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 살린다더니 여기저기 ‘구멍’
나들가게 사업을 둘러싸고 여러 의혹이 제기돼 중기청이 실태조사해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나들가게는 대형마트, 기업형슈퍼마켓(SSM)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중소기업청에서 660억 원을 들인 동네슈퍼 현대화 사업이다. 나들가게로 선정된 업체에는 간판교체는 물론 가게 리모델링, 판매시점관리시스템(POS·포스)이 제공되고 상품 배열이나 경영컨설팅 등 다양한 유·무형의 지원이 이뤄졌다.
내 돈 들이지 않고 점포를 새롭게 바꿔준다는 소식에 165㎡(약 50평) 미만 동네슈퍼 운영자들은 너도나도 신청에 나섰다. 중기청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1만 11개 골목 슈퍼가 나들가게 간판을 내건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나들가게 사업이 마무리 시점에 접어든 지난해 말, 포스기기 선정과 입찰가 담합, 간판비용 부풀리기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러한 사실이 지적, 시정됐지만 일부는 현재까지 해결 과정에 있다.
우선 포스기기 문제다. 소상공인진흥원에서는 3년 동안 사용하는 조건으로 나들가게에 150만 원 상당의 포스기기 관련 프로그램을 설치해줬다. 그런데 포스기기 선정 과정에서 기준규격에 미달하는 업체를 적격 판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던 것. 진흥원에서 2010년 사업공고 당시 포스기기 부품 요구 규격 중 비디오메모리 기준은 128MB(메가바이트) 이상이었다. 메모리 용량이 작을 경우 프로그램 처리 속도가 저하되기 때문이다.
당시 입찰 참여사 10곳 중 A 사는 제품 메모리가 기준 이하인 64MB로, 기본 규격에 유일하게 미달하는 업체였음에도 불구하고 공급사로 선정됐다. A 사는 관련 부품을 업그레이드해 납품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2011년에도 문제의 A 사는 1차 심사 당시 부적격 판정을 받았으나 재심의 과정에서 다시 적격 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부터 2012년 7월까지 A 사를 비롯한 4개 포스 업체가 나들가게에 납품한 포스기기 수는 모두 6684개인데 이 중 4278대가 A 사의 제품이었다.
포스 업체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입찰가 담합 의혹까지 제기됐다. 2010년 당시 입찰 참여 사업자들은 138만 6000~149만 9000원까지 다양한 가격을 제안했다. 그런데 2011년과 2012년에는 선정된 업체 모두 149만 6000원이라는 같은 가격으로 제안서를 제출했다.
포스 설치 교육비용 15만 원(부가세별도)도 일부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정황도 포착됐다. 포스사업자들이 실제 설치 및 교육을 담당한 외주 사업자들에게 10만 원만 줬다는 것. 한 나들가게 포스 설치 사업자는 “설치하고 초기 교육 1회 하는 것으로 10만 원 받았다. 부가세를 포함하면 11만 원”이라고 밝혔다.
포스기기와 관련한 여러 의혹들에 대해 A 사 관계자는 “중기청에 소명자료를 제출하고 상황이 종료됐으므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만 밝혔다.
간판 부분도 문제가 있었다. 소상공인진흥원에서는 나들가게 CI가 들어간 간판으로 교체 시 150만~200만 원을 지원해줬다. 2012년 7월까지 간판교체에 들어간 비용은 121억 9229만 원. 이진복 새누리당 의원실에서 소상공인진흥원이 제출한 견적서 및 시안 등 증빙서류를 토대로 가게 인근 간판업자에게 견적을 의뢰한 결과 112만~145만 원의 비용이면 충분히 설치가 가능한 것이 200만 원 이상 책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간판 설치비 지급은 진흥원이 점주에게 지원비를 이체해주는 방법과 간판가게에 바로 송금해주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그런데 상당수 나들가게 점주에 따르면 점주의 의사와 상관없이 담당 지도요원이 지정한 간판업체에서 간판을 설치하고, 증빙서류 역시 지도요원이 제출하면 업체가 금액을 수령해 간 것으로 나타났다. 간판 설치 업자에 따르면 특정 광역시의 경우 간판지원비가 100만 원으로 통일, 점주가 200만 원을 지원받고 간판업자들에게는 100만 원만 주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양한 의혹들이 제기되자 중기청에서는 해당 부분에 실태조사를 실시, 문제가 된 포스기기는 환수하고 문제를 일으킨 담당 지도요원은 자격을 박탈, 지도비용도 환수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했다고 한다. 또 관리소홀로 진흥원 관리 부서장에게는 징계를 내렸다는 설명이다.
포스기기 담합 의혹 부분에 대해 중기청 관계자는 “최종 입찰가는 같지만 세부 내역을 살펴보면 기본세트비용, 설치비용 등 업체마다 금액을 다르게 제시했다. 해당 업체에서도 이를 강력하게 부인, 담합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간판과 관련한 문제는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며 추가적으로 면밀한 조사를 진행, 문제가 드러날 경우 강도 높은 조치를 통해 확실한 매듭을 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현장에서 나들가게 운영자들의 불편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강동구의 한 나들가게에서 A 사의 포스를 사용하다 기존 포스를 다시 꺼내놓은 했던 강 아무개 씨는 “원래 사용하던 포스는 월 사용료를 6만~7만 원 지급하고 있지만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활용도가 높다. 반면, 나들가게로 지원받은 포스는 만족도가 제로에 가깝다”면서 “1년 사용 후부터 애프터서비스를 받으려면 사용료를 5만 5000원 내야한다고 해 안 쓰고 그냥 놔둘 생각”이라고 밝혔다.
올해 나들가게 관련 사업 예산은 34억 4000만 원으로, 2012년 334억 원에 비해 10분의 1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이에 대해 중기청 관계자는 “지난 사업과 상관없이 사후관리가 주된 목적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예산이 낮게 책정된 것”이라며 “지난해 시설 현대화가 중점이었다면 올해는 개별 컨설팅과 공동구매 등 다양한 지원을 통해 1만여 나들가게의 매출을 높이는 것이 중점사업이다. 또 수요조사를 통해 내년 신규 접수 여부도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미영 객원기자 may424@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