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원 묶인 ‘개미들의 무덤’ 파헤친다
현재 인사이트펀드의 누적 수익률은 -20%대 후반. 시중에 출시된 펀드 중에서도 최하위권에 속한다. 지난해 11월 설정된 지 열흘 만에 4조 원 이상을 끌어 모으며 국내 최대 규모 펀드에 올랐던 기세에 비하면 초라한 기록이다. 이 때문에 피해를 본 것은 ‘미래에셋 박현주’라는 이름만 믿고 인사이트펀드에 가입했던 투자자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감원이 인사이트펀드 관련 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중순경부터 금감원에 접수됐던 인사이트펀드 관련 민원사항들을 모으기 시작해 8월 초 조사에 착수했다는 것.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인사이트펀드에 대한 민원이 6월부터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베테랑 인력 세 명을 뽑아 인사이트펀드 자료 수집을 맡겼다. 그 결과 몇몇 제보 내용들이 근거가 있는 것으로 판단해 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인사이트펀드 수수료 및 운용상 문제, 지점들의 불공정 거래 등이 조사 대상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이트펀드에 대한 금감원 조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말 펀드 가입자들이 ‘묻지마 투자’식으로 인사이트펀드에 몰리자 금감원은 조사를 벌인 바 있다. 하지만 당시와 이번 조사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 금감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조사가 지나치게 뜨거워진 투자 열풍을 진정시키기 위한 예방차원이었다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은 구체적인 불공정·불법 사안들을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인사이트펀드는 규모나 명성에 비해 알려진 것이 너무 없다. 이제라도 문제될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게 금감원 고위층의 판단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현재 사전조사를 거의 마무리짓고 조만간 미래에셋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조사가 끝나고 불법행위가 드러나면 사정·세무당국 등에 자료를 넘길 것이라고 한다. 미래에셋 측은 그러나 금감원 조사설에 대해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이미 지난 7월부터 ‘인사이트펀드가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조만간 점검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었다고 한다. 증권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당시 금감원이 펀드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는데 이것이 미래에셋 대표 펀드인 인사이트펀드를 염두엔 둔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감원은 7월 3일 이 같은 방침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바 있다. 또한 7월 중순경 비공개로 이뤄진 금감원 워크숍에서도 펀드 관리에 대한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는데 특히 미래에셋에서 운용하고 있는 펀드들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나왔다는 후문이다.
이번 금감원 조사설을 2008 베이징올림픽과 연관해 보는 견해도 있다. 그동안 인사이트펀드 투자자들은 올림픽을 그 누구보다 기다려왔다. 이는 박현주 회장도 마찬가지였을 듯하다. 박 회장은 인사이트펀드를 통해 모은 돈의 60% 이상을 중국에 쏟아 넣었다. 이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투자자들은 줄곧 “올림픽이 끝나면 중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될 것”이라던 박 회장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지금도 중국 경제에 대한 전망은 암울하기만 하고 인사이트펀드 수익률은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증권가의 한 애널리스트는 “베이징올림픽이 끝나면 인사이트펀드가 본격적으로 도마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투자자들은 올림픽 이후의 수익률 반등을 기대했겠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박 회장의 희망대로 올림픽 이후 인사이트펀드 수익률이 치고 올라갔다면 금감원에서도 조사를 하는 데 부담을 느꼈거나 설령 조사를 마쳤더라도 그 결과를 공개하기란 쉽지 않을 수 있다. 국민 펀드로까지 불리는 인사이트펀드 실적이 호조되는 상황에서 조사 소식이 알려질 경우 자칫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안팎에서는 “이번 조사가 다른 자산운용업체들로 확대될 것”이란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단지 미래에셋이 업계를 대표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타깃이 됐다는 것. 금감원이 이번에 인사이트펀드에 대해 조사한 것으로 알려진 내용들을 보면 그동안 펀드 거래에서 지적됐었던 사항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금감원이 똑같은 기준을 들이댈 경우 다른 업체들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동안 금융업계에서는 “인사이트펀드에 대해 알려진 것이 너무 없어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금융당국이 점검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말이 여러 차례 나왔었다. 하지만 막상 금감원이 조사에 착수하자 조용한 분위기다.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인 듯하다. 금감원으로서도 특정 회사만을 조사할 경우 생길 불공정 시비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업계 전반으로 조사 범위를 넓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도 이번 조사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듯하다. 현재 자산운용업체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만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태. 따라서 펀드 시장에 대한 조사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금감원 조사설이 불거질 당시 금융권에서 “청와대와의 물밑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