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부는 ‘식물’…새 리더감도 부족
11일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황우여 대표 등 참석 의원들이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 촉구 및 북한의 위협에 대한 규탄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박 대통령의 전략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작금의 ‘식물 지도부’는 오히려 박 대통령에겐 실보다 득이 커 보인다. 박 대통령 본인이 청와대에서 국회 의석수 절반에 달하는 거대 여당의 실질적인 대표로 ‘당심’을 좌우할 수 있는 까닭에서다.
한정치권 인사는 “황우여 대표와 이한구 원내대표, 그리고 최고위원과 원내부대표단…. 이 구성원의 스타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자기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즉,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울 인물이 전무하다는 뜻이다.
김무성 전 의원
“학기 초에 선생님이 ‘자, 반장 할 사람 손들어봐’라고 합니다. 학생들이 막 손을 들겠지요. 지금이 딱 그 시기입니다. 오는 4월은 친박계의 리더가 되고 싶은 인물이 대거 손을 들 시기라는 것이죠. 박근혜가 빠진 공간이 텅 비어 있고 당은 흔들리는데 당장 4월 재보선, 즉 중간고사를 치러야 합니다. 여기에다 안철수의 귀환, 5월 민주당의 전당대회까지…. 야권은 뭔가 들썩들썩하면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어요. 집권 여당이 뭔가 수를 두지 않으면 박근혜와 야당만 보이는 정국이 시작될 것이란 이야기죠.”
그의 분석은 꽤 정확해 보인다. 사실 집권 여당이 돋보일 때는 정부와 청와대를 상대로 오히려 야권보다 건전하고 상식적인 견제를 하거나, 정부가 처리해야 할 과제에 대해 ‘건강한 돌격대’ 역할을 해내거나, 현안이나 민생문제에 대해 야권보다 설득적인 대안을 내놓을 때다. 이 관계자는 “물론 지금은 어느 때보다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에 관심이 큰 것이 사실이지만 새누리당발 이슈가 없어도 너무 없다”며 “4월 재보선이 어떤 결과가 나오든 당 지도부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큰 변수는 바로 ‘김무성의 귀환’ 여부다. 지난해 대선 정국에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대본부장 역할을 톡톡히 해낸 그는 부산 영도 재선거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당이 공천을 줄지 알 수 없는 것은 대선전에서 그의 역할이 컸다는 ‘논공행상론’과 그의 등장을 꺼리는 ‘포스트 박근혜’들의 견제가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심중도 알 길이 없다. 이미 친박계 울타리를 한번 떠났던 인물인 ‘무대(김무성 대장의 줄임말)’는 자기 정치를 할 사람이며, 박 대통령의 의중을 살피기보다 당내 요구를 먼저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정보 관계자는 “‘무대’의 출현이 성사된다면 19대 국회는 무대가 오기 전과 후로 나뉠 정도로 당의 색깔이 싹 바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누가 친박계 리더로 떠오를까. 지역별로 새누리당 리더군을 살펴보면 이렇다. 수도권에서는 김문수 경기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나경원 원희룡 전 의원, 남경필 의원 등이 리더 후보군이다. 하지만 모두 ‘큰 단점’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왼쪽부터 유승민 의원, 최경환 의원, 서병수 의원, 유기준 의원
새누리당의 기반인 대구·경북(TK)에서는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 최경환 의원이 리더감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최근 군 공항 이전 특별법을 통과시킨 유 위원장은 자신의 지역구 현안이자 대구의 현안을 해결하면서 “4선은 맡아놓은 당상”이 됐다. 박 대통령에 쓴소리, 바른소리를 해가며 멀어진 대표적인 케이스여서 진보층, 중도층에서도 꽤 선호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언론과의 스킨십이 약하고 정치력이 없다는 비판을 듣는다. 최 의원은 박 대통령의 측근 중의 측근이지만 TK에서조차 그의 지지 세력이 없을 정도로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다. 정무형 비서 정도이지 리더로선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오히려 부산·경남(PK) 후보군이 눈에 띈다. 김무성 전 의원에다 서병수 사무총장, 유기준 최고위원, 김정훈 의원, 그리고 경남에는 이주영 의원과 국무총리로까지 지명된 바 있는 김태호 의원이 있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무엇보다 PK가 저축은행 사태와 동남권 신공항 무산 등으로 야성을 되찾으면서 전략적 요충지가 된 것이 든든한 배경이다. 지난 대선전에서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부산을 기반으로 해 전략적 관심지역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즉, PK 민심을 새누리당이 무시하기 어렵게 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을 이끌 새 친박계 리더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박근혜 색깔빼기’여야 하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과 즈음해 북한의 위협 수위가 높아졌다. 가장 준비가 잘 돼 있을 것이라 여겼던 청와대와 정부의 인사에서부터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 과정까지 미흡함을 드러낸 박근혜 정부가 점점 인기를 잃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강한 여당, 균형 잡힌 여당을 이끌 새 리더가 시급히 출현해야 할 이유다.
선우완 언론인
‘여의도 대통령’ 현상 재연되나 안철수 제안 먹히면 ‘파워 업’ 그랬다. 박근혜 대통령은 분명히 18대 국회에서는 ‘국회 대통령’으로 활약했다. 지금 정치권은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정계복귀를 두고 과거 여의도 대통령 현상이 재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박 대통령으로선 안 전 교수의 행보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당장 서울 노원병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안 전 교수는 여야의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지지부진하자 ‘조건부 협상론’을 제안했다. “대승적으로 한쪽 안을 받아들이고, 1년 뒤 우려했던 점이 실제로 일어나는지 확인해 현실이 된다면 재개정을 약속하는 조건부 협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양쪽에서 대승적인 차원에서 정치력을 발휘해 창의적인 해결 방법을 만들어 내느냐가 중요하다.” 여의도 대통령은 사실 정치부 기자들이 만든 현상이다.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를 수정 처리하려 했을 때 기자들은 박 대통령에게 몰려가 입장을 물었고, 신공항 문제에서부터 크고 작은 이슈에 박 대통령의 의견과 입장을 기사화했다. 이 전 대통령은 사사건건 여의도 대통령이라는 암초에서 좌초되기 일쑤였다. 안 전 교수가 4월 보궐선거로 원내로 진입하게 되면 먼저 정계개편이 점쳐진다. 안철수 신당으로 몰려가는 여야 의원들이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다. 18대 국회에서 ‘주이야박(낮에는 친이 밤에는 친박)’ 현상이 있었듯 ‘몸은 당에 머물되 안철수에게 보험을 드는’ 현상이 생겨날 수도 있다. 안 전 교수의 발언이 파괴력을 가질수록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입지가 좁아지고, 그의 발언이 실제 먹혀들 경우엔 2016년 20대 총선을 향한 움직임이 분란하게 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새누리당 수도권 의원들로선 노원병 보궐선거 결과가 자신들의 정치적 스탠스를 분명히 할 바로미터가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대선 이후 새로운 출입처를 명받았던 전 정치부 기자들이 안 전 교수의 귀환과 함께 대거 정치부로 회귀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대선전에서 안 전 교수와 얼굴을 익혀 놓았기 때문에 취재가 수월할 것이란 논리지만, 그 이면에는 각 언론사가 ‘안철수 파워’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기 때문으로도 보인다. 안철수 마크맨이 점점 많아질수록 모든 이슈는 블랙홀처럼 안 전 교수를 따라다닐 공산이 크다. 선우완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