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들 자격 공방…배는 산으로
지난 1월 슈퍼마켓연합회의 소상공인연합회 창립총회 모습. 이후 이 단체를 포함한 세 단체가 통합해 출범하기로 했으나 공동대표로 나선 김경배 전 회장(오른쪽) 등 두 회장이 자격 공방을 겪으며 설립에 차질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정부에서 ‘소기업 및 소상공인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시행하면서부터다. 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소상공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이 법안은 정부가 소상공인연합회 설립을 인가하면 이 연합회에 정부 재정을 지원하고 정식 경제단체로 인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법안에 따라 금년 신설되는 소상공인연합회는 자체사업 외에 1조 1400억 원에 달하는 정부지원금으로 위탁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연합회가 인정받으면 막대한 자금은 물론 유·무형의 혜택이 클 것으로 예상되면서 소상공인연합회는 첫 등장부터 이전투구 양상을 띠었다. 서로 다른 단체로 구성된 세 개의 소상공인연합회가 중소기업청에 법정단체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갈등이 시작된 것.
김경배 전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장, 김진용 한국이용사회중앙회장, 오호석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장이 주도한 단체가 서로 다른 소상공인연합회를 출범, 힘겨루기에 나섰다. 이들 단체의 이전투구 양상이 심화되자, 이를 지켜보던 중기청에서 통합 유도에 나섰고 지난 2월 말, 이들을 하나로 묶는 합의서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통합된 소상공인연합회의 공식 출범을 앞두고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렸다. 대표자의 자격과 관련한 논란이 터져 나온 것이다.
지난 2월, 김경배 전 회장이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2009년 슈퍼마켓연합회장직을 연임하는 과정에서 법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나 회장 자격 무효판결을 받았다. 또한 중소기업중앙회 감사결과 연합회 경비와 정부 보조금을 횡령한 혐의가 드러나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직도 해임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슈퍼마켓연합회 관계자는 “김경배 전 회장은 지난 1997년부터 2012년까지 16년 동안 연합회장직을 연임해왔다”면서 “그런데 최근 연합회에서는 손댈 수 없는 지역조합 사업의 이권까지 손을 뻗치고 조합원들이 반기를 들면서 결국 여러 가지가 터져 나오게 된 것”이라고 토로했다. <일요신문>은 김경배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접촉했지만 김 회장 측근은 “통화가 불가하다”고만 짧게 답했다. 김경배 전 회장은 ‘나들가게’로 구성된 협회 설립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배 전 회장은 2013년 3월 3일로 슈퍼마켓연합회장직이 끝나는 상황이었으나 4월에 열리는 차기 회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 조건으로 3월 말까지 회장직을 유지했다고 한다. 슈퍼마켓연합회에서는 지난 3월 29일 임시총회를 열어 새로운 회장을 선출하기로 결정, 4월 25일에 선거가 열릴 예정이다.
공동대표인 오호석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장도 지난 19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선거법 위반 등의 사실이 밝혀지며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대해 오호석 회장은 “20년 전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한 행동은 아니었다. 현재까지 같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그 반증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며 “소상공인연합회 대표직 역시 자의라기보다 연장자로서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 때문에 나선 것이었는데 진흙탕이 되는 것을 보면서 이제 더 이상 아무런 미련이 없는 상황이 됐다. 다른 한 사람의 대표와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향후 총회에서 한 사람의 대표를 선출, 소상공인연합회는 백지 상태에서 다시 출범하게 될 것이다. 소상공인연합회와 상관없이 나는 지금까지 진행해왔던 골목상권살리기운동에 앞으로 전념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앞서 언급했듯 중기청의 중재로 두 소상공인연합회는 3월 21일 통합총회를 통해 정관 승인 및 단체 허가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단체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자격 문제가 제기되면서 총회는 4월 8일로 한 차례 연기되었다가 이 역시도 취소, 언제 다시 일정이 잡힐지 모르는 상황이다. 결국 3월까지 소상공인연합회 설립을 끝내겠다는 중기청의 계획은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됐다.
일각에서는 연합회 대표의 자격 논란이 발생한 데 대해 허가권을 가진 중기청이 너무 안일하게 대처를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경배 전 회장의 경우 슈퍼마켓연합회장이 아닌 개인자격에다 비위사실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 적극적인 대처 없이 마냥 지켜만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국회 지식경제위원인 이진복 새누리당 의원은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현재 특별조치법에 따른 소상공인연합회 임원에 대한 규정이 법령에 있지 않고 단체 내부 정관으로 모두 위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재 중소기업 단체를 규정하는 중소기업협동조합법에서는 단체 임원의 결격사유를 공무원에 준하도록 하고 있는 반면, 소상공인지원특별법에는 관련 규정이 없는 상태다. 이에 대해 중기청은 설립허가 시 이에 준하도록 심사하겠다는 입장이나 법에서 정해있지 않다보니 임의적으로 판단할 여지는 여전히 존재하는 셈이다.
이진복 의원은 소상공인연합회의 총회 이사회 및 임원에 대한 규정은 물론, 연합회의 업무나 회계에 있어 법령 정관 등에 위반할 경우 주무관청인 중기청에게 행정명령 및 임원해임, 단체해산 권한을 부여하고 위반에 따른 벌금조치 및 지도감독 거부에 따른 과태료 조치가 실시될 수 있도록 ‘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빠른 시일 내에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미영 객원기자 may424@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