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천-서초서 A팀장 ‘형님 동생’ 사이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일요신문>은 이번 사건이 최초로 알려질 무렵인 지난해 11월부터 약 4개월 동안 윤 전 회장, 상대녀 권 씨, 권 씨에게 사건 해결을 부탁받은 것으로 알려진 박 아무개 씨 등과 두루 접촉하며 이번 사건의 전말을 추적 중이었다. 특히 이번 사건의 파문이 확산되기 전 이들로부터 ‘객관적 증언’을 상당 부분 확보할 수 있었다. 지난 4개월간 <일요신문>이 추적한 윤중천 전 회장의 ‘동영상 사건’ 풀 스토리와 앞으로 밝혀야 할 의혹들을 집중 조명해본다.
본지가 윤중천 전 회장 사건을 최초로 인지한 것은 지난해 11월이었다. 서울의 한 경찰 관계자는 당시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털어놨다.
“윤중천 회장이 정관계 포섭을 많이 해서 그런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이번 사건을 맡은 쪽에서 수사 진행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잘 안 되면 나한테 데리고 오라고 했다. 뒤로다 장난치면 구속 못 시키니까. ‘빽’ 들어오고 그러면 구속이 안 된다. 펜션에서 여자 5명 남자 5명이 그룹 섹스를 하는 거다. 마약파티를 하면서. 내가 듣기로는 OOO, OOO 등이 같이 있었다고 한다. 들어보니 그동안 그 XX (윤 전 회장) 사기, 고소 등으로 고소장 접수됐던 게 다 무혐의 됐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즈음에 본지는 이번 사건의 또 다른 핵심 인물인 박 아무개 씨(윤 전 회장의 내연녀 권 아무개 씨로부터 사건 해결을 부탁받은, 이번 사건을 잘 알고 있는 핵심 인물)를 통해 문제의 ‘동영상’ 존재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본지가 앞서의 경찰 관계자로부터 들은 윤 전 회장 사건 첩보와 관련 있는 ‘동영상’ 문제를 박 씨가 언급했던 것. 박 씨가 기자에게 털어놓은 내용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번 대선 때 OOO 대선 후보가 위험할 정도로 큰 사건이다. 여자들이 성폭행을 당했고 검찰 고위간부와 경찰 최고위층까지 연루돼 있다. 이걸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피해 여성들이 나에게 좀 도와달라고 하는데 사건이 너무 큰 것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렇게 찾아왔다.”
박 씨 측으로부터 문제의 검찰고위인사 관련 동영상 존재 사실을 전해 듣고 동영상까지 입수한 권 씨는 이때부터 윤 전 회장의 고소 고발건 조사에서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경찰도 권 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고위층 인사 동영상 존재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윤 전 회장과 권 씨의 치정 등이 얽힌 성폭행 사건이 수사 과정에서 난데없이 고위층 인사의 섹스 동영상 사건으로 비화되는 순간이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윤중천 전 회장 별장 내부 사진. 술을 마실 수 있는 작은 바와 고급 소파가 놓인 실내.
그런데 이 과정에서부터 경찰의 동영상 수사 축소 의혹이 제기된다. 본지는 동영상 사건이 일파만파 확산되기 전 윤 전 회장 사건을 담당한 서초서 관계자를 통해 당시 경찰의 분위기를 미리 감지할 수 있었다. 당시 윤 전 회장 사건을 담당했던 A 팀장은 한 사석에서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해서 죽을 일 있느냐”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는 일단 A 팀장과 윤 전 회장과의 ‘사적인 친분’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A 팀장은 윤 전 회장을 ‘형님’이라고 호칭하며 사건과 관련해 통화도 몇 차례 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담당경찰과 피의자가 ‘형님 동생’ 하며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볼 때 1차적으로 이번 사건이 엄정하게 처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서초서에서 윤 전 회장 사건의 동영상 부분을 ‘축소’ 수사한 의혹은 양측의 친분 관계보다 A 팀장의 소극적이고 안이한 수사태도가 더 깊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윤 전 회장은 최근 들어 경제적으로 힘이 들어 사건무마 로비를 해도 세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윤 전 회장은 A 팀장도 믿을 수 없다는 말을 수차례 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A 팀장이 이번 사건의 민감함을 알고 더 이상 파문이 확산되지 않기 위해 윤 전 회장에게도 ‘형님 형님’ 하면서 그가 사건을 더 크게 만들지 않도록 구슬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일선 경찰이 최초에 동영상 부분을 인지하고서도 초동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슬슬 덮으려고만 했던 정황이 발견된다. 결국 그런 안이한 접근이 이번 사건을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 문제로까지 비화시키는 최초의 발화점이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A 팀장은 동영상 사건이 일파만파 확산되던 지난 3월 19일 윤 전 회장과 사전에 말을 맞춘 흔적도 포착된다. 그는 윤 전 회장에게 ‘청와대에서 나와 (윤 전 회장 사이에) 계좌를 싹 다 깔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라. 일단 직원들에게 (윤 전 회장과) 밥 먹은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고 직원들도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했다. (내일) 특수수사과 조사 받으면서 내가 알아서 잘 말할 테니까. 형님은 가만히 지켜보시라. 매스컴은 곧 잠잠해질 것이다. 시간을 두고 앞으로 10일 정도만 가만히 지켜보면 될 것’이라고 조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밖에도 A 팀장은 ‘영상을 본 적도 없다’며 이상하리만치 성접대 동영상의 존재 자체를 외면하는 태도를 고수해왔다. 이에 대해 윤 전 회장의 측근 김 아무개 씨는 “지난해 A 팀장이 윤 회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영상파일이 들어있는 컴퓨터 본체 하드를 복사해 갔다. 동영상을 못 봤을 리가 없다”며 의문을 나타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현재 이번 사건을 수사하던 특수수사과가 문제의 동영상을 확보했던 3월 21일경보다 훨씬 전에 이미 서초서가 그것을 확보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상하 부서간의 업무 협조가 제대로 되지 않았거나, 동영상을 확보했던 서초서가 그것을 내놓지 않기 위해 일부러 숨기고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또한 A 팀장은 ‘난 OOO(검찰간부를 지칭) 얼굴도, 차에 뭐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OOO이 누구하고 연애한 걸 CD에 담아있는 거냐. 뭐, 난 알 필요도 없지만, 경찰청에서 이것저것 알아보니까 짜증난다. 고위층 간부가 연결돼있든 말든 여기서(서초서) 말 잘못해서 죽을 일 있나’는 말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를 초기에 담당했던 경찰이 이런 분위기였다면 그 문제의 동영상도 골치 아프게 상급부서인 경찰청 특수수사과로 넘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윤중천 전 회장 별장 내부의 침실과 고급 테이블이 있는 룸.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서초서의 한 관계자는 “윤 전 회장이 내연녀 권 씨에게 고소당했을 당시 모두 윤 전 회장을 의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계속 말을 바꾸는 권 씨 때문에 되레 ‘윤 전 회장 동정론’이 일었다. (윤 전 회장과의) 커넥션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동영상에 대해 묻자 그 역시도 “모른다”고 답했다.
한편 동영상 첩보를 입수한 특수수사과는 자체적으로 파일 확보에 나서게 된다. 특수수사과는 동영상 존재 여부를 최초로 알게 된 앞서의 핵심인물 박 아무개 씨를 찾아가 ‘청와대’까지 운운하며 동영상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한 관계자는 박 씨를 수시로 찾아가 ‘검은 치마 나오는 거, 영상 알죠? 청와대에서도 다 알고 있다’며 겁을 줬다는 것이다. 또 ‘어디 가시나. OOO 동영상 보러 가시나?’라는 식으로 박 씨에게 물으며 동영상 확보에 혈안이 된 모습을 자주 보였다고 한다. 당시 박 씨는 기자에게 “경찰이 먼저 OOO 이름을 언급하기에 그제야 영상에 나오는 인물이 그인 줄 알았다. 오죽하면 나는 OOO 쪽에서 경찰청 사람을 시켜 그 동영상을 회수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지난 2월 28일 경찰청 측으로부터 마지막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앞서의 특수수사과 한 관계자로부터 ‘이 사건에 너무 깊숙이 개입돼서 위험한 상황’임을 통보받으며 ‘동영상을 건네면 사정을 감안해주겠다’는 취지의 말을 던진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이 김기용 전 경찰청장의 조기 낙마설과 관련한 이런 저런 소문들이다. 윤 전 회장의 첩보를 입수한 특수수사과는 당시 검찰 고위간부가 연루되어 있다는 내용에 주목, 동영상 확보에 전력투구하고 있었다. 그들로부터 조사를 받은 한 인사의 측근은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독촉 때문에 공황장애에 시달렸을 정도였다. 없는 동영상을 만들어서 줘야할 판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검찰 간부가 연루된 동영상을 특수수사과가 무리하게 쫓고 있다는 말들이 나오면서 그것이 검찰과 청와대 일부 핵심실세들의 심기를 건드렸고, 결국 그것이 김기용 경찰청장의 급작스런 교체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게 소문의 골자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점은 경찰총장이 교체될 때만 해도 윤 전 회장이 어느 정도의 여유를 나타냈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 16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경찰청 관계자를 통해 들은 얘기”라며 “지금 경찰청장 잘린 게 이 사건(성접대 동영상) 으로 잘린 거야. 왜? 나라가 시끄러워지니까. 이런 거 흘리면 큰일 나”라고 귀띔한 바 있다. 물론 이는 윤 전 회장이 자신의 ‘뒷배’를 과시하기 위해 기자에게 과장해서 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윤 전 회장의 분위기는 이번 사건에 자신도 잘 알고 있는 검찰의 최고위층이 포함돼 있는데 설마 사건이 더 확대되기야 하겠느냐는 일종의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마저도 낙마하게 되면서 이번 사건은 또 다른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