (상황을) 바꿀 수 있겠느냐”면서도 “알다시피 선수 이적은 선수의 동의가 없으면 안 된다”며 여운을 남겼다. 풀럼행의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이었다. 하지만 풀럼으로 행선지가 바뀔 경우, 전남은 지나치게 서둘러 계약을 추진하고 공식 발표를 너무 빨리 해 망신을 자초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전남으로선 윤석영이 QPR로 가야만 했던 이유였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