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채홍사 노릇? 황당할 따름”
김종훈 전 후보자 채홍사로 지목된 이정인 씨가 자신은 채홍사가 아니며 김 전 후보에 대한 소문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일요신문>은 김종훈 전 미래부 장관 후보자 사생활 폭로 글에서 ‘채홍사’로 등장하는 인물이 자신이지만 “채홍사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이정인 씨를 만났다. 지난 20일 미래경영연구소 사무실에서 마주한 그는 두 번의 교통사고와 열 차례가 넘는 수술로 몸이 불편한 상태였다. 이 씨는 장애 4급 복지카드를 꺼내 보여주면서 1999년부터 2007년까지 김 전 후보자와 연락하고 지냈다고 밝혔다.
이 씨가 한국으로 돌아온 건 지난 2009년. 몸이 불편해 병원을 오가며 생활하던 그는 최근 텔레비전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고 한다. 이 씨가 미국에서 웨이터를 하던 시절 ‘사장님’이라 불렀던 김 전 후보자였다. 이 씨는 “아는 사람이 장관이 된다하니 마음속으로 축하해 줬다. 이후 여론이 안 좋아지는 것도 지켜봤다. CIA, 부동산 투기 관련 문제였다. 거기에다 미국현지 루머까지. 너무 황당한 내용이고 내가 연관되어 있으니 이렇게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며 그간 답답했던 심경을 털어놨다.
이 씨는 1999년 자신이 웨이터로 일하던 ‘기린’이라는 술집에서 김 전 후보자를 처음 만났다고 했다.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일을 하는 이 씨에게 김 전 후보자가 ‘나도 그렇게 성공했다. 열심히 살라’는 이야기를 하며 가까워 졌다고 한다. 이 씨가 8년 동안 지켜봤다는 김 전 후보자는 ‘제임스 주’가 폭로한 모습과는 상반됐다.
이 씨는 “사실 10년 가까이 알고 지냈다 해도 내면에 있는 이야기는 잘 안했다. 비즈니스 이야기나 노력하라는 조언을 많이 했다”며 “내가 본 것만 말하겠다. 그동안 술에 취해 몸을 비틀거린 적도 없었다. 술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 하나 좋아하는 게 있었는데 노래하는 거였다. 노래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었다”고 밝혔다.
웨이터를 그만둔 이 씨는 자신의 ‘벤츠 E500’으로 콜택시 운전을 했고 김 전 후보자가 가끔 자신의 택시를 이용하며 인연은 지속됐다. 이 씨는 “사장님과 사장님 친구들과 함께 밥 먹고, <오페라의 유령>이나 <라이온 킹> 같은 뮤지컬도 보고, 스케줄 되는 날엔 술집도 가고 그랬다. 그런데 8년 동안 카지노에 간 적은 없었다. 친구 분들을 내 택시에 태우고 다녔는데 자리가 모자랄 땐 택시를 더 불렀다. 제임스 주가 내 택시를 따라다녔다고 하는데 그런 식이 아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씨는 김 전 후보가 이 씨에게 ‘벤츠 S430’을 사주고 ‘채홍사’로 고용했다는 제임스 주의 주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지만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먼저 그는 앞서 밝힌 것처럼 자신의 차가 ‘벤츠 E500’이었다고 했다. 이 씨는 “나는 그 차를 10원도 안주고 5년 크레디트(신용) 할부로 샀고 그 차로 2005년에 잠시 택시기사를 했다. 사장님이 날 고용한 것이 아니라 내가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으니까 내 차를 이용했던 것뿐”이라며 “사장님은 해외출장이 잦아 자주 볼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 차를 얼마 안 가 팔았다. 돈이 안 남으니까. 막말로 내가 일주일에 3~4일을 채홍사 노릇을 했으면 그 차 할부금을 왜 못 갚았겠느냐”고 항변했다.
제임스 주와 이 씨의 주장이 엇갈려 <일요신문>은 제임스 주에게 이메일로 확인을 요청했다. 제임스 주는 “이 씨가 내가 말한 그 채홍사가 맞다”면서도 “그 친구는 입장이 곤란해서 날 모른 체 하는 것 같다. 그가 교통사고로 척추수술과 허리 수술 등을 해서 철심을 몇 곳 박았는데 당시 엑스레이를 내게 보여줬던 것도 기억한다”고 밝혔다. 제임스 주는 자신이 말한 이 씨의 승용차 모델이 틀린 이유에 대해 “8년 전 일이라 잘 기억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봤던 안 봤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친구의 양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씨는 제임스 주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이 씨는 “내 짐작으로는 ‘48콜택시’에 있었던 사람 같다. 나랑 같은 회사 직원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내가 나이가 어리니까 회사에 있는 60명 모두가 ‘형님’이었다”며 “최근 사건이 불거지고 나서 블로그를 통해 제임스 주 사진도 봤는데 전혀 모르겠더라”고 말했다.
이 씨는 제임스 주가 자신을 ‘박수무당’이라 표현한 것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나도 처음엔 그게 나인지 궁금해 제임스 주 블로그에 사실 확인 글을 남겼다. 그런데 내 댓글이 계속 지워지더라. 그리고 그 동네에서 사장님과 알고 지내는 웨이터 출신에 박수무당 이야기로 소문이 돈 건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확신했다”고 밝혔다. “내가 큰 교통사고가 두 번이나 나니까 어머니가 한국 가서 절에서 제사 비슷한 걸 지내고 오셨다. 그 소문이 동네에 퍼지니까 결국 ‘박수무당’ 얘기까지 나오더라”고 토로했다.
이 씨가 김 전 후보자와 연락이 끊긴 이유는 교통사고 후유증과 우울증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평생 강한 진통제를 먹어야 하는 처지라고 고백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 이유도 약값이 감당이 안됐기 때문이라고. “교통사고 보상금 50만 달러로 타운하우스를 샀다. 약값 때문에 계속 마이너스였지만 집을 팔아서 나오려고 1년을 버텼다. 그런데 집이 안 팔렸다. 울면서 비행기 표를 끊고, 집도 버리고, 경황없이 몸만 나왔다. 이후 미국과의 인연을 모두 끊었다”고 털어놨다.
이 씨는 김 전 후보자가 사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마음속으로 많이 울었다고 한다. 이후 진실을 밝히고 자신과 김 전 후보자의 명예도 회복하고 싶었다고. 이 씨는 “제임스 주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내가 아무 말도 안하고 있으니 사장님은 물론 나도 이상한 사람이 되더라. 채홍사니 박수무당이니 생각지도 못했다. 진실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제임스 주는 “이제 사퇴자(김종훈 전 후보자)를 자꾸 들먹이고 싶지 않다. 어차피 지난 일이니 심하게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대응했다.
한편 김 전 후보자는 현재 미국 메릴랜드 자택에 머물며 머리를 식히는 중이라고 지난 18일 <조선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김 전 후보자는 자신의 사생활과 관련된 루머를 강력하게 부인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미래경영연구소 황장수 소장은 “CIA 자문위원이 되려면 알코올중독 경력, 사생활, 여성과의 관계, 마약경력, 도박경력과 관련한 항목이 체크가 된다. 그렇게 들어간 사람도 매년 러시아, 중국 등과의 관계도 다 확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