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앞두고 대학별 고사서 AI 안경 부정행위 잇따라 적발…음성 명령 없이 렌즈에 정답 표시, 시험 감독 체계 보완 과제

10월 19일 ‘일요신문i’가 찾은 서울 중구 명동의 아이닥안경. 이곳은 중국 AI·증강현실(AR) 기술기업 링반테크놀로지(Lingban Technology)가 개발한 AI 안경 ‘로키드(Rokid)’를 비롯해 미국 메타(Meta)의 ‘레이밴 메타(Ray-Ban Meta)’와 ‘오클리 메타(Oakley Meta)’, 국내 브랜드 ‘에이아이눈(AInoon)’ 등 다양한 AI 안경을 취급하는 매장이다. 국내에서는 이들 제품을 비롯해 카메라와 AI 기능 등을 갖춘 스마트안경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이날 기자가 직접 착용해 본 로키드 AI 안경은 일반 안경과 비슷한 형태였지만 안경다리가 다소 두꺼웠고, 전면에는 카메라와 촬영 상태를 알리는 LED 표시등이 달려 있었다. 카메라로 사진과 영상을 촬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AI를 활용한 사물 인식, 실시간 통역, 길 안내, 발표 원고 표시 등 다양한 기능을 지원한다. 특히 렌즈에 초록색 글씨로 정보를 띄우는 디스플레이가 탑재돼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번역된 문장이나 AI가 생성한 답변을 착용자의 시야에 직접 표시하는 방식인데, 주변 사람에게는 해당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
메타의 ‘레이밴 메타’ 역시 카메라와 마이크, 스피커를 탑재한 AI 안경이다. 음성 명령으로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고, 눈앞의 사물에 대해 질문하거나 외국어를 번역하는 등의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이날 체험한 레이밴 메타 제품에는 렌즈 디스플레이 기능이 없었다. 메타도 렌즈에 정보를 표시하는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메타 레이밴 디스플레이’를 해외에서 판매하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 정식 출시되지 않았다. 현재 국내에 정식 출시된 레이밴 메타 제품은 안경다리에 내장된 스피커를 통해 음성으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AI 안경의 기능이 발전하면서 실제 대입 시험에서 이를 이용한 부정행위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10월 3일 서울시립대 자연계열 논술고사에서는 AI 안경을 착용한 수험생이 감독관에게 적발됐다. 같은 시험에서는 AI 안경을 책상 위에 올려둔 수험생도 추가로 적발됐다. 서울시립대는 이들 2명을 퇴실 조치하고 향후 3년 동안 입학전형 응시자격을 제한했다.
10월 10일 연세대 자연·통합계열 수리논술 시험에서도 AI 안경을 착용한 수험생이 적발됐다. 이에 따라 올해 대학별 고사에서 AI 안경과 관련해 적발된 수험생은 서울시립대 2명, 연세대 1명 등 총 3명으로 늘었다.
AI 안경을 이용한 부정행위 우려는 대학입시를 넘어 국가시험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인사혁신처는 지난 6월 실시된 5급 공채 2차 시험부터 안경을 착용한 수험생 전원을 대상으로 AI 안경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도입했다. 수험생이 안경을 벗어 앞뒤를 돌려 감독관에게 보여주는 방식이다. 법무부도 내년 1월 치러지는 변호사시험에서 안경 착용자를 대상으로 스마트안경 여부를 전수 확인할 예정이다.
교육당국도 다음 달 치러지는 수능을 앞두고 대응에 나섰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027학년도 수능 시행세부계획에 스마트안경을 시험장 반입 금지 물품으로 명시했다. 시험 중 AI 안경을 착용하다 적발되면 실제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시험이 무효 처리되고 다음 연도 수능 응시자격도 1년간 정지된다. 단순 소지만으로도 해당 연도 시험이 무효 처리될 수 있다. 감독관의 안경 확인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중대한 부정행위로 처리될 수 있다.
교육부는 10월 15일 전국 시도교육청과 대학에 AI 안경 식별 요령과 검사 방법 등을 담은 감독 지침을 전달했다. 다만 구체적인 적발 방법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정병익 교육부 대변인은 19일 정례브리핑에서 “적발 방법을 공개하면 부정행위자가 이를 회피하는 방법을 연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렌즈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제품은 AI가 제시한 답을 착용자만 확인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적발이 어려울 수 있다. 여기에 특정 동작으로 미리 설정된 명령을 실행하는 매크로 기능까지 활용하면 음성 명령이나 문자 입력 없이도 문제를 촬영하고 답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이날 기자가 모의평가 문제의 정답을 확인한 것도 이 같은 방식이었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문제를 촬영하고 답을 렌즈에 띄울 수 있었다.
다만 AI 안경이 실제 수능 시험장에서 이 같은 기능을 구현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현재 시판되는 AI 안경 상당수는 블루투스로 스마트폰 등 외부 기기와 연결해 기능을 이용한다. 이날 기자가 체험한 로키드 제품 역시 태블릿과 연결된 상태였다. 인터넷 연결 없이 기기 자체에서 AI 기능을 처리하는 ‘온디바이스 AI’ 기술도 적용돼 있지만, 판매점 측에 따르면 오프라인에서 이용할 수 있는 기능은 번역으로 한정된다. 시험문제를 촬영해 AI로 정답을 구하는 기능은 블루투스 연결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능에서는 휴대전화와 태블릿PC 등 반입 금지 전자기기를 시험 시작 전에 제출해야 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수험생이 제출한 전자기기는 시험실과 분리된 시험관리본부에 보관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수험생에게 전원을 끄고 제출하도록 안내하고 있으며, 반입 금지 물품은 복도 감독관을 통해 시험관리본부로 전달한다”며 “다만 제출된 전자기기의 전원이 실제로 꺼졌는지 일일이 확인하는 절차는 별도로 운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따라서 전원이 켜진 기기가 제출될 가능성은 있지만, 시험관리본부에 보관된 기기와 시험실의 AI 안경이 블루투스로 연결될지 여부는 거리와 기기 상태 등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현재 시판되는 제품의 외형적 특징만으로 AI 안경을 식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A 안경사는 “국내에 정식 출시되지 않았더라도 해외 직구 등을 통해 다양한 제품이 유입될 수 있는 데다, 기술 발전에 따라 카메라와 디스플레이가 더욱 작아지거나 외형이 변형될 가능성이 있어서 안심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새로운 제품의 출시 및 기술 변화에 맞춰 시험 감독 방식을 지속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올해 수능에서 전파탐지기 등 별도의 탐지·차단 장비를 도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교육당국의 입장이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도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관련 장비를 이번 수능에 즉시 도입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에 따라 당장은 감독관의 육안 확인과 수험생의 전자기기 제출 등 기존 관리 절차를 강화하되, 향후에는 AI 안경을 비롯한 새로운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에 대응할 수 있는 감독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