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집 꽃’ 키운다더니 ‘작은집’에 물 흠뻑~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
지난 2월 22일 한화석화는 한화리조트가 가지고 있는 한화개발 지분 26.11%를 244억 원을 들여 매입했다. 같은 날 한화L&C의 한화개발 지분 15.88%도 148억 원에 샀다. 하루 동안 총 392억 원을 쏟아 부어 한화개발 지분 41.99%를 확보한 것. 이로써 한화석화는 그룹 지주회사 격인 ㈜한화(53.83%)에 이어 한화개발 2대주주에 올라섰다.
이런 사실이 전해지자 재계 일각에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주회사 전환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해석됐기 때문. 한화는 김승연 회장이 직접 지주회사제를 거론했을 만큼 지난해부터 지주회사 전환에 강한 의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한화가 아닌 한화석화가 계열사 지분을 매입하면서 “지주사 전환이 늦춰지는 것 아니냐”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만약 한화가 지주회사를 염두에 뒀더라면 ㈜한화를 놔두고 한화석화가 지분을 사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란 말이다.
한화 측에서는 “한화석화의 지난해 실적이 좋았기 때문에 남는 여력으로 지분을 매입했다”며 “계열사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한화석화가 지분을 매입한 한화리조트와 한화L&C의 지난해 실적은 괜찮았기 때문이다. 3분기까지 한화리조트가 120억 원, 한화L&C가 170억 원가량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두 회사 모두 전년도에 비해 향상된 실적이다.
따라서 재무구조 개선이 아닌 다른 의미로 해석을 해야 할 것 같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한화→한화석화→한화증권→㈜한화’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도를 공고히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가까운 시일 내에는 지주회사 전환이 힘들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한화석화가 계열사 지분을 매입한 후 ㈜한화도 잇따라 계열사를 신규로 설립했다는 것이다. 2월 25일엔 Hanwha Resources (Australia) Pty Ltd를, 26일엔 한화투자자문유한회사를 세웠다. 지난 1월에는 지상항법장치 제조업체인 센텍을 합병하기도 했다. 이 세 회사에 들어간 돈은 총 75억 원가량으로 추정된다. ㈜한화가 이처럼 회사를 합병하거나 신규설립을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화석화가 계열사 지분을 인수한 것은 지주회사 전환을 피하려는 것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모회사가 보유한 자회사의 주식가액이 모회사 총자산의 50%를 넘으면 지주회사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한화는 자회사 중 한화증권 등 금융사가 있기 때문에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교통정리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 한화 입장에서는 지주회사 전환 요건인 ‘50%’를 넘기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한편에서는 “한화가 굳이 지주회사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느냐”라는 말도 나온다. 재벌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영권 방어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겉으로는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속마음은 후계문제를 포함한 경영권 때문이란 게 중론이다. SK그룹이 소버린자산운용으로부터 적대적 M&A에 노출됐다가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후 지주회사제로 전환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계열사 지분 정리를 위해 적지 않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지주회사는 상장사 20%, 비상장사 40% 이상 지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 또한 부채비율을 200% 이내로 유지해야 하고 금융계열사를 분리해야 하는 등 많은 규제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오너 입장에서는 경영권만 확실하다면 굳이 지주회사로 전환할 필요성을 못 느낄 수도 있다.
현재 김승연 회장은 ㈜한화 지분 16.97%를 가진 최대주주다. 삼성이나 SK처럼 총수가 소량의 지분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또한 지난 연말엔 세 아들에게 자신의 지분 300만 주를 증여했다. 금액으로만 따져도 2000억 원이 넘는 막대한 양이었다. 그 결과 현재 김 회장의 세 아들은 각각 5.34% 2.12% 2.12%를 보유하고 있다. 세 아들 모두 아직 20대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다른 대기업에 비해 후계 승계에서도 한 발짝 앞서나간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경영권이 안정돼 있는 것 말고도 지주회사 전환을 꺼려할 만한 이유가 또 있다. 바로 ‘돈’ 때문이다. 김 회장은 올해 초 2조 원의 투자계획을 밝혔다. 특히 보복폭행사건으로 선고받은 사회봉사명령이 끝났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인 공격경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난해 세 아들에게 증여했던 지분에 대한 세금도 물어야 한다. 증여세는 현재 1000억 원대로 추정된다. 이 밖에 한화는 지난 2월 27일에 5년 전 매각했던 여의도 한화증권 빌딩을 되찾기 위한 참여의향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따라서 한화 입장에서는 절실하지 않은 지주회사로 전환할 바에는 그 비용을 다른 곳에 쓰는 것이 나을 것이란 판단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오히려 ㈜한화가 지금처럼 규모를 키워 주가가 오르면 김 회장과 세 아들은 막대한 평가차익을 볼 수 있다. 현재 ㈜한화의 행보와 지난 김 회장의 세 아들에 대한 증여가 오버랩되는 이유다.
그런데 왜 지난해 한화는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이것을 재계 일각에서는 김 회장의 보복폭행사건과 연관해 바라보기도 한다. 즉, 시민단체 등에서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요구하자 ‘여론 환기용’으로 카드를 꺼냈다는 것이다. 경제개혁연대 최한수 팀장은 “지주회사 전환 여부는 경영판단사항”이라고 전제하면서도 “회사의 합병이나 차입 등으로 지주회사 규제를 벗어나는 것은 현 지주회사 제도의 허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