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조직 통합…‘소맥’ 전략 과연 먹힐까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지난해 4월 경영관리실장(상무)의 직함을 달고 하이트진로에 입사한 박 전무는 지난해 12월 28일 전무로 승진하며 경영전략본부장을 맡았다. 경영전략 강화와 맥주·소주 사업 간 통합 효율성 제고, 미래 신성장 동력 발굴 등이 박 전무에게 맡겨진 중차대한 미션이다. 이 미션 수행의 성공 여부에 따라 박 회장에서 박 전무로의 대권 이양 시기가 빨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박 전무의 행보에 하이트진로는 물론 업계의 이목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하이트진로는 체계적인 전략 수립은 고사하고 영업맨들의 손발만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2011년 10월 15년 만에 맥주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오비맥주에 내준 데 이어, 지난해에는 연간 기준에서도 2등으로 밀려났다. 한국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하이트진로의 국내 맥주시장 점유율은 출고량을 기준으로 42.8%를 기록, 지난 1996년 이후 16년 만에 오비맥주(53.6%)보다 낮아졌다.
그럼에도 하이트진로의 맥주 시장 1위 재탈환 전략은 없어 보인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올해부터 영업망 통합의 시너지가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가 기대를 걸고 있는 영업조직 통합의 경우에도 연착륙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영업조직 통합 작업 차질로 인한 영업력 약화가 맥주 시장 점유율 역전을 불러왔다는 지적을 받을 만큼, 회사로서는 빠른 통합 작업이 절실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2011년 9월 1일 진로가 하이트맥주를 흡수합병하며 새 통합 법인이 탄생하는 것을 계기로 기존에 소주와 맥주로 나눠졌던 영업조직도 합칠 필요성이 생겼다.
그러나 지난 2011년 4월부터 야심차게 추진돼 온 영업 통합은 노동조합의 거센 반발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회사 측에서 지난 연말 성과 중심의 ‘신인사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영업조직 통합은 진척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물리적 통합을 넘어선 완전한 화학적 통합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과거부터 꾸준히 노정됐던 하이트 출신과 진로 출신 간 다른 급여 체계 및 인사 차별 등의 문제가 언제든 새로운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통합으로 인한 시너지 발생 시점을 ‘영업조직 통합 완료’ 기점으로 보는데, 현재 거의 마무리 단계”라며 “또 올해부터 신인사제도가 도입되면서 급여 부분도 자연스레 맞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영업조직 통합을 통한 시너지 창출이 결국 하이트진로가 ‘국내 최초 맥주회사’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상의 방법인 셈이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이질적인 문화의 하이트와 진로의 영업조직 통합 시너지가 과연 나올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며 “이 문제는 결국 오너 3세인 박태영 전무의 성공적 후계 구도 정착을 판가름할 수 있는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트진로의 서울 서초동 본사 주변 식당가에서는 점유율 하락과 관련한 하이트진로 직원들의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근처 회사에 다니며 애주가를 자처하는 한 인사는 “점심시간에 주위 어느 식당을 가든 거나하게 낮 술판을 벌이는 하이트진로 직원들을 목격할 수 있다”며 “그럴 땐 주류회사 직원이라는 게 일면 부러운 면도 있지만, 점유율이 떨어지니 직원들이라도 자사 제품 술을 많이 마셔서 매출에 힘을 보태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2위인 롯데칠성음료의 롯데주류와 비교적 큰 격차를 유지하며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소주의 경우에도 점유율 정체를 비롯해 악재는 산재해 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소주 시장에서 48.3%의 점유율로, 2위인 롯데주류(14.8%)와 3위인 무학(13.3%)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하지만 후발주자들의 거센 추격에 점유율이 정체를 보이고 있으며, 롯데와의 법정 분쟁, 일본 공장 인수 지연 등은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 5일 경쟁사인 하이트진로가 지난해 3월부터 자사의 소주 제품인 ‘처음처럼’을 악의적이고 조직적으로 음해해 이미지 훼손 및 매출 감소의 피해를 봤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10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롯데 측은 하이트진로의 음해 행위 전 매월 0.5~0.7% 지속 성장하던 시장점유율이 급감하며 입은 매출 손실액, 훼손된 이미지 만회를 위해 사용한 광고비 등을 추산해 1000억 원이 넘는 피해를 봤다고 판단, 10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고 설명했다.
이보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처음처럼에 대한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등 혐의로 하이트진로 임직원 4명을 불구속 기소한 바 있다.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은 지난 2009년 롯데그룹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꾸준한 판매 증가 및 점유율 상승을 기록하며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을 압박해 오고 있는 상태다.
또한 하이트진로는 지난 18일 조회공시를 통해 “전 세계 주류 시장 확대 일환으로 일본 소주 생산 공장의 인수 검토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나, 다소 시간이 지연되고 있다”고 답변했다. 지난해 9월 이후 다시 올라온 재공시였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일본 을류 소주(증류식 소주)회사 생산 공장 인수를 시도하고 있으나 금액 등의 조건이 맞지 않아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는 갑류 소주(희석식 소주) 중심에서 벗어나 을류 소주의 축적된 기술을 확보해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기 위한 취지에서 몇 년 전부터 일본 공장 인수를 계속 검토해 오고 있지만 지지부진한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연말 진행된 대규모 구조조정에 이어 최근에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임직원들의 연차수당 폐지도 검토하고 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직원들에게 연차를 남김없이 의무적으로 쓰도록 권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식적으로 연차 수당 폐지는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 회사는 지난 2월 계약이 만료된 하이트맥주 광고모델 김연아 선수의 후속 모델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참이슬의 경우 지난달 탤런트 문채원·유아인 씨에 이어 탤런트 김영광·이유비 씨를 발탁한 바 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계약은 만료됐지만 만료 후에도 모델의 사진 등을 사용할 수 있는 한 달의 유예 기간이 있다”면서도 “아직 후속 모델 선정 작업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트맥주가 출시된 지난 1993년 이후 TV 광고가 방영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