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재용-현대차 정의선 차량용 반도체 한판승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현대차그룹 정의선 부회장
가장 관심을 끄는 오너 3세는 재계 1위 삼성그룹 오너 3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지난해 말 그룹 정기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경영 보폭을 넓힌 이 부회장은 최근 전기자동차 배터리 사업을 직접 챙기고 있다. 지난해부터 GM, 도요타, BMW 등 글로벌 메이저 완성차 업체 수장들과 잇따라 회동하며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 마케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온 이 부회장은 지난 3월 이 사업의 실주체인 삼성SDI의 울산 공장을 직접 방문하며 사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에 앞서 삼성그룹은 지난 2010년 5월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LED(발광다이오드),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등을 그룹의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한 바 있다. 삼성이 그룹 차원의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한 지 만 3년이 지났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직접 그 한 축인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재계는 주목하고 있다. 또 이 부회장은 차세대 자동차용 전장 부품 사업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며 자동차 관련 사업에 각별한 열정을 쏟아 붓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2위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부회장도 차량용 반도체 사업에 승부수를 던지며 그룹의 차세대 리더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4월 차량용 반도체 제조 회사인 ‘현대오트론’을 설립했다. 자동차가 빠르게 ‘달리는 전자제품’이 돼 가고 있는 상황에서 차량용 반도체의 중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현대차는 차량용 반도체를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해 왔으며, 이런 이유로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정 부회장은 이번 사업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인 정 회장을 비롯해 그룹 차원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은 정 부회장이 회사의 안정적 성장을 통해 3세 경영 시험의 마지막 관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에 이목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이 분야에서 정 부회장과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보여 재계는 더욱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그룹의 신성장동력이라고는 하지만 그룹 규모에 비해 적은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사업들에 오너 3~4세들이 포진하고 있다”며 “결국 사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관련 경험을 쌓게 해 주려는 그룹의 배려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원활한 경영권 승계를 진행키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10위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 장남 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의 경우 좀 더 특별한 경우다. 아버지 김 회장이 지난해 횡령 및 배임 혐의로 법정 구속된 데 이어 병세 악화로 경영 공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홀로서기가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한화는 지난 몇 년간 적극적인 M&A(인수·합병)를 통해 세계 3위의 태양전지 업체로 성장했다. 오너 3세인 김 실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사전포석이었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지만, 한때 장밋빛 일색이던 태양광 산업이 유럽 재정 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다는 점은 김 실장뿐 아니라 한화로서도 곤혹스러운 부분이다.
왼쪽부터 김동관 실장, 조현준 사장, 조현상 부사장
앞서의 재계 관계자는 “다른 그룹들과 달리 한화는 기존 주력 사업들과 무관하게 그룹의 규모에 비해서도 대단히 큰 규모인 수조 원의 자금을 태양광 사업에 ‘다 걸기’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우려된다”며 “태양광 사업이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김 실장의 부담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30위권 효성그룹의 경우, 차세대 성장 동력 성과에 따라 차기 그룹 대권이 누구 손으로 넘어갈지 결정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3세간 선의의 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최근 차남 조현문 부사장이 돌연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장남 조현준 사장과 삼남 조현상 부사장 2파전으로 좁혀진 효성그룹 경영권 승계전은 두 형제간 성과 싸움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이미 효성 섬유PG(부문)장을 맡아 기능성 섬유 ‘스판덱스’를 세계 1위로 키워낸 조 사장은 부진한 IT(정보기술) 사업을 제 궤도에 올려놓아야 할 상황이고, 산업자재PG장인 조 부사장은 최근 그룹의 차세대 먹을거리로 급부상 중인 탄소섬유에 명운을 걸어야 할 입장이다. “경영권은 능력 있는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 조석래 회장의 말을 떠올려 볼 때 이 두 형제에게 신성장동력 육성은 곧 경영능력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코오롱그룹의 경우 이웅열 회장의 장남이자 오너 4세인 이규호 씨가 지난해 11월부터 그룹의 신성장동력인 수처리사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으로 출근하며 본격적인 경영 수업에 앞서 현장 경험을 쌓고 있다.
재벌가의 이 같은 트렌드에 대해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미래 먹을거리를 찾고 이를 통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은 모든 그룹 후계자들의 숙제일 것”이라며 “후계자들이 신규사업을 통해 아직 본격적으로 열리지 않은 시장에서 경영 능력을 배가하고 해당 사업을 제 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추진력과 리더십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