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친일 전력자 유족들의 삭제요청은 보류해 백선엽 특혜 논란, 기록 삭제·유지 기준 마련 필요

2025년 10월 28일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권오을 보훈부 장관은 ‘백 장군 친일 기록을 현충원 홈페이지에 복구하고, 이장을 검토해야한다’는 김 의원 질의에 “질문에 맞는 조치를 하겠다”고 답했다. 다만 권 장관은 “이장과 파묘는 국민 정서에 큰 파장을 남길 수 있으므로 신중히 처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보훈부는 1월 2일, 9월 10일 ‘현충원 친일파 매장 관련 국감 후속 조치 현황’에 대한 김용만 의원실 질의에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백선엽 친일 기록 삭제 논란’은 윤석열 정부 때 시작됐다. 윤석열 정부는 한국전쟁의 영웅이자 한미동맹의 상징이라며 ‘백선엽 띄우기’에 나섰다. 백 장군 생전 음성을 인공지능(AI)으로 재현해 국기에 대한 경례문 낭독에 활용했고, 윤석열 당시 대통령 방미 때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으로 소개했다.
2023년 7월 24일에는 보훈부가 대전현충원 홈페이지에서 백 장군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삭제했다고 밝혔다. 보훈부는 “‘안장자 검색 및 온라인 참배란’은 사이버 참배 서비스 등을 제공하여 안장자 명예를 선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하는 것인데, 이와 반대로 오히려 명예를 훼손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안장자에 대해서는 범죄경력 등 안장 자격과 관계없는 다른 정보는 기재하지 않으면서 특정인에 대한 특정 사실만 선별하여 기재하도록 한 것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백선엽 장군을 욕보이고 명예를 깎아내리려 했다는 강한 의심과 함께 안장자 간 균형성도 간과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이 문구는 백 장군이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다음 날인 2020년 7월 16일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 결정으로 명시됐다. 보훈처는 2019년 3월 현충원 안장자 중 친일 전력이 있는 인물에 대해서는 관련 정보를 기재하기로 정한 바 있다. 친일 전력이 있는 인물의 국립묘지 안장을 두고 진보·보수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상황에서 나온 일종의 절충안이었다.

백 장군 친일 전력이 삭제되자 광복회는 “보훈부가 많은 우선순위 속의 일들은 제쳐두고 유사한 논란을 빚고 있는 다른 국가유공 호국 인사들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 없이, 유독 백선엽 1인에 대해서만 집착하는 것도 의도적이며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백 장군 외 다른 친일 전력이 있는 국립묘지 안장자 유족들의 친일행적 기록 삭제 요청은 논의되지 않았다. ‘백선엽 친일 전력 삭제 논란’이 불거지진 뒤인 2023년 김백일·이종찬·이응준 유족들도 친일행적 기록 삭제를 요청했다. 박민식 당시 보훈부 장관은 같은 해 10월 13일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추가 민원 접수 사실을 몰랐다며 “그 부분도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약 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 요청들에 대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기록 삭제 요청이 들어온 이들은 백 장군과 달리 서울 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유족들이 기록 삭제 요청을 했던 2023년에는 국방부 관할이었다가 2024년 7월 보훈부로 이관됐다. 이 과정에서 논의는커녕 백 장군 기록 삭제 때와 달리 법률 자문도 진행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백 장군에게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그러나 기록을 삭제할 때도 관련 기준은 정해지지 않았다. 보훈부가 백 장군 유족 탄원서를 받은 뒤 변호사 4명에게 법률 자문을 의뢰했을 뿐이다. 이 문제를 의논한 내용이 담긴 보훈부 회의록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보훈부를 비롯한 관련 부처들이 명확한 친일 기록 명기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용만 의원은 “공을 기리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과를 기억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공이 있다고 해서 친일 행적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며 “친일 청산을 하고, 아픈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우리나라의 의지를 확고히 보여줘야 한다”강조했다. 김 의원은 “특히 현충원 같은 영예로운 장소에서는 이런 것들이 더욱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보훈부는 차일피일 미루지 말고, 백선엽의 친일 행적을 다시 기재하고, 친일 이력 적시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