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치밀한 계획 범행 아니고 참회 모습 보여” 징역 35년으로 감형…시민모임 “정인이 사건과 달라진 것 없어” 반발

A 씨는 2025년 10월 여수시 자택에서 생후 133일 된 아들을 물을 틀어 놓은 욕조에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2025년 8월부터 약 두 달간 아들을 폭행하고 침대에 던지는 등 수차례 학대한 혐의도 함께 받는다.
1심을 심리한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은 "자신의 행위로 생후 4개월 아동이 사망할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하고도 이를 용인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면서 A 씨에게 사형을 제외하면 사실상 최고형인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현행법상 아동학대살해 혐의가 인정될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이전까지 성폭행이나 사체은닉 등 별도의 중대범죄가 결합되지 않은 아동학대살해 사건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된 사례는 없었다. 2021년 아동학대살해죄 신설 이후 별도의 중대범죄 혐의가 결합되지 않은 사건 중에서는 A 씨에 대한 순천지원의 1심 판결이 가장 무거운 처벌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A 씨의 미필적 살해 고의는 인정하면서도, 사전에 치밀하게 살해를 계획했거나 해든이의 사망을 적극적으로 의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원심의 무기징역형이 지나치게 무겁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무기징역형을 선고할 때에는 범행의 계획성 등 양형 조건을 철저히 심리해야 한다"면서 "(A 씨의 범행은) 인간 존엄을 무참히 짓밟은 반사회적 범행이지만,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했다고 볼 수 없고 (A 씨가) 참회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판결 결과가 나오자 시민모임 '프리해든스'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아이가 반복적으로 고통받는 모습이 증거로 확인됐는데 살해 의도가 없었다고 판단한 것과 '정인이 사건'과 달라진 것 없이 징역 35년으로 감형된 사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인이 사건은 30대 양모 장 아무개 씨가 16개월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 끝에 숨지게 한 사건으로 장 씨는 살인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으나 항소심에선 징역 35년으로 감형됐고, 이후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항소심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정인이 사건 범행 당시에는 아동학대살해죄가 신설되기 전이어서 장 씨에게 살인죄가 적용됐다.
프리해든스 측은 판결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제2의 해든이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프리해든스는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24개월 미만 영유아 건강검진 의무화를 촉구해 왔으며 권 의원도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반복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영유아를 위기아동으로 우선 선정해 담당 공무원이 직접 소재와 안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한편, 해든이 사건의 경찰 수사 당시에는 A 씨에게 아동학대중상해 혐의가 적용됐다. 경찰은 A 씨 집에 설치된 홈캠을 통해 학대 정황을 발견했으나, 사건 당일 영상에는 A 씨가 등장하지 않아 살해 의도가 없었다고 보고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송치 전 홈캠 확보 등 보완수사를 요구한 검찰은 경찰 수사 기록과 4800여 개의 홈캠 파일 음성 분석을 통해 A 씨의 해든이 욕조 방치 당일 살해 고의를 뒷받침하는 정황을 확인, 아동학대살해로 죄명을 바꿔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A 씨는 "너 같은 건 없어졌으면 좋겠다. 죽어버리라"는 취지로 욕설과 함께 폭행을 이어갔던 것으로 조사됐다.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을 구형한 검찰이 상고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검찰이 법원 판단에 불복할 경우 항소심 판결서 송달 뒤 7일 이내로 상고해야 한다.
다만 대법원 판례상 검찰은 원심의 형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양형 부당'만을 이유로 상고할 수 없다. 검찰이 상고할 경우 양형 자체가 아닌 별도의 법리 오해나 절차상 위법 등을 주장할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상고 여부와 관련해 아직 결정된 사항은 없다"면서 "현재까지는 법원 판결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