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특수 꺾이면 중국발 물량 곧바로 가격에 영향…범용 중국과 맞서면서 ‘포스트 HBM’으로 넘어가야”
중국 메모리 기업들의 부상은 기존 시장 판도를 어떻게 바꿀까. 이병철 전 삼성전자 부사장(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이러한 상황을 “늑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비유하며 기술 격차보다도 빠르게 늘어나는 생산능력을 경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 전 부사장은 1989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후 2005년부터 2020년까지 15년간 삼성그룹 중국 본사에서 근무하며 중국의 기술 굴기를 직접 경험했다. 일요신문은 9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서 이 전 부사장을 만나 중국 메모리의 기술력과 시장에 미칠 파장, 한국의 대응 전략을 짚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CXMT는 국내 업체들보다 먼저 저전력 더블데이터레이트(LPDDR)6 양산을 공식화했다. 동시에 국내 업체들의 주력 제품이기도 한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HBM3E 생산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이 범용을 넘어 첨단 D램에서도 위협적인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봐야 하나.
“범용 D램은 기술이나 수율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거의 코앞까지 왔다고 본다. 다만 D램의 미세공정 기술로 보면 한국과 중국은 3단계 정도 차이가 난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4~5년가량이다. LPDDR6까지 내놓은 것을 보면 첨단 모바일 D램에서도 많이 따라왔지만 제품을 개발하는 것과 높은 수율로 대량생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HBM을 비롯한 최첨단 메모리에서는 아직 한국과 격차가 있다.”
―중국이 격차를 좁히는 데 가장 큰 장벽은 무엇인가.
“중국의 ‘초크 포인트(병목 지점)’는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다. 중국은 네덜란드 ASML이 사실상 독점 공급하는 EUV 장비를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로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DUV(심자외선) 장비로 멀티패터닝(구형 장비를 여러 번 돌리는 공정) 방식으로 우회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을 반복할수록 시간은 오래 걸리고 수율과 생산성이 떨어진다. 아직 EUV 자체 개발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개발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과거에도 외부 기술 지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양탄일성(원자탄·수소탄·인공위성)’을 완성했다.”
―낸드는 오히려 중국이 더 가까이 와 있나.
“그렇다. 낸드는 EUV가 필요하지 않아 D램보다 기술격차가 작다. 적층 단수로 보면 약 1년 차이다. D램보다 중국이 훨씬 가까이 붙어 있는 분야다.”

―CXMT는 D램 생산능력을 현재 월 30만 장에서 2030년 이후 월 60만 장으로 두 배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격차가 아직 있는데도 중국의 증설을 경계해야 하나.
“지금은 인공지능(AI) 특수로 메모리 가격이 유지되고 있지만 다운사이클이 오면 중국발 물량이 가격에 곧바로 영향을 줄 수 있다. 과거엔 다운사이클이 오면 업체들이 감산하면서 공급을 조절했지만 앞으로는 이런 논리가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중국은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사이클과 상관없이 생산량을 계속 늘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과거와 같은 슈퍼사이클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도체는 가격이 20~30%가 아니라 반값까지 떨어질 수 있는 산업이다. HBM 등 첨단 제품은 상대적으로 가격을 방어할 수 있겠지만 결국 중국발 공급 확대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미국이 중국산 반도체의 확산을 견제하면 중국발 물량이 글로벌 시장까지 흔드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이 중국 업체 제품을 쓰지 말라고 해도 시장의 원리 자체를 막기는 어렵다. 경쟁사가 10원짜리 중국 제품을 쓰는데 나는 중국 제품을 쓰지 않겠다고 20원짜리를 사용하면 경쟁에서 불리해진다. 시장의 원리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시간의 문제다.”

―범용 메모리는 중국에 내주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 같은 첨단 시장에 집중하는 전략은 위험한가.
“HBM만 잡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중국이 쫓아올 때마다 우리는 가격 경쟁을 피해 더 첨단으로 이동해왔는데, 이를 ‘낙동강 전선’에 비유하고 싶다. 계속 밀리면서 뒤로 물러나다 보면 결국 설 자리가 좁아진다는 의미다. 한국은 LCD(액정표시장치)를 중국에 내주고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로 이동했지만 중국은 OLED까지 따라오고 있다. 메모리도 범용을 내주고 HBM으로만 이동해서는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
―결국 범용을 지키는 동시에 중국이 따라오기 전에 다음 기술로 넘어가야 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범용에서는 중국의 물량 공세에 맞서고 첨단에서는 계속 앞서 나가야 한다. ‘포스트 HBM’을 찾아 중국이 따라오기 전에 다음 기술로 넘어가야 한다. 중국 공장도 철수하기보다 범용이나 한 단계 낮은 제품을 생산하고, 첨단 제품은 다른 생산기지가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을 나눌 수 있다.”
―중국의 추격이 쉽게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중국은 정부 자금뿐 아니라 커촹반(과학기술주 전용 시장)을 통해 민간자본까지 반도체 산업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반도체 기업에는 이익이 발생한 이후 10년간 기업소득세를 면제하는 등 세제 지원도 강하다. 여기에 매년 수백만 명의 이공계 인력이 배출된다. 돈과 세제, 인력까지 국가 차원에서 총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AI 특수로 국내 업체들의 실적이 워낙 좋다 보니 중국의 추격에 대한 위기감이 가려 있다. 오히려 이런 때가 더 위험하다. 중국에서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본 입장에서는 지금 안심할 때가 아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