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때려야 그들이 산다
이재오 의원(왼쪽)과 정몽준 의원이 청와대를 겨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세력화로 이어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이 의원과 정 의원이 지난해 국회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정국 분석에 능통한 한 정치권 인사의 향후 정국 예측이다. 새누리당 내부가 조금씩 청와대와 정부를 향해 돌을 던지는 분위기로 바뀔 것이란 이야기였다. 정부조직법 개편안 파동으로 무능을 드러낸 당 지도부를 제외하고는 조금씩 주머니 속의 송곳이 드러나는 형국이라고 한다. 타이밍만 봐왔던 여당이 박 대통령 임기 ‘한 달 평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건전한 여당으로서 위상 제고에 나서야 한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물론 이 속에는 자기 목적을 실현하겠다는 저의도 담겨 있다.
가장 먼저 화살을 쏜 것은 새누리당 내 ‘노회한 세력’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더는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는 점이다. 상식적인 충언을 던짐으로써 당내 어른으로 똑바로 서고, 힘 있는 젊은 리더를 만들어 수렴청정해야만 정치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는 인물군인 것이다.
7선으로 당내 최다선이자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이었던 정몽준 의원은 처음으로 ‘지도부 총사퇴’ 카드를 꺼내 든 주인공. 그는 지난 3월 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린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새누리당 지도부가 총사퇴한다는 각오로 (정부조직법)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힘으로써 어른으로 우뚝 섰다. 무색무취하다는 평가를 들은 황우여 당 대표와 협상력은 발휘하지 못하고 독불장군 식으로 원내를 이끈 이한구 원내대표에게 ‘돌직구’를 날린 셈이다. 이를 두고 “속이 시원했다”는 당원들이 많았다.
친이명박계 좌장으로 새 정부 취임 전부터 ‘개헌론’ 카드를 꺼내 든 이재오 의원은 “청와대와 야당이 맞서면 여당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집권 여당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힘 있는 여당론’을 설파했다. 당내 4선으로 최고위원이지만 최근 국회 본회의장에서 누드사진을 보다 ‘딱 걸린’ 심재철 의원은 연일 인사 파동과 관련해 비판 일변도였다. 문제는 이 같은 ‘어른’의 말에 공개적으로 찬성을 표하는 이들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즉, 세력화로는 이어지지 않으면서 청와대로서는 별로 겁낼 것이 없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
하지만 최근 친박계 내부, 특히 PK(부산·경남)에서 ‘바른소리’가 적잖게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으로 회자된다는 점. 즉,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자기 세력화가 꼭 필요한 인물군이다.
유기준 최고위원은 최근 “청와대 인사검증 라인에서는 아무런 해명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는데 인사검증 라인에 있는 인사들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박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내년 6·4 지방선거에서 ‘야성(野性)’을 되찾은 부산시장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그다. 어느 때보다 ‘박근혜 색깔 빼기’에 나서 새누리당 우호세력에다 문재인, 안철수 지지세력까지도 아울러야 할 판이다.
부산시장 후보군으로 타천으로 거론되는 서병수 당 사무총장이 줄 사퇴 논란에서 인사검증 라인의 문책을 요구, “집권당의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국민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관계자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고 밝힌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강한 여당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중진 의원으로서의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박 대통령의 실기가 이들에게는 기회가 됐다.
새누리당 ‘수도권파’는 곧 송곳니를 드러낼 곳으로 거론된다. 안철수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 후보가 여의도에 입성할 땐 수도권에서의 정치 지형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신당이나 합당 등 정계 개편 움직임이 가시화할 가능성이 큰데, 이들 수도권파는 몸을 새누리당에 두고 한쪽 발은 안 후보에게 내밀면서 청와대 견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취임한 지 석 달 정도만 지켜보다가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변하지 않으면 눈치 보지 않고 목소리를 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1년만 지켜보겠다’는 이들은 새누리당의 전통 우호 지역인 TK(대구·경북) 인사들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에 전폭적인 지지를 해준 곳이고, 가장 기대가 큰 지역이지만 이번 인사에서 가장 물을 먹은 지역이 바로 TK”라며 “아군이 적군으로 갑자기 확 바뀔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라고 점쳤다. 지난해 19대 총선에서 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약 40%의 지지율을 보인 것을 시작으로 TK마저도 야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복선이다. 한 중진 의원은 사석에서 “이번 인사가 1년짜리라는 이야기가 있다. 대통합을 외쳤기 때문에 TK 배제는 어쩔 수 없이 이뤄졌다는 것인데 차후 인사를 보면 ‘TK 스탠스’를 정하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즉, 이 지역도 박 대통령에 대해 칼을 갈고 있다는 소리다.
새누리당 내부 분위기가 박 대통령에 대해 차갑게 식은 것은 이번 취임 한 달 평가가 불러온 측면이 크다. 산술적으로 봐서 국민 절반 이상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이 취임 한 달 만에 44%(한국갤럽)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를 받은 것은 당시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지지를 접은 층이 생겨난 것이 된다. 이는 지난 1990년 이후 역대 대통령 취임 한 달 지지도와 비교할 때 가장 낮은 수치다. 즉, 박 대통령의 인기와 집권 여당 인기가 동반 하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새누리당 각계각층에서 모두 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때마침 4월 재·보궐 선거와 5월 원내대표 경선, 같은 달 민주당 전당대회가 연이어 벌어진다. 새 정부를 향한 초반 여론을 읽을 수 있는 ‘장(場)’이 서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에 대한 ‘쓴소리, 바른소리’가 이미 타이밍을 잃은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모두가 뺨을 때릴 때 같이 때려선 사실상 정국 주도권과 국회 장악력 모두를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으로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 참 답답한 지경에 빠진 듯하다.
선우완 언론인
‘네 가지’ 없는 인사 참사 대통령은 보고 못 받았나 첫째는, 정홍원 국무총리가 ‘책임총리’로서 장관 제청권 등 천거에 나섰느냐는 점이다. 정 총리는 본인의 인사청문회에서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과 해임 건의권을 제대로 행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 총리 자신부터 수십 명의 국무위원과 청와대 비서진 임명 등 대부분이 만기친람(萬機親覽·임금이 온갖 정사를 친히 보살핌)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책임총리제는 결국 물 건너 간 것”이란 지적이 많다. 만약 정 총리가 중도 사퇴한 여러 인물 중 자신이 천거한 사람이 있는지를 먼저 밝히고, 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이의를 달지 않았다. 대한민국 헌법은 총리에게 대통령 보좌, 행정부 통할, 장관 제청권과 해임 건의권을 주고 있다. 둘째, 청와대 인사검증팀이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사퇴와 더불어 김용준 총리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김학의 법무차관,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 6명 고위직 사퇴 ‘대참사’에 대해 책임질 일을 했느냐다. 부적격 사유가 너무 많아 그들이 ‘리콜 대상’이라고 알렸는지, 아니면 ‘자격 미달 내역’을 애써 숨기면서 부실 검증을 했는지부터 따져 물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만약 인사팀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따라 나올 비리 전력을 알았다면 박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는지, 아니면 어느 선에서 덮어버렸는지, 보고를 했는데도 박 대통령이 이를 무시하고 내정을 강행했는지 조사할 필요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람의 문제인지, 시스템의 문제인지부터 따져야 한다는 것. 헌정 사상 초유의 인사 참사를 겪고 있지만 여전히 ‘천거팀’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셋째,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 지도부가 왜 계속 입을 닫고 있느냐다. 황우여 당 대표 등 지도부가 분명히 대통령 취임 이전에 청와대 비서진부터 인선하라고 박 대통령에게 주문했고, 이를 박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정부조직 개편안 협상이 난항을 겪었다. 여당에서 직언을 했는데 대통령이 듣지 않은 것이라면 더 큰 목소리를 내거나, 여당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물러나야 하는데 ‘식물 지도부’를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이들이 많다. 한 정치권 인사는 “정몽준 의원이 당 지도부의 총사퇴를 거론한 것도 좀 더 당의 목소리를 내라는 주문인데 여전히 지도부는 묵묵부답”이라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있을 인사에서도 박 대통령이 도덕성보다는 ‘충성심+코드’ 인사를 고집할 것인지를 아무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론과 언론에 귀를 막은 박 대통령이 ‘일방통행식 묻지마 인사’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지만 집권 여당도 절반의 야권도 비판의 수위를 높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잘못은 청와대에서 했음에도 ‘이슈 파이팅’이 너무 부족해 죄를 떠안은 형국이다. 이번 인사 참사는 박 대통령이 내세운 국민대통합과는 거리가 멀므로 국민적 지원도 분명한 사안. 박 대통령이 “공무원 모두가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훈시를 했지만, 이를 두고 코드 인사로 해석하는 언론이 없었다. 선우완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