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계 공주 대신 600년 전 방계 남성 혈통으로 계승’ 비판…여성 일왕 찬성 70% 넘지만 ‘정치적 부담’ 탓 외면

두 번째는 옛 왕족 가문의 남성을 양자로 받아들여 왕족 수를 보충하는 방안이다. 자민당과 일본유신회가 연립정권 합의문에서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내용이기도 하다. 대상은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15세 이상의 남계 남성으로 제한된다. 양자로 들어온 당사자에게는 왕위 계승권이 없지만, 이후 태어난 아들에게는 계승권이 인정된다. 당장의 왕족 감소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남계 남성 중심의 계승 원칙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까지 마련한 셈이다.

현지에서는 “직계 공주보다 먼 방계 혈통을 우선시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요미우리신문도 이번 개정을 두고 “국민과 상징적 일왕의 유대를 무시한 채 너무 많은 결함을 안고 추진한 난폭한 제도 변경”이라고 평가했다.
개정안의 출발점은 2017년이었다. 당시 국회는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 퇴위를 허용하는 특례법을 제정하면서 정부에 ‘안정적인 왕위 계승 방안’과 ‘여성 왕족 문제’를 폭넓게 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9년 만에 나온 답은 왕족 수를 늘리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여성의 왕위 계승은 아예 논의 대상에서 빠졌고, 그 자리를 옛 왕족 가문의 남성을 양자로 들이는 방안이 대신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처럼 높은 찬성 여론에도 정치권이 움직이지 않는 배경으로 ‘정치적 부담’을 꼽았다. 자민당의 핵심 지지 기반인 보수단체 ‘일본회의’와 ‘신사본청’이 남계 남성에 의한 왕위 계승 원칙을 강하게 지지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한 자민당 중진 의원은 마이니치신문에 “지지자들과 대화할 때는 ‘아이코 공주가 일왕이 되는 길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선거 유세차에 올라 그것을 주장할 용기는 없다”고 털어놨다.
여성 일왕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이라고 해도, 그 여론이 곧바로 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왕실 문제는 물가나 임금처럼 유권자의 선택을 좌우하는 핵심 현안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자민당으로서는 핵심 지지층의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문제를 앞장서 꺼낼 정치적 유인이 크지 않은 셈이다.

이후 자민당은 여성의 왕위 계승 문제를 되도록 꺼내지 않는 쪽을 택했다. 보수층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데다 왕실 구성원 개인이 정치적 논쟁의 한복판에 설 수 있다는 우려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이번 개정에서도 비교적 합의하기 쉬운 선까지만 나아갔다. 여성 왕족에게는 결혼 뒤에도 왕실에 남을 길을 열어주고, 옛 왕족 출신 남성에게는 왕실로 돌아올 통로를 마련했지만, 여성이 왕위를 계승할 길은 열리지 않았다.
NHK는 이번 입법 과정을 두고 “조용하고 차분한 논의를 원칙으로 한다던 당초 취지와는 거리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중의원 선거 압승 이후 정부·여당은 회기 내 처리를 목표로 법안을 밀어붙였고, 국회 막판에는 다른 법안 처리를 위한 여야 협상의 카드로 활용됐다는 것이다.

아사히뉴스네트워크(ANN)의 조사에서도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10.9%p 내린 49.2%였다. 아사히신문은 “왕실전범 개정이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친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분석했다. “충분한 논의 없이 주요 정책을 밀어붙인다는 다카이치 내각의 이미지가 이번 개정을 계기로 더욱 선명해졌다”는 평가다.
79년 만의 개정으로 일본 왕실전범은 큰 변화를 맞았다. 하지만 남계 남성 중심의 왕위 계승 원칙은 그대로 남았다. ‘왜 여성은 왕위를 계승할 수 없는가’ ‘왜 남계 남성만을 고집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끝내 쟁점이 되지 못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