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가져” 부적절한 문자 몸살
한 연예기획사 건물에 팬들이 스타를 향한 메시지를 붙이는 모습.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조공’의 사전적 의미는 ‘종속국이 종주국에 때를 맞추어 예물을 바치던 일’이다. 즉 양자가 주종 관계일 때 쓰이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특정 연예인에 대한 일부 팬들의 광적인 신봉이 비뚤어진 풍경을 만들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에는 팬들 사이에서 일명 ‘성(性)조공’도 언급돼 업계 관계자들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성조공이란 일부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기꺼이 몸까지 바치고 성관계를 맺겠다는 의지를 담은 표현이다. 아직까지 수면 위로 드러난 사례는 없지만 단 한 건이라도 불거지면 연예계 전체를 뒤흔들 만한 화약고이기 때문에 매니저들도 혹시 모를 사태에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성조공은 ‘사생팬’ 문화가 성행하는 아이돌 팬클럽 사이에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아이돌 가수들의 숙소나 집 앞까지 찾아가는 몇몇 팬들은 팬레터나 선물 등에 성적인 메시지를 담아 보내곤 한다. 아이돌 가수들의 휴대폰 번호를 확보한 팬들은 성적인 묘사가 가득 담긴 문자 메시지를 수시로 보내 민망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소속 가수들의 휴대폰 번호를 바꿔도 어찌된 영문인지 금세 번호를 알아내 메시지를 보내곤 한다. 이 중에는 ‘숙소 앞에 와 있고 언제든 몸을 주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며 “당연히 연예인들이 그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일이 없지만 혈기왕성한 나이 대이기 때문에 소속사 관계자들은 항상 주의를 주며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런 아찔한 상황은 평범한 술자리에서도 벌어지곤 한다. 주당으로 통하는 배우 A는 평소에도 지인들과 공개된 자리에서 어울려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이럴 때면 다른 테이블에서 술자리를 갖던 여성들이 말을 걸어오는 경우가 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말을 걸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원나잇 스탠드’를 원하는 이도 적지 않다고 A의 측근은 설명한다.
이 측근은 “이들은 A의 팬을 자처하면서 자연스럽게 접근한다. A와 함께 술을 마시던 남성들도 매력적인 여성들의 적극적인 대시에 호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이런 경우 여성들 일행 중에는 A와의 달콤한 하룻밤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 과거에는 편하게 함께 술잔을 기울인 후 헤어질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SNS 등이 발달해 얼토당토않은 소문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접근조차 막고 있다”고 말했다.
이 측근은 이어 “남성들이 낯선 여성과의 잠자리를 꿈꾸듯 비슷한 생각을 갖고 사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특히 상대가 연예인일 경우 더욱 적극적이다. 아직까지 크게 문제가 된 적은 없지만 좋아하는 연예인들에게 성조공하길 원하는 여성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JYJ의 팬클럽이 버스에 광고를 낸 모습.
한 연예 매니저는 “호텔방에 있다 보면 문 앞에 서성이거나 문을 두드리는 해외 팬 때문에 골치가 아플 때가 있다. 이 정도의 극성팬은 순수한 마음보다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판단한다. 때문에 소속 연예인과 대면하는 것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시키려 한다”고 전했다.
1970~80년대에도 성조공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지방 방송사 출연이나 공연이 있는 연예인들은 현지에서 숙박 후 돌아올 때가 많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열혈 팬들이 숙소 앞에 나타난다. 경력 많은 한 가요계 인사는 “매니저들이 호텔 앞에 온 여성 팬을 방으로 불러 연예인들과 만남을 주선했다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일부의 이야기일 수는 있지만 연예계 전체의 상황인 것처럼 매도되면 안 된다. 이미지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 성과 관련된 문제다”고 충고했다.
극단적인 팬 문화인 성조공은 ‘설’만 난무할 뿐 정확한 실체를 드러낸 적은 없지만 이에 못지않은 그릇된 조공 문화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예전에는 연예인의 생일이나 컴백, 1위 등극 등 특별한 날에 선물이 전달됐지만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선물 공세가 이어진다. 가수 대기실에는 1인당 10만 원을 호가하는 도시락 수십 개가 쌓여있고 방송에 출연한 연예인이 “평소 OOO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면 해당 물품이 봇물 터지듯 배달된다. 경제력이 없는 10대 팬들의 경우 부모님에게 무리한 용돈을 요구하거나 조공을 바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나서기도 한다. 조공에 쓰일 돈을 지불하지 못하면 팬클럽 활동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 정도는 약과다. 일부 팬들의 고가 조공은 팬클럽 문화의 폐단으로 지적받고 있다. 아이들 그룹 출신 S의 팬들은 S를 위해 고가의 녹음기기를 선물했다. 또 다른 걸그룹의 멤버인 J는 다이아몬드 반지와 명품백을 선물받기도 했다. 얼리어답터(신제품을 빨리 구매하는 집단)로 유명한 또 다른 아이돌 가수의 경우 팬들이 지속적으로 전자제품을 공급해 줘 자기 돈을 쓸 일이 없다.
이외에도 팬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을 응원하기 위해 신문에 광고를 싣고 래핑 버스를 운영하기도 한다. 한 아이돌 그룹의 팬클럽은 홍보비로만 1억 원 이상의 돈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져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낳았다.
또 다른 연예 관계자는 “값비싼 선물을 하면 연예인들이 자신을 기억해줄 거라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에게 말을 잘해달라며 담당 매니저에게 선물 공세를 펼치기도 한다. 이런 조공 문화가 장기적으로 볼 때 스타와 팬 모두에게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주고 연예계를 멍들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