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갈 땐 굽신굽신 빌빌댈 땐 쌩~
▲ 성공적 재테크를 하려면 은행에서 권유하는 상품도 꼼꼼히 따져보고 결정해야 한다. 사진은 영화 <산전수전>의 한 장면. | ||
환상이 깨진 것은 외환위기 당시부터였다. 많은 은행이 합병되고 지분이 외국인에게 넘어가면서 은행은 더 이상 경제적인 정의라고 생각하기 어려워졌다. 은행도 결국 기업이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장사의 사전적인 의미인 ‘이익을 얻으려고 물건을 사서 파는 일’을 하는 곳으로 비치게 된 것이다. 결국 물건 대신 돈을 이용해서 이익을 내는 일, 즉 고객에게 일정한 이자를 약속하고 받은 돈으로 대출이나 투자를 통해서 수익을 내는 구조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대출을 해줄 때는 철저하게 심사해야 하고 투자를 할 때도 사업성을 따져보아 하게 되는데 이런 심사나 평가에 소홀해지면 부실이 발생하게 된다. 최근의 미국 금융위기도 투자은행이 과도하게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 판매했는데 그 상품의 근간이 되는 주택대출이 부실화되면서 전세계로 번져나갔다고 볼 수 있다. 원청기업의 어음이 부도가 나니까 하청기업에까지 여파가 미치는 양상과 비슷하다. 따라서 은행을 이용할 때는 금융기관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활용해야 한다.
사업을 하는 A 씨는 부동산을 부부공동 명의나 부인의 명의로 해두고 있다. 자신의 사업상 담보가 필요할 경우에는 공동 명의의 부동산을 제공하지만 부인 명의 부동산은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고 지키고 싶었다. 최근에 경기부진으로 인해 부인 명의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고 하다가 대출을 포기하고 말았다. 대출기간이 10년이 넘어야 가격의 60%를 인정해주고 10년 미만이면 40%만 인정해준다는 기준 때문이었다. 물론 주택 대출을 억제한다는 정부방침 때문이라지만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의 인정 한도가 자신의 생각과 너무 차이가 컸기 때문이었다.
A 씨는 차라리 대출을 하지 말고 어렵더라도 고비를 넘겨보자고 다시 한 번 허리띠를 둘러매는 쪽을 택했다. 물론 부채상환비율이라는 수익을 감안한 대출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속으로는 너무 야속하고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은행에 가면 언제나 대접받는 고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A 씨의 착각이었을 뿐이었다.
또 다른 사업가 B 씨의 경우는 돈 인심이란 것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조그만 무역업을 하는 B 씨는 몇 년간 사업이 부진하다보니 은행에서의 신용등급은 물론이고 사업체의 신용등급을 유지하는 데도 힘들었다. 은행에 대출 금리를 내려 달라는 부탁은 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최근 몇 달 사이에 수입규모가 늘다보니 은행의 대접이 달라졌다고 한다. 은행 측의 방문이 부쩍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얼마 전에는 은행 직원이 사무실로 직접 찾아와 대출연장 서류 자필서명도 받아 갔다고 한다. 실적이 조금만 더 늘어나면 금리도 낮춰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말이다. B 씨는 돈 인심이 이렇게 무서운 거라는 걸 느끼면서 사업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다.
C 씨는 최근 대출 연장을 하면서 많이 섭섭했다고 한다. 신혼집으로 서울 시내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1억 원을 대출받았다. 지난 5년간 대출금 이자를 한 번도 연체하지 않고 잘 갚았는데 금리는 연 7.3%에서 연 7%로 불과 0.3%만 낮춰 주는 것이었다. 아무리 은행 직원에게 이야기해도 요지부동이어서 포기하고 연장서류에 사인을 했지만 해도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펀드마다 성격이 다르겠지만 최근 금융시장 위기로 펀드 수익률이 많이 하락했다. 펀드 고객 대부분은 은행창구를 통해서 가입한 사람들이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08년 상반기 은행의 펀드판매 수수료는 8000억 원이며 적립식 펀드판매 잔액도 약 56조원에 달한다. 적립식펀드는 월급생활을 하는 서민들이 주로 가입하는 상품인 만큼 먹고 사는 데 곧바로 연결되는 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 금융위기로 리먼브러더스니 메릴린치니 하는 회사와 관련된 주가연계펀드를 판매하면서 고객에게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은 탓에 많은 고객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한다. 집단 민원이 예상될 정도라고.
펀드상품의 안내문에 기재된 ‘운용실적에 따라 배당되는 실적상품’이라는 문구를 일반고객이 찾아보기란 정말 힘들다. 몇 년 전 아는 사람이 일시금펀드를 가입하고 불과 3개월 만에 50%의 원금 손해를 보았다고 푸념하는 모습을 보면서 은행에서 권유하는 간접상품을 액면 그대로만 믿고 가입한 고객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서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은행에 대출 상담이라도 받으러 가게 되면 꼭 새로운 상품을 권유받게 된다. 외환위기 이후 경기상황이 좀 좋아지면서는 신용카드 가입 권유가 아주 흔한 일이 됐다. 신용카드가 보편화되자 은행창구에선 신용대출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은행뿐만이 아니라 거의 전 금융기관이 고객들에게 신용대출을 권유하는 안내장을 둘렸다. 결국 신용대출도 부실화되다보니 오히려 지금은 웬만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아예 대출도 불가능하다.
이런 와중에도 은행을 잘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사업상 필요하던 터라 덥석 2000만 원을 신용대출받은 D 씨는 은행의 신용카드도 적절히 활용하고 연체도 하지 않으며 은행의 신용평가 점수를 적당히 유지하고 있다. D 씨는 6년 가까이 대출을 연장해 활용하고 있다. 이 대출은 마이너스 대출인데 가입 당시 은행직원이 매년 연장해서 평생도 이용을 할 수가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은행에서 한때 상환하라고 요구한 적도 있지만 D 씨는 이러한 사실을 들어서 무조건 연장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은행 측도 가만히 따져보니 이자도 잘 납부하고 고객평점도 높고 한데 굳이 상환을 요구해서 부실대출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연장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대출도 넓은 범위의 재테크인 셈이다.
그러나 대출은 엄연히 빚이다. 남에게 갚아야 할 돈인 것이다. 은행은 우리의 돈을 맡아주는 역할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예금과 대출 금리의 차이로 수익을 내는 금융기업이다.
다른 금융기관도 마찬가지다. 영업방법이나 형태만 다를 뿐이지 돈이라는 상품을 가지고 이익을 내는 금융기업임엔 다를 바가 없다.
성공하는 재테크를 하려면 무조건 금융기업을 믿어서는 안 된다. 내가 버는 돈, 모은 돈의 가치와 처한 위치에 따라서 가장 적절한 금융상품을 이용해야지 상대방이 권유하는 상품은 상대방에게 좋은 금융상품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치호 재테크 전문 자유기고가 hanchi10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