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대들보 올리고 ‘황태자 왕국’ 건설 중
▲ 신동빈 부회장 측근으로 불리는 임원들이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면서 그룹 내 본격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 ||
롯데그룹은 지난 2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155명의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이 중 승진인사만 142명이다. 거의 ‘파격’에 가깝다는 것이 재계의 평이다. 하지만 롯데그룹의 이러한 인사는 이미 3년 전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05년 86명을 시작으로 2006년과 2007년엔 각각 111명과 118명에 대한 임원 인사를 했던 것.
특히 몇 년 사이 40·50대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이것은 롯데그룹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사를 “신동빈 부회장이 주도하고 있다”는 말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신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후계자의 입지를 굳히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인사규모가 확대되는 시기와 일치한다. 이것은 인사에 신 부회장 입김이 작용했다는 말로도 풀이될 수 있다.
특히 신 부회장 측근으로 불리는 임원들이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고 있다. 신 부회장으로서는 매년 2월경 실시되는 임원 정기인사를 통해 ‘포스트 신격호’ 시대를 준비해왔던 것이다. 한 재계 인사는 이번 롯데그룹 인사에 대해 “올해 신 부회장 라인이 그룹 전체를 장악했다”며 “이제 후계구도는 완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번 인사에서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황각규 롯데쇼핑 부사장과 좌상봉 호텔롯데 부사장이다. 황 부사장은 전무로 승진한 지 2년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했을 만큼 신 부회장 신임이 두텁다고 한다. 삼성그룹 비서실 출신인 좌 부사장은 지난 2000년에 롯데그룹으로 영입됐다. 롯데에 들어오기 전부터 신 부회장과는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써 신 부회장은 핵심 계열사인 쇼핑과 호텔 부문에 자신의 핵심 측근을 앉히게 됐다. 그룹 내부에서는 이를 두고 “신 부회장에게는 ‘우각규 좌상봉’이 있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고 한다.
이번 인사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장경작 호텔롯데 대표이사가 호텔부문 총괄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인사가 발표되자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장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대학교 동기로 절친한 사이인 것을 근거로 “롯데그룹이 새 정부를 의식한 소위 ‘MB코드’ 인사를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그룹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장 사장은 이번 인사가 발표되자 10일 동안 출근을 하지 않았을 만큼 불만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것은 총괄사장이라는 직책이 사실상 ‘명예직’에 가까운, 실무와는 거리가 먼 자리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업계에서는 ‘장 사장이 신 부회장 최측근인 좌상봉 부사장에게 밀린 것 아니냐’는 억측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장 사장은 2005년 호텔롯데 대표이사에 오른 후 사실상 호텔부문을 총괄해왔는데 새삼스럽게 총괄사장이라는 직책을 신설해 앉힌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회사 측에서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한편 이번 인사에서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의 딸 장선윤 상무가 승진하지 못한 것도 주목해 볼만 하다. 지난해 부진했던 롯데쇼핑에서 그나마 고군분투했던 명품관을 이끌었던 장 상무이기에 그의 인사누락은 의외라는 평가가 많았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후계구도에 분란을 일으킬 수 있는 소지를 없애기 위한 조치라고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장 상무가 인사명단에서 빠지고 난 며칠 뒤 신 부사장이 롯데호텔 등기이사에 재선임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신 부사장의 갑작스런 컴백 소식을 두고 지금 재계에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장 상무가 인사에서 빠진 것에 대한 위로 차원이라는 것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더 설득력 있는 것은 지난해 롯데쇼핑이 라이벌인 신세계에 뒤지며 부진했기 때문에 신 부사장이 ‘구원투수’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신 부사장은 오늘날 롯데쇼핑을 이뤄낸 일등공신으로 손꼽힌다.
신 회장이나 신 부회장 입장에서는 마지못해 신 부사장을 불러들인 것일 수도 있다. 지분관계 등을 봤을 때 신 부사장이 후계구도에 영향을 미치기는 힘들지만 만약 신 부사장이 침체에 빠져있는 쇼핑부문을 정상화시킨 후 자신의 ‘몫’을 주장한다면 거절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신 회장 부자가 예상했다고 하더라도 현재 쇼핑 부문의 위기를 감안하면 롯데쇼핑에서 신 부사장이 보여줬던 능력을 썩히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신 부회장이 그룹 전반에 대한 경영을 맡은 후부터 롯데쇼핑은 부진을 면치 못했기 때문에 자칫 이 상황이 계속되면 신 부회장의 경영능력이 의심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최근 신 부회장이 금융과 글로벌사업 등 신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것도 그룹 내외에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고 해도 신 부회장 입장에서는 일단 쇼핑 부문에서 롯데의 명성을 되찾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신 부사장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이자 ‘신 회장 부자의 딜레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