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 내놔야 ‘얇은 지갑’ 채울 판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GS그룹은 대우조선해양(대우조선) 인수에 사활을 걸고 뛰어들어 있는 상황이다. 재계에서는 GS가 이미 지난 2006년경부터 대우조선 인수를 위한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을 정도다. 영국과 미국 등의 글로벌 컨설팅 업체들로부터 대우조선을 인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기대효과는 물론 조선업종과 에너지산업의 향후 전망 등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분석해 왔다는 것.
현재 GS그룹은 지주사인 GS홀딩스 내에 별도의 팀을 구성해 대우조선 인수를 위한 작업을 추진 중이며 서경석 GS홀딩스 사장이 주도적으로 팀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외국계 IB(투자은행) 한 곳과 인수전 대비를 위한 자문계약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또 중동지역의 해외 투자자와 국내 금융회사들로부터 자금 지원을 약속받고 그룹의 양대 축인 GS건설과 GS칼텍스를 중심으로 각 계열사가 대우조선 인수 후의 그룹구도 재편을 염두에 둔 밑그림 그리기에도 돌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GS그룹의 대우조선 인수 의지는 어느 때보다 확고하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GS가 ‘과연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라며 물음표를 다는 이가 적지 않다. 그동안 진행됐던 대형 M&A에서 GS가 번번이 실패한 전력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GS그룹은 지난해 말 하이마트 인수전에서 유진그룹보다 500억 원 많은 2조 원을 제시하고도 인수에 성공하지 못했다. 선종구 하이마트 대표의 ‘고용보장’이라는 작은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서도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에 고배를 마셨다.
재계에서는 GS가 소문만 요란할 뿐 실제 M&A에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는 이유를 지배구조에서 찾고 있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GS칼텍스를 완벽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어 투자결정 때마다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지주회사인 GS홀딩스는 자산가치와 배당수입의 80% 이상을 GS칼텍스에 의지하고 있다. 하지만 합작회사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신규 투자 결정에 있어 번번이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지난 2005년 8월 인천정유의 유력한 인수 후보 가운데 하나였던 GS칼텍스가 돌연 인수 의사를 접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인천정유에 들어가야 될 1조 원이 넘는 고도화 설비 추가 투자에 대해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는 외국계 주주(쉐브론 홀딩스 40%, 쉐브론 글로벌 에너지 10%)를 설득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GS홀딩스 측은 대우조선만큼은 다를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GS그룹의 차세대 성장동력을 대우조선에 걸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GS칼텍스가 아닌 GS홀딩스가 직접 인수 주체로 나섰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쉐브론과 반드시 합의를 할 필요가 없어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럼에도 재계는 여전히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최대 6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수자금을 GS홀딩스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GS홀딩스는 자산 총액 3조 5587억 원. 부채는 7444억 원으로 부채비율이 26.5%에 불과한 건실한 회사다. 지주회사의 부채비율 최대한도인 200%를 지키면서 차입을 할 경우 4조 원이 넘는 돈을 끌어올 수 있다. 숫자상으로는 6조 원을 충분히 맞출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산은 당장 팔아 현금화하지 않는 한 어디까지나 자산일 뿐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아니다.
그렇다면 GS홀딩스가 보유한 현금은 얼마일까. 지난해 말 기준으로 GS홀딩스가 보유한 현금자산은 겨우 133억 원에 불과하다. 계열사인 GS건설과 GS홈쇼핑 등을 포함해도 4000억 원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재계는 파악하고 있다. 결국 GS홀딩스가 6조 원이라는 자금을 조달하기는 무리라는 얘기가 된다. 반면 인수전 경쟁자인 포스코와 두산 등은 이미 5조 원대에 달하는 ‘실탄’을 준비해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GS그룹 주변에서는 GS홀딩스를 돕기 위해 GS건설이 나설 것으로 전망했었다. 지분구조상 GS건설은 GS그룹의 계열사가 아닌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지분 12.2%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상 개인회사다. 하지만 건설업의 특성상 현금동원력이 워낙 막강해 결국 대우조선 인수를 위한 ‘백기사’로 투입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었다. 그러나 지난 4월 열린 GS건설의 해외 투자설명회에서 GS건설의 최고경영진이 대우조선 인수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사실이 알려지면서 ‘GS건설 구원등판설’은 물 건너간 상태다.
이쯤 되면 재계가 GS의 대우조선 인수 능력에 고개를 갸웃할 만한 이유는 충분한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GS건설의 인수전 불참이 확인된 뒤부터 ‘계열사 매각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할 때 빠듯한 현금사정을 맞출 수 있는 방법으로 결국 계열사를 포함한 자산 매각 방안이 병행되리라는 예상이다. 실제로 재계에서는 벌써부터 “GS홀딩스가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GS리테일 등 일부 회사를 매각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회사 이름이 거론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GS가 대우조선 인수를 통해 주력사업을 에너지 중심으로 개편하고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유통분야는 매각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반면 일각에서는 매각보다는 상장을 통한 현금 확보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비록 자금 확보가 현안이기는 해도 인수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계열사부터 팔고 보는 식의 방법은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런 소문들에 관해 GS그룹은 ‘매각은 루머, 상장은 검토 가능’이라는 입장이다. GS그룹 측은 “유통업체인 GS리테일을 판다는 소문은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며 상장도 검토할 수는 있지만 당장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GS그룹 관계자는 “현재 대우조선 M&A를 위한 자금 동원에는 문제가 없다”며 각종 소문을 부인했다.
이처럼 GS그룹은 대우조선 인수 작업을 시작도 해보기 전에 온갖 소문부터 극복해야 하는 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일각에서는 경쟁회사들이 고의적으로 루머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런 소문들이 나돌게 된 데에는 굵직굵직한 M&A건에 계속 참여하면서도 매번 고비를 넘지 못한 GS에게도 약간은 책임이 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대우조선 인수전에서 GS그룹이 ‘양치기 소년’의 이미지를 벗고 대어를 낚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