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최강 가리기 바다서 결판내자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 ||
그룹 창립 62주년이던 지난 4월 7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포부다. 그로부터 약 4개월 후 금호아시아나는 ‘물길’로 가는 첫 관문을 열었다. 올해 초 인수한 대한통운 내에 해운사업을 전담하는 ‘해운팀’을 신설한 것. 이로서 금호아시아나는 향후 육·해·공을 아우르는 라인업을 갖추게 될 전망이다. 최근 고유가, 계열사 파업 등으로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박 회장과 금호아시아나가 해운업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내막을 들여다봤다.
대한통운 내에는 지금까지 ‘해운항만팀’이라는 부서가 해운사업을 맡아왔다.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진 해운팀은 이곳에서 따로 분리된 것이다. 해운팀은 대한통운이 보유한 네 척의 선박을 관리하고 운용하는 것 이외에 금호아시아나가 본격적으로 해운업을 확장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들을 해나갈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한통운 관계자도 “해운업을 보다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해운팀을) 따로 분리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박 회장의 해운업 욕심이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2002년 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후 여러 차례 해운사업 진출에 대한 의지를 나타낸 바 있을 뿐 아니라 지난 2004년에는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인수전에 뛰어들기도 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당시 금호아시아나는 ‘종합 물류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구상에 차질이 생겼다’고 아쉬움을 표하며 또 다른 해운업체에 대한 M&A에 나설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경영자가 사업 확장에 대해 검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결국 금호아시아나의 최종 목표는 ‘전문 해운업체 설립’이라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굳이 해운팀을 따로 떼어낸 것도 이에 필요한 기반을 닦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구상이 성공하게 되면 금호아시아나는 기존에 있던 항공과 육상 이외에 해상 물류 사업도 겸할 수 있게 된다. 박 회장이 그토록 꿈꾸던 종합 물류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것이다.
금호아시아나에게 해운업 진출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라이벌 한진그룹과 물류 전 분야에서 ‘맞짱’을 뜰 수 있게 되는 것. 한진은 업계 1위인 한진해운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금호아시아나는 재계 서열에서는 한진을 제쳤지만 적어도 바다에서만큼은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과 ‘날개’를 겨루고 있고 대한통운이 한진택배를 따돌리고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못내 아쉬울 수밖에 없는 노릇. 따라서 금호아시아나는 당분간 해운사업 확장에 전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한진은 금호아시아나의 해운팀 신설 소식에 “렌터카 사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혀 맞불을 놓기도 했다. 렌터카 업계의 부동의 1위는 다름 아닌 금호아시아나 계열사인 금호렌터카다.
최근 고유가 직격탄을 맞고 있는 항공이나 택배업계에 비해 해운업계는 물동량 증가와 운임강세로 호황기를 맞고 있다는 것도 박 회장의 해운업 구상을 촉진시킨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올 상반기 해운업체들은 전반적인 경제 침체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 ||
박 회장은 해운업에서도 주특기인 M&A 실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대우건설 대한통운 등을 인수하며 ‘M&A의 귀재’라고 불리는 박 회장이지만 범양상선 인수전에서는 뼈아픈 경험을 겪었기에 이번에는 더욱 전의를 불태울 것으로 보인다. 대한통운 내에 해운팀이 신설될 때에도 그룹 내부에서는 그동안 M&A에 참여했던 몇몇 임원 차출설이 거론됐다고 한다. 또한 박 회장 아들인 박세창 상무의 이름까지 오르내렸다는 전언이다. 이는 그만큼 금호아시아나와 박 회장이 해운업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을 듯하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아직 해운업체에 대한 M&A는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 또한 금호아시아나 쪽에서 해운팀으로 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라고 부인했다. 그럼에도 금호아시아나의 해운업체 M&A설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 같다. 그동안 금호아시아나가 대우건설 대한통운 등의 M&A를 통해 톡톡히 재미를 봤기 때문. 박 회장 역시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기보다는 기존 회사를 인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따라서 만약 금호아시아나가 전문 해운업체를 세울 경우 신규 설립보다는 M&A가 유력해 보인다. 이미 몇몇 해운업체가 M&A 대상으로 거론된 적이 있다.
이러한 금호아시아나를 바라보는 그룹 안팎의 분위기는 그다지 우호적이진 않은 듯하다. 무리한 M&A로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사업을 늘리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비록 금호아시아나는 지난 7월 31일 시중에서 돌고 있는 각종 구설들에 대해 해명하는 자리를 가졌지만 신뢰회복엔 아직 역부족이라는 평이다. 이는 그동안 많은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이 경고했던 것처럼 금호아시아나가 M&A 과정 등에서 여러 차례 말을 바꾼 것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기 때문. 그래서인지 금호아시아나 대부분 계열사들 주가는 7월 말 현재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박 회장의 해운업 진출 검토방안 발언이 나왔을 때도 주가는 하락했었다.
그룹 내부는 금호타이어 문제 등으로 더욱 좋지 않아 보인다. 최근 금호타이어 2대 주주인 외국계 회사가 그 지분을 전량 매각하기로 함에 따라 금호아시아나는 수백억 원을 들여 그 지분을 다시 사들이거나 또 다른 투자자를 모색해야 한다. 하지만 그룹 사정으로 봤을 때 두 방안 모두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계열사 직원들 중에서는 자칫 회사가 팔리지는 않을까 걱정을 나타내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금호아시아나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겉으로 표현은 못하지만 이제는 내실을 다져주기를 바라는 직원들이 상당수다. 박 회장은 그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