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유배지 신선한 역사 소재에 명절 가족 감성·배우들 강렬한 연기 조화
개봉 초기에는 1000만 관객을 예상하기 어려울 만큼 흥행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무서운 기세로 관객 몰이를 시작했다. 개봉 18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더니 개봉 24일 만에 700만 관객을 기록했다. 개봉 27일째 날인 지난 3월 2일에 900만 관객을 기록하고 다시 나흘 뒤인 3월 6일 비로소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입소문형 1000만 영화

대부분 영화는 개봉하고 10일 정도 지나면 흥행 여부가 판가름난다. 홍보 마케팅 효과가 집중된 개봉 첫 주가 지난 뒤 입소문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흥행몰이가 시작되거나 극장에서 내려갈 준비를 한다. 150여만 명의 개봉 10일째 성적만 놓고 보면 1000만 관객 신화는 불가능해 보였다.
개봉 초반 분위기는 시들했지만 입소문이 퍼지면서 흥행에 탄력이 붙는 경우도 있다. 1000만 관객 한국 영화 가운데는 ‘왕의 남자’, ‘7번방의 선물’, ‘국제시장’, ‘서울의 봄’, ‘변호인’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개봉 10일째 성적을 보면 ‘왕의 남자’(220만 7264명)만 200만 명대일 뿐, ‘7번방의 선물’(311만 29명), ‘국제시장’(318만 9621명), ‘서울의 봄’(327만 6885명), ‘변호인’(373만 1222명) 등은 모두 300만 명을 넘겼다.
개봉 10일째 관객 수가 100만 명대였음에도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주행 신화를 쓴 외화 ‘알라딘’이 다소 이례적인 케이스기는 하다. 그렇지만 ‘알라딘’도 184만 2260명으로 ‘왕과 사는 남자’보다는 개봉 10일째 관객 수가 많았다.
‘왕과 사는 남자’의 1000만 관객 돌파 첫 번째 비결은 ‘입소문’이다. 개봉 초기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을 통해 ‘재밌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본격적인 흥행 돌풍이 시작됐다. 이후 이 영화를 보지 않으면 주위와 대화가 어려워질 만큼 흥행 기세가 뜨거워져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더 늘어났다. 이를 통해 ‘왕과 사는 남자’는 한국 영화 ‘왕의 남자’와 외화 ‘알라딘’을 뛰어넘어 역대 최고의 ‘입소문형 1000만 영화’가 됐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던 이야기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한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유독 자주 소재가 되는 사건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단종과 수양대군(세조)이 얽힌 ‘계유정난’이다. 영화로는 2013년에 개봉해 91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관상’이 있고, 드라마는 MBC ‘조선왕조 500년 설중매’, KBS ‘공주의 남자’, ‘왕과 비’, JTBC ‘인수대비’ 등이 있다.
그리고 ‘왕과 사는 남자’도 계유정난을 소재로 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계유정난 자체가 아닌 그 이후 이야기다. 물론 당시를 그린 대하드라마들도 계유정난 이전과 이후를 폭넓게 다루고 있지만 대부분 궁궐이 중심이다.
반면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 산골 마을 광천골 청령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다 보니 세조(수양대군)는 영화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사육신 사건 이후 노산군으로 강등돼 유배를 간 단종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4개월여를 다뤘다. 죽음을 앞둔 단종이 촌장 엄흥도 등 광천골 사람들과 깊은 인연을 맺는 이야기가 영화의 핵심이다.
단종이 유배지에서 보낸 4개월 동안을 다룬 기록이 많지 않아 영화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창작된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장항준 감독과 황성구 작가는 역사적인 기록과 야사 등을 기반으로 탄탄한 스토리를 완성했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는 부분이 ‘왕과 사는 남자’의 두 번째 흥행 비결이다.
#명절 연휴에 어울리는 따뜻한 가족 영화

아무래도 명절 연휴에는 관객들이 따뜻한 가족 영화를 선호한다. ‘왕과 사는 남자’는 비정한 정치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지만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유배지로 온 단종과 광천골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려냈다.
계유정난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 늘 중요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한명회만 유일한 악역으로 등장한다. 계유정난의 두 축인 세조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기존 작품들보다 더 강렬한 이미지의 한명회를 악역으로 내세워 이야기의 축으로 활용했지만 다른 캐릭터는 모두 선하다. 선한 사람들이 따뜻한 인연을 이어가지만 결말은 비극이다. 사실 관객이라면 누구나 단종의 죽음이라는 결말은 이미 알고 극장을 찾는데 이 영화의 핵심은 그 과정이다. 그러다 보니 ‘왕과 사는 남자’는 결말보다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얘기하는 게 스포일러인 영화가 됐다.
장항준 감독 고유의 코미디까지 더해져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초반부와 중반부는 따스함과 웃음으로 채워지지만, 종반부에선 슬픔과 연민의 감정이 관객들을 자극한다. 관객들을 울리기 위해 작정하고 덤벼드는 슬픈 영화들과 전혀 다른 감정선을 자극해 관객들의 눈물샘을 건드린다.
#유해진과 유지태의 아우라에 더해진 박지훈의 눈빛

유해진은 그동안 꾸준히 보여준 자신의 연기력을 이번에도 여지없이 보여줬다. ‘유해진이 유해진했다’는 얘기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정말 조선시대 산골마을 촌장 같아 보이는 외모도 한몫했다. 유지태의 한명회 역할 캐스팅은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기존 드라마나 영화 속 한명회와 전혀 다른 이미지기 때문인데 실제 역사 기록에는 한명회가 건장한 체격에 무예가 출중했다고 서술돼 있다. 유지태가 만들어 낸 ‘건장한 체격에 무예가 출중한 한명회’ 캐릭터는 영화 속 단 한 명의 강력한 악역으로 완벽하게 형상화했다.
‘왕과 사는 남자’의 진정한 발견은 박지훈이다. Mnet ‘프로듀스 101 시즌2’를 통해 Wanna One으로 데뷔한 뒤 배우로 변신한 박지훈은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영웅’ 시리즈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영화 개봉 당시만 해도 대중에 많이 익숙한 배우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탄탄한 연기력으로 단종 역할을 소화하며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로 거듭났다. 특히 극의 흐름에 따른 단종의 내면 변화를 그려낸 눈빛 연기로 호평받고 있다.
김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