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찰 말라서 “쩐쩐” 사업 키우다 ‘쩔쩔’
▲ 지난 4월 청와대에 초청된 주요대기업 회장들. 왼쪽부터 구본무, 정몽구, 최태원, 박삼구, 이수빈 회장. 청와대사진기자단 | ||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자산총액 10대 그룹 계열사 가운데 지난해와 비교 가능한 61개사(12월 결산법인)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3분기 말 현재 10대 그룹의 평균 유동비율은 154.82%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동비율은 기업들의 단기채무상환능력을 측정하는 데 사용하는 경영지표로 200% 이상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용어설명 참조). 이 유동비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 10대그룹 유동비율 143.22%보다 높아 얼핏 보기에 10대 그룹의 단기 유동성이 한결 좋아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이 61개 기업에 올해 3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된 대한통운이 포함되면서 10대 그룹 유동비율 평균이 급격히 올라갔기 때문이다. 매각대금 유입으로 대한통운 내 현금이 크게 증가, 대한통운 유동비율이 지난해 152.22%에서 1245.86%로 여덟 배 넘게 뛰었다. 현금은 금호아시아나그룹 내부에서만 돌았음에도 통계상 10대 그룹 전체 평균이 올라간 것이다.
대한통운을 제외할 경우 10대 그룹의 올 평균 유동비율은 136.63%로 뚝 떨어진다. 이는 최근 경기침체 여파로 10대 그룹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각 그룹 대표기업들의 유동비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 10대 그룹 단기채무상환능력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유동비율이 가장 좋지 않은 곳은 금호아시아나와 한화다. 이들 그룹의 가장 큰 공통점은 대형 인수합병(M&A)으로 인해 현금 유동성이 약화된 상태에서 경기침체라는 악재를 만났다는 점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동비율은 지난해 98.05%에서 올해 277.79%로 향상된 것처럼 보이지만 대한통운을 제외하면 유동비율은 지난해 87.22%에서 84.18%로 떨어진다. 지난해에 엄청난 돈을 빌려 인수한 대우건설이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유동자산이 8270억 원인 데 비해 유동부채는 네 배 가까이 많은 2조 3024억 원에 달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해 내년 대한통운에 대한 유상감자를 실시, 현금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상태다.
최근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한화그룹은 유동비율이 10대 그룹 중 최악이다. 한화그룹의 유동비율은 지난해에도 72.94%로 최하위권이었는데 올해는 이보다 더 떨어져 64.80%로 나타났다. 단기간 내 갚아야 할 부채가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셈이다. 분석대상이 된 계열사 중 한화타임월드는 유동부채가 1009억 원인 데 반해 유동자산은 10분의 1도 안 되는 84억 원에 불과했다. 한화그룹은 대우조선 인수비용 마련을 위해 대한생명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주가 폭락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10대 그룹 중 자산총액 1위인 삼성그룹의 단기채무상환능력도 지난해와 비교해 나빠졌다. 지난해 삼성그룹의 유동비율은 167.32%였지만 올해는 156.71%로 10%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특히 대한민국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유동비율도 지난해 157.54%에서 올해 151.92%로 떨어졌다. 삼성전기 삼성물산 제일모직 삼성정밀화학 호텔신라 삼성엔지니어링 등 다른 계열사들도 유동비율이 지난해에 비해 줄줄이 하락했다.
이런 사정은 현대자동차그룹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현대자동차의 유동비율은 지난해 142.50%에서 올해 137.47%로 떨어졌고 기아자동차는 유동자산이 3조 6307억 원인 데 비해 유동부채는 이보다 많은 4조 6547억 원이었다. 비앤지스틸과 현대오토넷 등도 유동비율이 지난해보다 악화되면서 현대차그룹 유동비율 평균은 지난해 148.74%에서 올해 134.17%로 떨어졌다.
SK그룹은 10대 그룹 가운데 단기채무상환능력이 지난해에 비해 가장 급격히 나빠졌다. SK그룹의 유동비율은 지난해 181.81%로 이상적인 유동비율인 200%에 근접했지만 올해는 115.10%로 뚝 떨어졌다. SK그룹의 분석대상이 된 8개 계열사 가운데 SK네트웍스(75.54%) SK케미칼(72.71%) 부산도시가스(77.48%) SKC(81.39%) 등 4개사가 유동자산보다 유동부채가 더 많았다.
지난해 유동비율이 88.74%였던 현대중공업그룹은 올해 81.65%로 유동자산보다 유동부채가 더 늘었다. 하지만 조선업계의 경우 선수금(선박 건조 계약 후 미리 받은 금액)이 자산이 아닌 부채로 계산되는 데다 이 선수금이 유동부채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낮은 유동비율이 일반적이다.
10대 그룹 중 나머지 4개 그룹의 유동비율은 지난해보다는 향상됐다. 그렇다고 해서 단기채무상환능력이 우수하다는 것은 아니다. LG그룹은 지난해 117.17%이었던 유동비율이 올해 154.48%로 높아져,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그러나 LG그룹의 간판인 LG전자의 유동비율이 84.01%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LG전자의 유동자산은 5조 4147억 원인 데 반해 유동부채는 이보다 많은 6조 4456억 원이다. 최근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IT와 자동차 수출에 타격을 가하고 있어 LG그룹의 재무건전성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한진그룹은 유동비율이 지난해 126.21%에서 올해 126.67%로 소폭 올랐지만 대한항공은 유동비율이 59.90%에 불과하다. 내수위주 기업인 롯데그룹도 유동비율이 지난해 144.17%에서 163.44%로 올랐다. 하지만 롯데그룹 역시 대표기업인 롯데쇼핑의 유동비율 악화가 짐이다. 롯데쇼핑의 유동부채는 2조 8882억 원으로 유동자산 1조 9170억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GS그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유동비율 200% 이상을 유지했다. 지난해 216.16%였던 GS그룹의 유동비율은 올해 219.41%를 기록했다. 그렇지만 대표기업인 GS건설의 유동비율은 올해 부동산 경기 불황 등으로 인해 134.85%에서 125.06%로 낮아진 상태다.
이의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