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직접 조사 또 ‘입원’이 변수
▲ 지난 2월 28일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연합뉴스 | ||
이재용 전무를 포토라인에 서게 한 특검팀의 궁극적 목표는 이건희 회장에 대한 직접 조사일 것이다. 삼성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차명계좌와 에버랜드 재판 증언·증거 조작 폭로로 그동안 이건희-이재용 부자에 대한 각계의 수사 요구가 빗발쳐왔다. 이른바 ‘이명박 특검’ 수사팀의 검찰 수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수사결과 발표가 ‘특검 무용론’을 부른 점을 감안할 때 검찰이 삼성에버랜드 수사과정에서 결국 소환해내지 못한 이건희 회장을 불러내는 일은 두말할 나위 없는 특검팀의 지상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에버랜드 재판 당시 ‘이 회장 소환 불가’를 기치로 전방위적 로비활동을 펼쳐온 삼성이 이 회장 소환 요구에 일말의 대응도 없이 무릎을 꿇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삼성이 소유한 서울 모처의 한 병원 안팎에선 ‘이 회장 입원’ 관련 소문이 나돌고 있다. 동종 업계에선 ‘이 회장이 조만간 병 치료를 위해 해당 병원에 입원할 것’이란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만약 소문대로 이 회장의 병원행이 현실화될 경우 특검팀 소환 일정과 방법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 회장은 ‘건강 악화설’을 달고 다녔으며 지난해 11월 19일 이병철 선대회장 20주기 추모식에 건강상 이유로 불참해 이런저런 억측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 수사가 한창일 때 모든 의혹 중심에 서 있는 이 회장이 병상에 눕게 될 경우 어떤 말들이 쏟아질지는 불 보듯 뻔하다. 건강상 문제로 소환이 불가능해 서면조사로 대체된다거나 제3의 장소에서 대면조사가 이뤄질 경우 ‘소환 회피용’이란 비아냥거림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각에선 이 회장이 일단 1차 소환에 응한 뒤 병 치료 목적으로 입원하는 수순을 조심스럽게 예측하기도 한다. ‘이 회장 소환 불가’ 공식이 깨진 것만으로도 특검팀이나 이 회장 측이 피차 명분을 취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3월 9일로 예정된 특검 1차 조사기한의 연장이 확실해 보이는 만큼 이 회장 소환이 한 번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이 회장의 ‘병원행 시나리오’를 그려보는 인사들이 늘고 있다.
▲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 당시 미국으로 출국해 지병을 이유로 체류하다 다음해 2월 휠체어를 타고 입국한 이건희 회장. 연합뉴스 | ||
특검팀은 이 전무 소환에 앞서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시점인 지난 1996년 그룹 비서실장이었던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을 소환해 전환사채 배정과정에 그룹 차원의 공모 여부와 이건희 회장 지시가 있었는지를 조사했고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에 대해서도 이 전무에게 에버랜드 개인 최대주주 자리를 넘겨줬다는 의혹을 파헤치는 중이다.
전환사채 배정 과정의 최대 수혜자는 그룹 경영권 승계 기틀을 닦은 이재용 전무겠지만 에버랜드 3대 주주 반열에 올라선 이부진-이서현 자매에 대한 특혜 시비 역시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끊이지 않아왔다. 현재 삼성에버랜드 지분구조에서 삼성카드(25.64%)가 최대주주로 있으며 이부진-이서현 자매는 개인 최대주주인 이재용 전무(25.10%) 다음가는 8.37%씩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수혜 당사자인 이 회장 딸들에 대한 특검팀의 소환조사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소환조사 폭이 ‘범 삼성가’로 확대될지도 관심거리다. 삼성의 차명의심계좌로부터 이건희 회장 여동생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 계좌에 300억 원 뭉칫돈이 유입됐다는 이야기가 퍼져 신세계 측이 비자금 연루설을 극구 부인한 바 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배정과정에서 주주들이 인수를 포기해 이재용 전무를 개인 최대주주로 만들어주는 과정에서 끝까지 에버랜드 지분을 지킨 CJ, 그리고 범 삼성가 장손인 이재현 회장에 대한 특검팀의 관심도 지켜볼 만한 사안이다.
삼성 비자금 차명계좌 논란과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에 이명희 회장의 비자금 연루 여부와 에버랜드 전환사채 배정 과정 당시 이재현 회장의 주변 상황, 홍라희 씨 미술품 구매 과정 등을 4월 중순에 마무리될 특검 수사 기간 내에 모두 손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삼성 특검이 ‘끝이 아닌 시작’이 돼 삼성을 장기간 동안 곤혹스럽게 만들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특검 수사 완료 이후 기소될 인사들에 대한 재판과정이 단기간 내 마무리될 수 없을 것이며 검찰이 재수사에 나설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는 까닭에서다.
친 기업 성향을 표방한 새 정부 또한 삼성 파문 장기화 가능성을 의식한 듯 수사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항간에는 ‘청와대 비서관급 인사 중 한 명이 삼성 파문 전담 업무를 맡게 될 것’이란 이야기가 퍼져 있기도 하다. 이 회장 직계가족 구성원들이 차례로 특검 포토라인에 서게 되고 범 삼성가 인사들이 계속해서 삼성 관련 구설수에 오르내릴 경우 삼성뿐 아니라 국내 굴지의 여러 대기업들이 연루되는 만큼 기업 투자 환경 조성을 약속한 이명박 대통령의 머릿속도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