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병든 말도 ‘소고기 버거’로 둔갑
루마니아에서 노동에 쓰이던 말이 늙고 병들면 말고기로 도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농부가 개천에서 농수를 긷는 모습.
‘말고기 스캔들’이 유럽 전역을 뒤덮고 있다. 지난달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말고기 파문이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루마니아, 스페인까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번 말고기 파문은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햄버거용 패티, 라자냐, 미트소스 스파게티 등 즉석조리 제품 가운데 일부에 말고기가 혼합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말고기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권 국가에서도 식용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 사실. 하지만 문제는 식품 성분 라벨에 말고기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말하자면 이는 명백히 소비자의 알권리를 침해한 행위였으며,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말고기를 먹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식품업체들이 소고기 대신 말고기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떤 말들이 주로 도축되는지, 그리고 불법 유통된 말고기에 문제는 없는지 살펴봤다.
지난 1월 15일, 아일랜드 식품기준청(FASI)은 영국과 아일랜드 대형마트 네 곳에서 판매되는 27개 햄버거용 고기 패티의 성분을 검사한 결과 10개 제품에서 말고기 성분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아일랜드의 대형 식육가공업체인 ‘실버크레스트 푸드’의 제품으로, 해당 제품들에서는 말고기가 29%가량 섞여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발표 직후 말고기 혼합 제품을 판매하던 테스코, 알디 등 대형마트는 즉각 사과문을 발표했으며, 문제가 된 1000만 개의 패티를 모두 회수하는 등 발 빠른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 날 프랑스 식품가공업체인 ‘코미겔’의 냉동 볼로네제 스파게티에서도 말고기가 검출된 것이다. 적게는 60%에서 많게는 100%까지 말고기가 검출되었으니 이 정도면 소고기 스파게티가 아니라 말고기 스파게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었다.
문제가 된 업체는 비단 두 곳뿐만이 아니었다. 영국의 대형 냉동식품업체인 ‘파인드어스’의 라자냐와 미트볼 스파게티 등 11개 제품에서도 말고기 성분이 검출됐으며, 세계 최대식품회사인 ‘네슬레’와 햄버거 체인점인 ‘버거킹’ 역시 이번 스캔들에서 자유롭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네슬레’의 경우 소고기 스파게티 제품 두 종류에서 말고기가 1% 이상 검출됐으며, ‘버거킹’의 경우 ‘실버크레스트 푸드’에서 납품 받은 햄버거용 패티에 말고기가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말고기 스캔들이 유럽 전역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소비자들은 불쾌감을 감추지 못한 채 냉동식품 구매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해당 제품이 놓여 있던 슈퍼마켓의 냉장고와 진열대는 텅텅 비었으며, 마트 측은 사과문을 게재하고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각국 정부 역시 스테이크용 고기를 포함한 모든 소고기 제품에 대한 철저한 성분 검사를 실시하기 시작했으며, 말고기 유통 관렵법을 철저하게 재검토할 것을 약속한 상태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조사를 하면 할수록 충격적인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냉동제품뿐만 아니라 어린이용 간식에도 말고기 성분이 검출될 가능성이 제시됐다. 이에 따라 영국 식품기준청(FSA)은 최근 동물의 뼈와 피부에서 추출하는 젤라틴이 함유된 젤리, 요구르트 등 어린이용 간식 150개 제품의 성분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밖에 학교 급식에도 말고기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조사 결과 영국 내 47개 학교의 급식용 파이 제품에서 말고기 성분이 검출됐으며, 영국의 최대 공급업체인 ‘소덱소’의 다진 쇠고기 제품에서 말고기 성분이 검출됨에 따라 피해 지역도 늘어날 전망이다. 다진 쇠고기는 주로 파이, 스파게티 소스, 냉동 햄버거 패티에 사용되며, 이렇게 생산된 제품들은 학교 외에도 요양원, 병원, 군대, 교도소, 관공서 구내식당, 스포츠 경기장 등에 납품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사실일 경우 지난해 런던 올림픽을 찾은 수많은 관중들 역시 부지불식간에 말고기를 먹었던 셈이 되며, ‘로열 에스코트’ 경마대회에 참석했던 엘리자베스 여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 역시 말고기를 먹은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오랜 세월 승마를 즐기는 귀족문화가 발달해 말에 대한 애정이 깊은 영국인들에게 이런 사실은 그야말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말고기를 먹지 않는 영국과 아일랜드 소비자들에게 이번 스캔들이 더욱 충격으로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FSA의 관계자는 “말고기가 인체에 유해한 것은 아니다. 이번 파문이 문제가 되는 것은 말고기 성분을 라벨에 표시하지 않은 데 있다”고 꼬집었다. 다시 말해 이는 엄연히 소비자를 속이는 범죄 행위이자 사기 행위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형마트에 흘러 들어온 말고기가 과연 인체에 무해할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말들이 소나 돼지처럼 처음부터 식용으로 사육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때문에 식용 말고기와 관련된 명확한 규정이 없는 게 현실이며, 이로 인해 말고기 시장은 무허가 도축업체를 비롯해 불법과 편법이 횡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일하는 말, 경주마, 말 도축장, 말고기 버거, 고기와 야채를 넣어 만든 요리 무사카, 말 도살장.
과연 말고기가 인체에 무해한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말들이 식용으로 도축되는지 알 필요가 있다. 영국의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현재 유럽에서 말고기로 사용되는 말들은 이동 수단이나 노동력으로서 가치가 떨어진 말들이나, 혹은 늙고 병들어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된 경주마들이다.
노동을 하는 말들의 경우에는 루마니아산들이 많다. 아직도 루마니아의 많은 시골 농가에서는 마차를 끌거나 쟁기질을 하는 데 말이 이용되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오늘날 농사를 짓는 데 이용되는 말들은 최대 76만 마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농부들은 늙어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말들이나 병이 든 말들을 가축시장에 내다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농부들이 이렇게 말을 팔아 받는 금액은 한 마리당 100파운드(약 16만 원)가량이다.
현재 루마니아에는 상업용 말고기 도살장이 25곳 있으며, 매년 생산되는 말고기는 1만 4000톤가량이다. 하지만 루마니아 사람들은 말고기를 즐겨 먹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도축된 말고기는 대부분 해외로 수출되고 있으며, 매년 1만 마리 이상이 말고기 최대 수입국인 이탈리아로 수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주마의 경우에는 늙고 병들거나 혹은 심각한 부상을 당한 말들만이 식용으로 도축되고 있다. 심지어 한때 트랙에서 영광을 누렸던 유명 경주마들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경우도 있다. 실제 1986년 켄터키 더비 우승 및 1987년 이클립스 어워드 ‘올해의 말’ 수상마인 ‘페르디난드’가 일본에서 애완동물 사료로 가공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도 하다.
사실 말고기 자체를 즐기는 것은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전혀 거부감이 없는 하나의 식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제는 말고기가 소고기로 둔갑해서 팔린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말고기가 이렇게 불법적으로 소고기인 양 유통되기 시작한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영국의 경기 침체와 최대 말고기 수출국인 루마니아의 법 개정 때문이다. 또한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말고기를 찾는 식품업체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 역시 이유가 될 수 있다. 실제 말고기 가격은 소고기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영국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로 불거진 경기 침체로 인해 말의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한때 신분 과시용으로 사들였던 말들을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된 부유층들이 말을 시장에 내다팔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말을 파는 사람은 많고 사는 사람은 적은 것이 문제였다. 생활고에 시달린 말 축산업자들은 결국 음성적인 형태로 말들을 도축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식용으로 도축된 말들은 영국에서 지난해 9000마리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루마니아의 경우에는 2007년부터 마차의 주요 도로 운행이 금지되면서 이른바 ‘노는 말’들이 늘어나면서 말 도축량이 늘어났다. 이렇게 쓸모 없어진 말들은 결국 도축되기 시작했으며, 이 가운데는 당나귀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또한 2년 전 유럽연합이 루마니아 야생마들의 해외 수출 금지조치를 내린 것 역시 말고기가 소고기로 둔갑하는 데 기여했다. 야생마들의 수출이 금지된 이유는 흔히 ‘말 에이즈’라고 불리는 ‘말 전염성 빈혈’ 때문이었으며, 루마니아 농부들은 야생마들의 수출이 금지되자 대신 도축된 말고기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도축된 말고기는 냉동 혹은 냉장된 상태로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불가리아로 수출됐고, 즉석식품 가공 과정에서 분쇄된 후 소고기에 섞여 팔리게 됐다.
그렇다면 노동에 사용됐던 말들이나 경주마를 먹을 경우 인체에 해롭진 않을까. 이와 관련, 프랑스 농업부는 일부 말고기에서 가공육에 사용이 금지된 페닐부타존 성분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해 파문을 일으켰다. 페닐부타존은 진통제로 투여되는 약물로, 다량 섭취할 경우 무력성 빈혈 및 혈액순환 장애 등을 일으키는 등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심한 경우에는 골수에서 적혈구 및 백혈구 세포와 혈소판 생성이 중단되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영국 정부는 “이번에 말고기에서 검출된 페닐부타존은 극히 미미한 양으로 인체에 거의 무해하다”고 말했다. 설령 해당 말고기를 섭취한다고 해도 페닐부타존이 몸 안에 쌓이지 않고 금세 배출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말고기에 대한 불안감과 의혹은 쉬 가시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나라에서 말고기 자체를 먹는 것을 꺼리는 인식이 강한 데다 속았다는 배신감이 강해 당분간 말고기를 둘러싼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