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원전 건설에 문 정부 때 멈췄던 탈핵 순례 다시 거리로, 고리·영광·울진·세종서 각각 출발해 9월 16일 노량진 집결 후 청와대 행진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인공지능(AI) 산업에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니 원자력 발전을 더 지어야 한다고 하는데, 기본 맹점이 있다”며 “원전을 짓는 데 최소 15년이 걸린다”고 했다. 소형모듈원자로(SMR)에 대해서도 “기술도 개발이 아직 안 됐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그러나 지난 1월 정부의 원전 정책 기조에 변화가 나타났다. 이 대통령은 1월 20일 국무회의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부 장관에게 “국민 여론은 압도적으로 ‘지금 전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전이 추가 필요하다’는 것 아니냐”며 “최대한 의견을 수렴하라”고 지시했다. 과거 “탈원전 정책 기조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말했던 김성환 장관도 1월 26일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의 2.8GW 규모 대형원전 2기 건설은 계획대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12차 전기본에도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포함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재명 정부 역점 사업인 3대 메가프로젝트로 인해 전력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8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12차 전기본 토론회에서는 2041년까지 38.4GW의 추가 전력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대형원전 1기 설비용량을 1.4GW로 가정하면 약 27기 설비용량에 해당하는 규모다.
김성환 장관은 8월 27일 KBC 광주방송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각각 팹을 2개씩 짓기로 했는데 더 많은 공장을 짓겠다는 경우에는 좀 더 정밀하고 추가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며 “원전을 더 지어야 될지 등 추가적인 다른 대책들도 찾아봐야 되는데 그것까지도 미리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희 (이번 순례) 메시지가 ‘선을 넘지 마라’다. 12차 전기본에 신규 핵발전소를 추가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면 그만큼 많은 물과 전기를 사용하고 소음 등 부담도 발생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 국민에게 충분히 알리고 논의하지 않은 채 ‘핵발전소가 또 필요할 것’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탈핵 순례에 나선 이들은 원전 건설이 실효성 있는 대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신규 원전은 부지 선정과 인허가, 건설까지 긴 시간이 필요한 만큼 AI 대전환에 따른 전력수요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25년 12월 17일 한국수력원자력은 신규 원전 건설에는 약 13년이 소요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래서 이들은 신규 원전을 추가하기보다 기존 원전을 가동하면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고 위험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문제도 신규 원전 반대 이유다. 원전 안전성을 높이더라도 사고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 규모는 막대하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성원기 강원대 명예교수는 “핵발전소를 계속 짓는 정부를 우리는 용납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 전체를 핵사고로 몰아가는 정부”라며 “(원전업계에서는) 10만 년에 한 번 일어난다고 했는데, 1979년부터 2011년까지 10년에 한 번씩 대규모 핵사고가 일어났다. 핵사고를 괴담이나 과장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태성 삼척석탄화력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위원장은 “고준위 핵폐기물은 이제 건식으로 보관되더라도 거의 10만 년을 보관해야 하는데 인간 인류가 이렇게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각각의 순례 코스를 걷는 활동가는 5명이다. 특정 지역을 지날 때마다 그 지역 활동가들이 합류하는 식이다. 탈핵 관련뿐 아니라 송전탑 건설 반대 단체 등 다른 시민단체들도 함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명 씨는 “순례는 주로 핵발전소가 있는 곳으로 간다. 피해를 보는 지역 주민들이 거기 살고 있어서다. 세종시로 출발지를 잡은 이유는 이 문제를 담당하는 기후환경에너지부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는 정책을 결정하는 청와대가 있다. 주로 이 코스를 반복적으로 걷는다”며 “어디서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다면 수십 km 안에서는 걸어간다. 일대일로 만나러 가기도 하고, 어느 단체를 만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숙식 문제에 대해서는 “가까운 곳으로 갈 때는 도시락을 싸 간다. 서울은 꿀잠(비정규 노동자 쉼터)에서 주로 잔다. 성당 같은 종교시설에서도 재워준다. 음식을 주면 먹는다. 그렇게 순례생활을 한다. 그리고 집에 가서 제가 농사지은 것을 보내드린다”고 설명했다.
하태성 위원장은 “노량진에서 9월 16일 청와대로 행진한다. 우리의 요구서도 전달할 예정이다. (1월에) 기후비서관을 만났지만 실망이 컸고, 김성환 장관도 만났는데 역시 우리 의견을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청와대에 전달만 하고, 국회로 가서 정당 대표들 면담을 요청할 것 같다”고 전했다.
하 위원장은 이번 순례에는 지역을 넘어선 연대라는 가치가 담겨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 삼척 지역에는 안 들어와서 좋다고 만세를 불렀던 기억이 있다”며 “핵발전소뿐만 아니라 에너지든 세상의 모든 문제든 연결돼 있다. 연결된 문제들은 혼자서 해결할 수 없고 연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함께하자는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