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불려줄 ‘미다스의 손’ 찾아라
과연 어떤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좋을까. 이런 질문에 의미 있는 해답을 제공하는 인물이 바로 2001년 93세로 작고한 로버트 H. 하일브론이다. 하일브론은 주식에 직접 투자하지 않고 자신보다 더 주식 투자를 잘하는 사람을 골라 그 사람이 운용하는 펀드에 돈을 맡겨 커다란 부를 일군 인물이다.
가치투자의 영원한 교훈 중 하나는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를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범위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것이다. 금세기 최고의 투자가 워런 버핏은 이를 두고 ‘능력 범위’(The circle of Competence)라는 표현을 쓴다. 90년대 말 기술주 열풍이 불던 시절, 버핏은 인터넷이나 IT(정보기술) 관련 주식에 전혀 투자하지 않았다. 자신이 그 분야를 잘 모른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일브론은 ‘능력 범위’라는 개념을 주식이 아닌 사람에게 적용했다. 하일브론은 1929년 대공황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아버지가 경영하던 피혁회사와 주식 채권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를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돈을 관리해 본 경험이 없던 하일브론은 큰 고민에 빠졌다. 불현듯 그의 머리에 떠오른 사람이 벤자민 그레이엄이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레이엄과 거래했던 사실이 생각났던 것.
그레이엄은 가치투자의 창시자이자 워런 버핏의 스승이었고 당시 최고의 투자가 중 한 명이었다. 하일브론은 그레이엄을 만나 한 달 수수료로 25달러를 주기로 하고 투자 상담을 받았다. 나중에는 아예 그레이엄 밑으로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수준(?)을 알게 된다. 직장 동료였던 워런 버핏이나 월터 슐로스, 버핏이 유일하게 추천했던 펀드인 세쿼이어 펀드를 운용했던 빌 루안 등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투자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던 것이다.
그 이후 그는 직접 투자에서 손을 떼고 버핏의 투자회사인 버크셔 헤더웨이, 월터 슐로스와 빌 루안의 펀드에 투자를 했다. 그 이후에는 젊은 투자가 중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을 찾아 그들에게 투자를 했고 그 결과 커다란 부를 쌓을 수 있었다. 버핏과 슐로스 그리고 루안 등의 투자 실적이 좋아짐에 따라 그의 재산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하일브론의 삶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투자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투자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에 하나는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의 주식이나 지역의 부동산에 주위 사람들의 말만 믿고 투자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의사결정은 대개 비참한 결과는 낳기 일쑤다. 다른 하나는 펀드 투자의 요체가 다름 아닌 ‘사람 선택’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펀드 투자는 한마디로 ‘사람 놀음’이라는 것.
펀드 투자의 요체가 ‘사람 선택’인 것은 펀드 비즈니스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사실 펀드 비즈니스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팔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싸다 비싸다를 정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삼성전자 주식이 저평가됐다고 판단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일류 자산운용사를 보면 초창기에는 개인이 회사를 설립해 시작한 경우가 많다.
그럼 펀드 운용 회사의 누구를 봐야 하는가. 일차적으로는 그 회사의 대주주가 투자 전문가인가 하는 것을 봐야 한다. 그 회사의 주인이 투자 전문가로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는 경우라면, 그렇지 않은 회사에 비해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금융업과 전혀 관련 없는 기업이 주인인 경우에는 일시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다가도 직원들이 다른 회사로 옮겨 갈 경우 갑자기 수익률이 나빠질 확률이 높다. 그러나 대주주가 투자전문가인 회사는 설사 직원들이 다른 회사로 이동해 나가더라도 투자의 일관성을 지켜낼 수 있다.
두 번째로 살펴봐야 할 것은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의 최고투자책임자(CIO·Chief Investment Officer)가 누구인가를 살펴봐야 한다. 한 기업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CEO(최고경영자)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 펀드의 투자 철학과 스타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CIO가 어떤 사람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특히 CIO가 자주 바뀌는 회사는 현재 수익률이 좋다고 하더라도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CIO가 자주 바뀐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CIO의 실력이 뛰어나서 다른 회사로 스카우트됐거나 아니면 자신이 회사를 차리는 경우다. 만일 다른 회사에서 샐러리맨인 CIO에게 이적료로 10억 원을 제시한다면 그 어떤 CIO가 마다하겠는가.
다른 하나는 운용 실적이 나빠서 회사를 나가는 경우다. CIO는 오로지 수익률로 평가를 받기 때문에 수익률이 저조해 펀드 판매 실적이 나쁘면 퇴진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펀드를 선택할 때는 CIO가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면서 운용을 하고 있는 회사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위험을 줄일 수 있고,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길이다.
CIO에 대한 정보는 신문 기사나 자산운용협회 혹은 펀드평가 회사의 홈페이지를 이용하면 어느 정도 구할 수 있다. 정보를 수집할 때 집중적으로 봐야 하는 것은 ‘CIO가 얼마 동안 그 회사에서 안정적으로 운용했느냐’다. 5년 이상이라면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다고 본다.
세 번째로 고려해야 할 것은 투자 스타일이다. 한 자산운용사가 모든 펀드 상품을 잘 운용하기란 쉽지 않다. 회사마다 강점이 있는 펀드가 있기 때문에 이런 상품을 이용하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는 성장주 펀드에 강점이 있고 어떤 회사는 가치주 펀드에서 좋은 성과를 낸다. 그리고 또 다른 회사는 배당주 펀드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이렇게 회사의 강점이 반영된 간판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길이다.
시장 변동을 맞추려 하거나 아니면 종목을 골라 직접 투자하는 것보다 사람을 보는 눈을 기르는 게 더 쉬운 방법이다. 왜냐하면 시장 예측은 신의 영역에 해당되는 것인 데다 직접 투자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을 고르는 것은 지금까지 살면서 배워온 자신의 경험을 활용하면 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를 내는 가장 유력한 방법은 바로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펀드 투자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 lsggg@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