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한동훈 등과의 합종연횡 의문부호…장동혁 버틸수록 이준석 선택지 좁아질 전망

갑작스러운 발표였지만 이 전 대표 사퇴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었다. 6·3 지방선거에서 개혁신당은 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 등을 비롯한 다수의 후보를 냈으나 기초의원 1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했던 정이한 후보가 피습 자작극 혐의로 구속기소되면서 개혁신당 이미지는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이 전 대표는 선거 이후 쇄신 작업을 추진하다 당내 동의를 얻어내지 못하자 사퇴 결심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인 동탄을 중심으로 경기 남부에 개혁신당 후보들이 집중 출마, 내후년 총선에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승리를 낚자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몇몇 구성원들이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이 과정에서 의견 충돌이 벌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천하람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도 적극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는 8월 3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전 대표의 경기 남부 벨트 총선 출마 전략을 두고 갈등이 있었다는 얘기에 대해 “공식적인 쇄신안으로 논의되는 단계는 아니었고 갈등은 없었다”며 “이 (전) 대표가 아이디어 차원에서 여러 차례 언급하긴 했지만 구성원들 사이에서 충분한 소통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개혁신당은 이 전 대표 사퇴 이후 나돌고 있는 국민의힘과의 합당설에 대해서는 강력 부인하고 있다. 천하람 원내대표는 8월 31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기득권과의 불의한 타협 대신 외로운 홀로서기를 계속할 것”이라며 국민의힘으로의 흡수 합당설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정가에선 ‘이준석 없는 개혁신당’의 존속에 대한 의문부호가 꼬리를 문다. 개혁신당 당헌·당규는 당 대표 궐위 시 60일 이내에 임시전당대회를 거쳐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 전 대표의 뒤를 이을 만한 간판은 눈에 띄지 않는다. 더욱이 구성원들과의 의견 조율 과정에서 감정이 상해 자리를 떠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전 대표가 다시 당의 중심을 잡아주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표가 개혁신당이 아닌 보수의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해석이 따라붙는 배경이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오랜 정치적 격언을 대입해볼 때 이 전 대표가 이끄는 개혁신당 세력은 우선 ‘반 장동혁 세력’과 손잡은 뒤, 새로운 보수라는 구호를 내걸고 빅텐트를 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장동혁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 유승민 전 의원, 한동훈 무소속 의원과 힘을 합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특히 연일 보수 통합론을 띄우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이 반장 빅텐트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전 대표와는 친분이 두터운 유 전 의원은 최근 5선 권영세 의원을 비롯해 다선 의원들(김기현·윤재옥·박성민 의원 등)을 집중적으로 만나면서 정가의 주목을 받았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준석 전 대표는 어차피 국민의힘으로 복귀해야 할 터이고 이제 그 때가 왔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보수 분열을 일으키고 결국 대선 패배를 야기했다는 평가가 보수 진영에서 나온다. 선명노선을 내세우는 장동혁 대표가 받기는 어렵다”면서 “이 전 대표로선 어떤 방식으로든 국민의힘 상당수 구성원들을 흡수해 자신의 대주주 지분이 보장되는 새로운 보수 세력을 만드는 중심이 되려고 할 것”이라고 점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소추(2016년 12월 9일)가 이뤄지자 보수진영은 산산조각이 났고 이 과정에서 큰집 새누리당에서 바른정당이 분가를 했다. 탄핵에 찬성 표결한 당시 새누리당 의원 중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이 집단 탈당해 바른정당을 만들었다. 유승민 전 의원은 그 핵심이었다.
2017년 1월 24일 창당한 바른정당은 처음에는 기세가 등등했다. 31명의 국회의원으로 단숨에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했고 보수정당 사상 최대 규모 분리독립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그해 5월 치러진 대선에선 유 전 의원이 후보로 나섰다. 하지만 바른정당은 출발과 동시에 내분이 일어나면서 비틀거렸다.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꿔 홍준표 대선 후보를 선출하자 현역 의원들의 무더기 탈당 사태가 나왔다. 유승민 대선 후보 사퇴 요구까지 분출했다.
초반부터 힘을 상실한 정당이 잘될 리 없었다. 유 전 의원은 대선에서 6.76%라는 저조한 득표율로 참패했다. 보수 분열 책임에 배신자 경로까지 더욱 강화됐다. 결국 바른정당은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둔 2월 안철수의 국민의당과 합당, 바른미래당으로 당명을 바꾸면서 소멸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그의 지지자들을 이끌고 이후 바른미래당에서 다시 나와 새로운보수당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2020년 총선을 앞둔 그해 2월 큰집 자유한국당과 힘을 합쳐 ‘미래통합당’ 간판으로 다시 뭉쳤다. 사실상 무조건 항복이었고 분가한 지 만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작은집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대선 후보가 있어야 했다. 바른정당이 분가한 이유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바른정당 대선 후보로 나온다는 전제 위에서였다. 그런데 반 전 총장은 대선 출마를 위해 2017년 1월 귀국했다가 온갖 구설에 시달리다 한 달도 되지 않아 대선을 포기했다. 바른정당이 좌초하는 순간이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이를 시인했다. 그는 2018년 8월 23일 발간된 ‘개혁보수의 길’이라는 제목의 바른정당 백서에서 “반기문이 중간에 주저앉아버리니 김무성·김성태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닭 쫓던 개 비슷하게 돼서 새로운 당을 만들 의욕이 없어 보였다”고 회고했다. 그리고는 “반기문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새누리당(한국당의 전신)을 나왔던 사람들은 대선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반기문 대통령 세우기에 실패한 사람들이 3~4월 선거는 하나도 안 도와주고, 계속 주력한 게 ‘홍준표 후보와 단일화를 하라, 아니면 단일화 없이 그냥 홍 후보에게 갖다 바치자’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단일화가 안 되고 (대선 후보를) 홍 후보에게 갖다 바치려고 했는데 무산되자 이 사람들이 탈당했다.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13명이 탈당했다”며 “어느 정당의 선거판에도 그런 적이 없었다”고 허탈해했다.
바른정당에도 몸담았던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대선 후보가 없는 정당은 불임정당인데 바른정당이 그 처지였다. 무조건 항복으로 원대 복귀했다”며 “이준석 전 대표나 오세훈 시장, 유승민 전 의원, 한동훈 무소속 의원 등이 뭉친다 해도 이들이 차기 대선의 확실한 당선감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서 보수 지각 변동이 일어나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닥치고 공격이라던 장 대표는 최근 숨고르기를 하는 여유까지 보이고 있다. 당협위원장 당원 직선제에 대한 밀어붙이기 대신 일보 후퇴 결정을 내린 게 대표적 사례다.
국민의힘은 8월 31일 당협위원장 당원 직선제 전면 도입 대신 단계적 시행으로 결론 내리고, 당협위원장이 공석인 34곳부터 당원 직선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날로 임기가 끝나는 전체 당협위원장을 책임당원 투표를 통해 전면 재선출하려던 방안에 대해 현역 의원들의 반대가 이어지자 이를 받아들였다.
장동혁 대표가 한발 물러선 것은 자신의 지위가 점차 공고해져 가는데 굳이 파찰음을 키울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읽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8월 말 국민의힘 연찬회에 참석해 당대표 중심의 단결을 사실상 주문, 자신의 정통성이 더 한층 강화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대구·경북(TK)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한 의원은 “이준석 전 대표와 한동훈 의원은 비슷한 이미지여서 무조건 경쟁 관계가 될 수밖에 없어 함께 뭉치기 어렵다”며 “이런 점을 감안하면 개혁신당발 보수 빅뱅이 나오기는 힘들고 장 대표 외에는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는 형편이라 국민의힘 의원들도 지금은 새집을 지을 생각은커녕 새집이 만들어져도 그 곳에 입주할 생각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병준 언론인 journali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