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 ‘특감팀’ 만들어 정적 감시·제거
▲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그곳에선 분명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곳’은 바로 국세청이다. 그 국세청을 둘러싸고 이명박 정부 5년간 유독 사건·사고가 많았다. 하지만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는 조직인 데다 어느 누구도 세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국세청 내부의 이전투구에 대해선 알려진 게 많지 않다. 수장인 국세청장에 관한 부분은 더더욱 그렇다. 그런 까닭에 최근 출간된 <국세청 파일-대한민국 국세청을 말하다>(한상진 저, 보아스) 속 ‘MB 정부 국세청장 파일’은 흥미롭다. 그 내용을 열어(발췌, 요약)봤다.
한상률. 그는 참여정부가 임명한 마지막 국세청장이면서 동시에 이명박 정부가 선택한 첫 국세청장이었다. 그는 철저히 ‘이명박의 남자’였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한상률의 국세청은 전 정부에 대한 ‘사정(司正)성’ 세무조사에 나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참여정부 관련 인사들과 가까웠던 기업인, 이명박 정부에 맞섰던 정치인들이 타깃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이 단골이던 ‘토속촌(삼계탕 전문점)’도 세무조사를 받을 정도였다. 한 전 청장은 그런 식으로 새 정부에 코드를 맞춰 나갔다.
전 정부에 대한 표적 세무조사와는 별도로 한 전 청장은 국세청장 취임 직후인 2007년 11월 국세청 간부에 대한 감찰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특별감찰팀(특감팀)’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조직은 사실상 한 전 청장을 위한 심부름센터에 불과했다. 한 전 청장은 자신의 정적을 감시하고 제거했으며 조직 운영을 위해 필요한 각종 정보를 수집했다. 심지어 국세청을 퇴직한 사람도 감찰했다. 이러한 사실은 2011년 초, 한 전 청장에 대한 검찰 수사과정에서 상당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일례로 2008년 2월경, 한 전 청장은 자신과 행시 동기이면서 서울지방국세청장이던 A 씨에 대해 감찰을 지시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특감팀원이던 P 씨는 검찰 조사에서 “한 청장님과 행시 동기라서 나중에 국세청장으로 올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되면 한 청장님이 옷을 벗어야 한다는 걱정에 A 씨의 비위 사실을 확보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추정됩니다”라고 답했다. A 씨는 감찰을 받은 직후인 2008년 3월 국세청을 떠났다.
특감팀의 모든 보고서는 1부만 만들어졌으며 따로 보관되지 않았다. 컴퓨터로 보고서를 작성한 뒤에는 개인의 USB 메모리를 통해 저장했다. 특감팀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도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특감팀은 한 전 청장 퇴임(2009년 1월) 직후 해체됐다. 해체되면서 모든 문서를 파쇄기에 넣어 파기했다. 문서를 보관했던 USB도 다 파기시켰다. 현재 국세청에는 1년간이나 운영됐던 특감팀의 운영과 관련한 문서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한 전 청장 퇴임 직전인 2009년 1월, 그와 관련한 의혹이 약속이나 한 듯 터져 나왔다. 한 전 청장은 사표를 제출했고 3월 미국으로 떠났다. 2011년 2월 한 전 청장이 귀국하자 검찰은 그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말 법원은 인사청탁 명목으로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고가의 그림을 건넨 혐의, 기업들에게 부당한 방법으로 금품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된 한 전 청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다시 시계를 돌려 2009년 7월, 이명박 정부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6개월간 공석이던 국세청장에 백용호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을 임명했다. 국세청과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외부인의 국세청장 임명도 놀랄 일이었지만 세무 비전문가가 국세청장에 임명된 것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장관급인 공정거래위원장을 차관급인 국세청장에 임명한 것도 화제가 됐다.
2010년 7월 퇴임, 1년간 재직한 백용호 전 청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한 전 청장의 불명예스런 사퇴로 무너진 국세청 조직을 무난하게 이끌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무능했다는 평도 있다. 이현동 현 국세청장에게 청장직을 넘겨주는 징검다리 역할만 하고 떠났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 백용호 전 청장은 재직 시절 국세청 내부 업무 대부분을 당시 차장이던 이현동 현 청장에게 맡겼다. 심지어 인사와 조직 운영 권한도 행사하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백 전 청장의 뒤를 이은 이현동 청장의 인생역정은 드라마틱하다. 경북고와 영남대를 나온 그는 이명박 정부 출범 전만 해도 국세청 안팎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아니었다. 행정고시 24회로 공직에 들어선 그는 구미세무서장,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 과장, 대구지방국세청 국장, 중부지방국세청 납세보호담당관을 거쳤다. 승진이 동기들보다 4~5년씩 늦었다. 그러나 서울지방국세청 조사3국장에 임명된 지 한 달도 안 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파견나간 이후 그의 승진가도는 그야말로 눈이 부실 정도였다.
인수위(3개월)를 거쳐 청와대 경제수석실 선임행정관(1개월)을 지내고 국세청의 요직인 조사국장(6개월)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곧이어 ‘국세청 빅3’ 중 하나인 서울지방국세청장(3개월)으로 영전했고, 바로 국세청 차장이 됐다. 서울청 국장에서 국세청 2인자가 되는데 1년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초고속 승진 때문인지 그는 청장에 오르기 전부터 각종 음해에 시달렸다. 그가 차장 시절이던 2010년 봄 일부 언론사와 정치인 앞으로 날아든 투서에는 그를 ‘국세청의 미실(임금 이상으로 신라의 권력을 장악했던 인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현동 청장이 취임한 이후 국세청은 인사와 관련한 구설수에 자주 오르내렸다. TK(대구·경북) 출신인 그가 고향이 같은 인사들을 요직에 배치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는 2010년 단행된 이 청장의 첫 인사 때부터 논란이 됐다. 그는 자신의 고교·대학 후배를 중부지방국세청장에 임명하는 등 TK 출신 인사들을 중용했다. 그 결과 국세청 고위 공무원 중 약 50%가 TK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다.
2011년 6월 인사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특명조사를 주로 담당하는 서울청 조사4국장에 이 청장의 고향(경북 청도) 후배를, 조사국장에 경북 의성 출신을, 대기업 조사를 주로 하는 서울청 조사1국장에 경북 구미 출신을, 중부청 조사3국장에 경북 청도 출신이 배치했다. 대선을 앞두고 단행된 지난해 7월 인사에서도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 청장의 고향 후배가 서울청장에 임명됐다. 이로써 국세청장, 서울청장, 조사국장이 모두 TK 출신으로 채워졌다.
이현동 청장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서도 이름이 오르내렸다. 지원관실 직원들의 입막음용으로 쓰인 자금 중 일부가 이 청장에게서 나온 사실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 의혹과 관련해 이 청장은 검찰에 ‘돈을 준 사실이 없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 수사기록에는 그 답변서가 빠져 있어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정리=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