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게 사 비싸게 교환 ‘복이 될지 독이 될지’
▲ 이해욱 대림산업 부사장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준 계열사 간 합병을 두고 그룹 경영권 승계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사진은 이준용 대림 명예회장. | ||
석유화학제품을 판매하는 대림코퍼레이션은 해운업을 주로 하는 대림H&L을 0.78 대 1의 비율로 흡수 합병할 예정이다. 즉, 대림H&L 주식 1주가 대림코퍼레이션 주식 0.78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해욱 부사장은 대림H&L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 주식 수로는 300만 주. 이 부사장은 합병으로 대림코퍼레이션 지분 236만 주가량(지분율 32.1%)을 확보해 이준용 명예회장(합병 후 60.9%)에 이어 2대주주가 된다.
이번 합병을 후계구도와 연관 지어 바라보는 것은 대림코퍼레이션이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림그룹은 ‘대림코퍼레이션→대림산업→각 계열사’로 이어지는 출자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대림코퍼레이션을 장악하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이 명예회장 역시 대림코퍼레이션 최대주주에 올라있기 때문에 모든 계열사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다른 기업들에 비해 경영권 승계 작업이 더딘 것으로 평가받았던 대림그룹은 이 부사장이 대림코퍼레이션 2대주주에 오르면서 후계 문제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대림그룹 측은 이번 합병이 “경영권 승계와는 전혀 무관하다. 경영의 효율성과 시너지 효과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림코퍼레이션이 흡수한 대림H&L은 사실상 이 부사장의 개인 회사로 그동안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급격하게 덩치를 불린 곳이다. 2001년 설립 후 3년간 그룹 내부 물량이 90%가 넘었고 지난해에도 45%를 기록했다. 특히 대림H&L은 그룹 주력사인 대림산업의 알짜 기술들을 싼값에 사들여 이를 활용해 막대한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결과 2001년 204억 원이던 매출액은 지난해 2015억 원으로 뛰어올랐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은 5억 원에서 124억 원으로 치솟았다.
그동안 이 부사장은 두 차례 대림H&L의 주식 수를 늘렸다. 우선 지난 2006년 4월 무상증자를 통해 80만 주를 받았다. 당시 주식의 액면가액은 5000원으로 총 40억 원이 사용됐다. 공시자료를 확인해보면 당시 신주 발행에 들어갔던 재원은 이익잉여금이었다. 대림H&L의 2005년 당기순이익이 44억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익의 대부분이 이 부사장의 주식을 늘리는 데 쓰인 것이다.
올해 3월에는 유상증자를 통해 200만 주를 추가로 확보했다. 액면가액은 역시 5000원으로 총 100억 원이 들어갔는데 이 부사장이 직접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이는 그만큼 이 부사장이 대림H&L 주식 늘리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풀이할 수 있다.
대림의 ‘편법합병’ 논란은 우선 대림H&L의 주당 평가 금액에서 시작된다. 이 부사장이 주당 5000원에 확보한 주식이 6만 5000원 이상의 금액으로 산정됐기 때문이다.
▲ 이해욱 대림산업 부사장. | ||
이 부사장이 무상 혹은 유상증자를 통해 5000원의 액면가로 늘린 주식 수는 결국 대림코퍼레이션 지분 32.1%의 밑거름이 됐으며 이 부사장은 후계자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림코퍼레이션 상장시 막대한 평가차익을 누릴 전망이다. 대림H&L의 주식 수 확대가 대림코퍼레이션과의 합병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림코퍼레이션 지분을 더 많이 보유하기 위해 그동안 대림H&L 주식을 늘렸다는 것이다. 또한 대림H&L에 대한 지원 역시 회사 덩치를 키워 대림코퍼레이션과의 합병시 최대한 많은 주식을 확보하기 위한 계산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합병 비율도 논란에 휩싸였다. 대림코퍼레이션의 주당 평가금액은 8만 3000원. 대림코퍼레이션과 대림H&L의 규모를 봤을 때 0.78 대 1의 비율은 사실상 대림코퍼레이션 지분을 헐값으로 이 부사장에게 넘기게 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대림코퍼레이션의 매출액은 2조 원이 넘고 당기순이익은 744억 원이다. 이에 반해 대림H&L 매출액은 10분의 1 수준인 2015억 원이고 당기순이익은 124억 원이다. 여기에 대림코퍼레이션이 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림H&L 주식 1주와 대림코퍼레이션 주식 0.78주를 교환하도록 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의혹과 문제들에 대해 시민단체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경제개혁연대 김주연 연구원은 “합병비율 산정근거 등이 석연치 않아 대림 측에 질의서를 발송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림그룹 관계자는 “합병 비율은 외부 전문기관이 평가한 것을 적용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사정당국과 금융당국에서도 대림그룹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사정당국은 이미 지난 5월 이 부사장의 유상증자 과정 및 대림H&L의 부당 내부거래 등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기업 담당 부서에서 자체 조사에 들어가 ‘상당량의 자료’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다른 현안들에 밀려 잠시 덮어놨다. 문제가 커지면 모아놓은 자료를 다시 꺼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대림그룹의 합병 논란에 대해 금융당국도 ‘문제가 되는 것은 짚어본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당국 역시 올해 초 대림그룹을 향해 제기되던 의혹 관련 자료들을 수집했다고 한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대림그룹이 내부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그 이후 꾸준히 대림그룹을 주목해 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문제가 불거졌다”고 말했다.
대림그룹 측은 모든 의혹에 대해 “법적인 문제는 전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합병 등 대림그룹의 경영권 승계가 무난히 진행될지, 아니면 시민단체에 이은 사정·금융당국의 문제제기로 난항을 겪은 다른 재벌들의 전철을 밟을지 주목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