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면 실력 잃으면 운… 진짜루?
로또는 당첨자가 나오지 않으면 다음 회차로 당첨금이 이월된다. 이 경우 당첨금은 커지고 이에 따라 로또를 사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이들은 로또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숫자 조합을 연구하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과연 이런 행동이 합리적일까. 로또의 당첨 확률은 길거리를 가다 마른 날에 벼락을 맞고 쓰러졌다가 다시 살아나서 계속 걸어가다 또 벼락을 맞고 죽었다 살아날 확률이다. 한마디로 운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확신에 찬 베팅을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심리학에선 이를 두고 ‘과잉 확신 혹은 자기 과신’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매우 똑똑하며 실제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의사결정을 할 때도 사람들은 자신이 내린 판단의 정확성에 큰 자신감을 갖고 있다. 이런 태도는 삶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우울증 환자들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부정적인 생각이 강해 흔히 자신감이 없어 의사결정을 머뭇거린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은 정신건강에 매우 좋은 일이다. 자기 과신은 또한 자아실현의 예언적 기능을 하기도 한다. 내가 갖고 있는 인생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나는 할 수 있어’라는 강력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사물에는 모두 양면이 있듯이 과잉 확신은 이처럼 삶에 활력을 공급하고 정신건강에 자양분을 공급한다. 그러나 투자의 세계에서는 왕왕 사뭇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한다.
먼저 지난 1999년 말과 2000년도의 벤처 투자 열풍을 한번 상기해 보자. 당시 ‘벤처 투자=대박’이라는 공식이 공공연히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벤처기업 주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을 갖기 위해 안달을 했고 벤처 투자로 돈방석에 올랐다는 사람들을 보면 질투와 시기심을 느껴야 했다. 사람들은 모두 벤처기업에 대한 지나친 과잉 확신에 빠져 들었고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벤처기업의 성공 확률을 보면 벤처 투자는 처음부터 패배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게임이었다. 벤처기업의 평균 실패 확률은 80%가량이다. 100개 기업이 창업을 하면 80개 기업이 부도가 난다는 얘기다. 벤처 기업의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경우, 창업 후 5년을 넘기지 못한 회사가 61%, 10년을 넘기지 못한 회사가 79%라고 한다. 미국이 이 정도인데 하물며 우리나라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벤처기업에 대한 과잉 확신은 많은 투자자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 주었을 뿐이다.
헨리 웰스와 윌리엄 파고가 1850년에 설립한 웰스파고은행과 아멕스, 1837년과 1886년에 설립된 생활용품업체 P&G와 코카콜라 등이 대표적이다. 버핏은 이를 두고 “신생 기업은 우리의 게임 대상이 아니다”라고 얘기한다. 즉 버핏이 투자 대상으로 선호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강력한 브랜드나 가격 경쟁력으로 검증된 회사들이다. 이기는 게임을 하겠다는 버핏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과잉 확신의 또 다른 위험성은 ‘잦은 매매’로 나타난다. 미국과 한국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과잉 확신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매매 횟수가 많다고 한다. 펀드 투자도 이와 비슷하다. 시장에 대한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들일수록 펀드를 환매하는 기간이 짧다. 흥미로운 점은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과잉 확신이 강해 더 자주 매매한다는 사실이다.
과잉 확신과 매매 횟수의 상관관계에 대해 최초로 분석한 미국의 오딘 교수에 따르면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평균 매매율이 1.5배 높은 반면 연평균 수익률은 0.94%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딘 교수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연구된 결과를 보면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매매 횟수가 많고 또 매매 횟수가 많은 사람들일수록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남성들이 여성들에 비해 ‘주식시장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기회를 더욱 잘 포착할 수 있다’는, 잘못된 과잉 확신을 갖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럼 왜 인간들은 이런 과잉 확신에 빠져드는 것일까.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할 수 있다면 투자에서 실수를 줄이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차적인 이유는 ‘경험의 부족’이다. 한마디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것이다.
‘초보자의 행운’이란 말이 있다. 고스톱이나 주식 투자를 처음 시작하면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는 격’으로 돈을 딴다. 이런 경우 첫 투자로 돈을 벌기 때문에 금세 자기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게 된다. 이후 투자 금액을 늘린다. 그리고 결국 그만큼 크게 돈을 잃는다. 이런 사람들은 미국 월스트리트의 유명한 격언 ‘우수한 두뇌와 강세장을 혼동하지 말라’는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주관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앞서 자동차 운전자들처럼 객관적인 자료를 무시한 채 자신이 생각한 대로 믿어 버리는 것이다.
과잉 확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투자의 세계를 확률론적 상황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의사결정을 할 때 어느 정도의 승률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또 다른 대안은 투자의 이유와 근거를 적는 것이다. 부동산을 사든 주식을 사든 자신이 왜 이곳에 투자해야 하는지를 열 가지 정도를 적어보라. 이렇게 하면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스스로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 lsggg@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