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신’도 끝나고 ‘실탄’도 쌓였으니…
▲ 최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대우조선 M&A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경영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 ||
한화는 지난 4월 17일 대우조선해양(대우조선) 인수전 참여를 발표했다. 대우조선은 시가총액이 8조 원을 넘는 초대형 매물. 지난해 영업이익만 3212억 원을 올렸다. 그동안 포스코와 GS 두산 등이 인수의사를 밝혀왔는데 이번에 한화도 뛰어든 것이다. 김승연 회장은 대우조선 인수를 ‘제2의 창업’이라고 부르며 전 직원이 총력을 기울여줄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한화가 대우조선 인수를 준비한 것은 1년 전부터라고 전해진다. 이미 전략기획실을 중심으로 M&A TF팀을 가동해왔던 것. 포스코 GS 등은 한화의 인수 참여에 대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화의 재무구조가 대우조선을 인수할 만큼 건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계에서도 인수금액이 10조 원을 넘길 것이라고 예상되는 대우조선을 한화가 손에 쥘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많아 보인다. 이에 대해 한화 측은 “지난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한 후 M&A에는 참여하지 않았다”면서 “충분한 실탄을 확보하고 있다”고 응수했다. 오히려 포스코와 GS에 역공을 가하기도 한다. “후판 공급업체인 포스코가 조선업체를 인수하는 것은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 “GS가 조선업체를 인수해서 얻는 시너지는 별로 크지 않다”라고 말이다.
한화는 대우조선을 인수하면 “에너지 및 자원개발 사업과 연관해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밝혔다. 이와는 별도로 재계 일각에서는 한화의 인수 참여를 다르게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 2003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재계서열에서 한화는 7위였다. 하지만 지난해 10위로 밀려나더니 올해도 간신히 10위를 유지했다. 그 뒤를 두산과 STX가 쫓고 있어 자칫 10위권에서 밀려날 수도 있는 상황. 만약 한화가 대우조선 인수에 성공한다면 한진과 금호를 누르고 8위로 순위를 높일 수 있다. 한화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김 회장이 대우조선을 선택한 이유도 재계순위를 염두에 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를 뒷받침했다.
한화가 대우조선 인수전에 참여한다고 발표한 날, 메리츠화재해상보험(메리츠화재)은 제일화재를 인수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메리츠화재는 한진그룹 창업주 고 조중훈 회장의 4남인 조정호 회장이 버티고 있는 회사. 반면 제일화재는 김승연 회장의 누나인 영혜 씨가 대주주이자 이사회 의장으로 있는 곳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재계의 눈은 일제히 김 회장에게로 향했다. 김 회장이 누나를 도와 메리츠화재로부터의 적대적 M&A에 백기사로 나설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 결국 김 회장은 대한생명과 한화손해보험(한화손보)을 제외한 한화 비상장 계열사들이 제일화재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두 회사를 뺀 것은 대한생명의 2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예보)의 눈치를 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예보는 한화손보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예보는 지난해 한화손보가 대한생명의 유상증자를 추진하려 할 때 반대해 무산시킨 적이 있다. 더욱이 대한생명 인수와 관련해 예보와의 중재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예보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하지만 제일화재 주가가 연일 상승함에 따라 한화가 지분 인수에 쏟아 부어야 할 돈이 당초 예상보다 커지면서 한화손보 등이 참여할 가능성이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23일에 한화손보는 사옥 건물을 2800억 원가량에 매각했다. 이 가운데 1800억 원을 여의도에 위치한 한화증권 빌딩 인수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해도 1000억 원의 돈이 남는다. 한화 측은 “예전부터 계획된 매각작업이었다”라며 의미를 축소하고 있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이 돈이 제일화재 지분 인수에 사용될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예보의 한 관계자는 “만약 한화가 대한생명이나 한화손보를 통해 제일화재를 지원하려 한다면 반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화는 한화손보 사옥을 매각하던 날 한화증권 빌딩을 다시 사들였다. 매입금액은 3201억 원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3년에 1382억 원에 팔았으니 불과 5년 만에 2000억 원에 가까운 금액을 더해 매입한 것. 여의도 주변에서는 “시가보다 500억~600억 원가량 비싸게 샀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당초 한화와 함께 건물 매입을 할 것이라고 알려졌던 국민연금도 “금액이 너무 과장됐다”며 투자를 철회했다. 한화는 국민연금을 대체할 투자자를 찾아보려 했지만 선뜻 나선 곳이 없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한화가 무리수를 둬가며 한화증권 빌딩을 매입한 이유는 김 회장의 ‘금융업에 대한 의지’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향후 한화는 한화증권 빌딩에 대한생명 한화손해보험 등 금융사를 모두 입주시킬 계획이다. 특히 금산분리규정이 완화되면서 사업지주사가 금융사도 지배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김 회장이 한화증권 빌딩에 더욱 애착을 뒀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한 재계에선 한화가 기존 증권사도 한두 곳 더 인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증권사는 CJ투자증권. 한화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검토한 바 없다”고 부인했지만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마지막 단계만 조율하고 있다”며 인수 참여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놨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