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국과 손잡고 막혔던 ‘돈줄’ 뚫렸지만…지속 가능한 성장 하려면 대미 관계 개선 필수

2023년부터 북한 경제는 전환점을 맞았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제사회 제재를 받게 된 러시아가 같은 제재국인 북한에 손을 내밀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한 핵심 전력을 러시아에 파병했다. 파병과 동시에 북한 방산업계도 활기를 띠었다. 러시아의 부족한 무기 재고의 ‘공급망’으로 북한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발 공습에 북한 탄도미사일이 쓰이고 있다는 취지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는 부족한 무기를 북한으로부터 공급받으며 전쟁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방산 일부 분야에선 러시아의 기술 이전 작업도 활발하게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7월 한국은행은 북한의 2025년 실질 GDP가 전년도 대비 3.5% 증가한 것으로 추산했다. 2023년 3.1%, 2024년 3.7% 성장을 이룬 데 이어 3년 연속 3%대 성장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앞서 한국은행 추계치에 따르면 북한 GDP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했다. 러시아 전쟁 전후로 북한 경제성장률이 확연히 대비되는 상황이다.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은 북한이 2023년 8월부터 2025년 말까지 러시아 파병과 군수물자 수출로 얻은 직접 수익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76억 7000만 달러(10조 8223억 원)~144억 달러(20조 3184억 원)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해당 금액은 북한이 실제로 러시아로부터 지급받은 현금 규모가 아니라, 러시아로 건너간 포탄과 미사일 등 무기의 가치를 달러로 환산한 수치다. 따라서 북한이 얻은 경제적 이익은 이보다 클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INSS는 병력 파견에 대한 수입을 6억 2000만 달러(8748억 원) 규모로 추산했다.

4월 18일 탈중앙화금융(Defi) 플랫폼 ‘켈프 다오(DAO)’는 2억 9000만 달러 규모 가상화폐 해킹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켈프 다오에 인프라를 공급하는 업체 ‘레이어 제로’는 해당 해킹이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으로 알려진 라자루스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5월 3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인터뷰 형식 대담을 통해 “미국이 ‘사이버 위협’에 대해 여론화하는 것은 조선 적대정책의 연장”이라며 “정치적 목적에서 출발한 허위정보 유포로 우리 국가(북한) 명성에 먹칠을 하기 위한 황당무계한 중상모략”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이 언론과 관련 단체를 내세우며 존재하지도 않는 우리의 ‘사이버 위협’에 대해 떠들면서 국제사회에 그릇된 대조선(대북) 인식을 확산해보려고 시도하고 있다”며 “전 지구적인 정보기술 하부구조를 통제권 아래 두고 다른 나라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사이버 공격을 일삼고 있는 미국이 스스로를 ‘피해자’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누가 봐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도 반박했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북한의 ‘수익형 해킹’ 수법은 AI와 딥페이크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고도화되고 있다”며 “국제 범죄인 해킹은 북한의 대표적인 대외 공작이며, 공작을 공작이라고 인정하는 정부는 전 세계적으로 없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빠르게 북한 주요 외화벌이 수단으로 자리 잡은 해킹 범죄는 근본적으로 리스크를 늘 안고 있는 북한 입장에선 경제 상황이 좋아져도 포기할 수 없는 요소”라며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는 것을 전제로 돈줄을 마련해야 하는 북한이 가진 ‘최후의 보루’가 바로 해킹”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북한은 중국이 텅스텐을 수출 규제하면서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텅스텐 업계 ‘최대 물주’인 중국이 수출을 제한하면서, 텅스텐 단가가 치솟았다. 북한은 수출 물량을 유지하면서, 가격 상승에 따른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북한의 텅스텐 수출은 앞서 언급한 러시아와 밀착, 가상화폐 해킹 등 분야와 비교하면 북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는 평가다.

소식통은 “김정은이 집권 15년 차에 접어드는 상황에서 러시아와 손을 맞잡고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건 그 다음”이라며 “북한의 호황이 지속 가능한 성장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물음표가 달려 있다”고 했다.
소식통은 “‘내수용 방산’이 수출로 이어지며 생긴 자금으로 인한 성장은 북한 경제구조의 근본적 개선으로 보기 어렵다”며 “러시아로부터 확보한 자금 대부분 역시 핵무기 개발 고도화에 재투자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경제 호황이 ‘김정은의 횡재수’에 그칠 것이라고 바라보는 시선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결국 북한이 최근 맞이한 경제 호황에 지속 가능성을 불어 넣으려면 대미관계 개선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김정은 입장에서도 트럼프 집권 시기를 대미관계 개선의 적기로 보고 유의미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다만 김정은 위원장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접촉했는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