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가 다 북한에 있는데 법원이 어떻게 유죄판결을 내리겠어?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잖아?”
그는 재판 시스템을 꿰뚫고 있었다. 내 생각으로 그는 간첩행위를 한 게 맞았다. 나는 순간 흔들렸다. 그를 도와 법정에서 증거를 부인하고 북한의 지시가 있었던 사실에 관해 입증해 보라고 트집을 잡을 수 있었다. 간첩도 변호 받을 권리가 있었다. 간첩인 그를 그렇게 무죄로 만드는 게 변호사의 정당한 업무 수행인 것일까.

“자백을 하고 감형을 받는 게 어떻습니까?”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다음날 바로 해고됐다. 나는 국정원의 전신인 안전기획부의 대공수사국에서 법률적 자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영업사원같이 매일 정보를 수집하러 나갔다. 어쩌다 간첩이 잡혔다고 하면 월척을 낚은 듯한 축제 분위기였다. 지하실에서 몇 날 며칠이고 조사가 계속됐다. 어느 날 아침 한 대공 수사관과 다방에서 얘기를 나누었다.
“간첩을 잡는다는 건 백사장에서 바늘 한 개 찾는 것보다 더 어려워요. 덫을 쳐놓고 인내하면서 기다려야죠. 그렇게 잡은 간첩이 우리 선생님이에요. 그 체험담이 대공 수사의 교과서가 되죠. 그런데 지식만 가지고 안 돼요.”
그가 나를 보고 씩 웃었다.
“물고기를 잡을 때 레이더나 어군탐지기를 쓰잖아요? 간첩도 마찬가지예요. 감으로만 안 되고 그들이 하는 통신을 파악해야 해요. 바로 잡지 않고 몇 년이고 추적하죠. 뿌리가 보일 때까지죠.”
안기부 지하 조사실에서 고참수사관과 둘만 있었던 적이 있다. 그림자가 진 것 같은 기다란 얼굴이었다. 그가 침묵하다가 내게 말했다.
“중앙정보부 시절 조직에 들어와서 오랫동안 대공 수사를 했어요. 간첩은 말이죠. 잡는 게 아니에요. 만드는 거였어요.”
가슴이 섬뜩했다. 대학 시절 강이라는 재일교포 유학생이 있었다. 어느 날 신문에 그의 사진이 실렸다. 그 옆에는 유학생간첩단 간부라고 굵은 활자가 박혀 있었다. 그가 억울하다고 내게 호소했다. 누가 옳은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안기부에 근무하던 시절 조직을 개조하기 위해 일곱 명 남짓으로 꾸린 TF에 차출됐다. 오래 근무한 간부인 팀장이 이런 말을 했다.
“대공 수사망은 멸치 그물같이 촘촘해요. 그런데 멸치 그물에 우연히 문어나 다른 큰 고기들이 잡혔죠. 윗분들은 간첩보다 그걸 더 좋아하는 거야. 우리야 선주가 좋아하는 걸 잡아다 바칠 수밖에 없잖아?”
안기부장이 1년도 못 되어 경질되는 바람에 개혁은 흐지부지됐다. 그 후 몇 차례 정권이 바뀌면서 대공 수사권이 경찰로 넘어왔다. 이번에 형법을 개정해서 간첩죄의 대상에 북한뿐 아니라 외국도 포함시켰다. 그러나 변호사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도 허술한 그물코가 존재한다. 중국인 관광객이 우연히 찍은 사진 속에 군사시설이 포함됐을 때 수사권이 남용될 수 있다. 외국에서의 공모나 연락, 지시 등은 법망을 빠져나갈 구멍이다.
새로 만든 법 그물을 쥔 경찰에게 실적의 유혹도 선주의 주문도 있을 것이다. 변호사인 나 역시 구치소에서 직업의식과 국가관 사이의 갈림길에 섰고 국가관을 택했다. 월척을 기다리는 지하 조사실에 이제는 경찰이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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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journali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