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부진 눈총 받고 집안에선 치받고
▲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사촌형인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작은 사진). | ||
“2010년까지 재계 5위를 달성하겠다.”
GS그룹 허창수 회장이 취임하면서 내세운 포부다. 지난 2005년 GS는 자산총액 18조 원, 계열사 50개를 거느린 재계 7위의 기업(공기업 및 민영화된 공기업 제외)으로 출발했다. 2006년 한진그룹을 제치고 6위로 올라섰지만 그 이후부터는 ‘게걸음’이다. 현재 자산총액 31조 원, 계열사 수 57개로 외형은 커졌지만 5위 롯데그룹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는 추세라 허 회장이 목표를 이룰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특히 올해 실적이 부진해 6위 수성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전반적인 경기침체 탓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10대 그룹 중에서도 GS는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환율폭등으로 인해 올해 9월까지만 1조 4465억 원의 환차손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10대 그룹 중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여기에 핵심 부문 중 하나인 건설업 불황까지 겹치면서 GS는 올해 3분기에 54억 원의 순이익을 내는 데 그쳤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849억 원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이로 인해 GS는 12월 현재 지난해보다 1500억 원가량이 줄어든 4800억 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대 그룹 중에서 최하위다.
이러한 실적 부진은 대우조선해양 M&A에서 나왔던 구설들과 맞물리면서 허 회장에 대한 리더십 논란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사실 허창수 회장은 올 들어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취임 이후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며 말을 아껴왔던 허 회장이었지만 대우조선해양 M&A를 앞두고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인수 의지’를 밝혔던 것이다. GS그룹의 여러 관계자들도 “회장님이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대우조선해양을 반드시 인수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정작 시장의 반응은 미덥지 않았다. 그동안 GS그룹이 인천정유 하이마트 대한통운 등 여러 M&A에 뛰어들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해 시장의 빈축을 샀던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GS그룹은 입찰 마감 직전 포스코와의 컨소시엄 파기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와 관련, 온갖 억측들이 나돌았지만 비난의 축은 GS를 향해 기울어 있었고 GS의 M&A를 이끈 허 회장은 집중 포화를 맞았다.
시장에서는 GS의 연이은 M&A 실패 원인을 ‘허 회장의 과단성 부족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LG그룹 시절부터 재무통이었던 허 회장은 재무제표를 근거로 하는 경영 스타일로 인해 ‘과감한 투자엔 인색하다’는 평을 받아 왔다. 허 회장 입장에서는 이번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없애고 잃어버린 시장의 신뢰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가장 좋지 않은 모습으로 놓친 셈이다.
아울러 재계 5위의 꿈도 더욱 멀어지게 됐다. 사실 허 회장은 취임 초 직원들에게 M&A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룹의 성장 동력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동안 추진했던 M&A에서 연이어 미끄러지면서 그룹 내부에서조차 허 회장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 직원은 “일단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하는데 자꾸 중도에 그만두니까 그룹 이미지만 깎이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허 회장의 고민을 깊게 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9월 GS칼텍스에서 발생한 고객 정보 유출 피해자들이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사상 최대 규모인 1만 3000여 명이 개인당 1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낸 상태다. 하지만 피해자가 1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소송은 줄을 이을 전망이다. 배상액도 큰 부담이지만 재판이 계속되는 한 GS와 허 회장의 이름도 오르내릴 수밖에 없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이미지 타격이 우려된다.
지난 12월 1일에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제대로 공시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금액은 8440만 원으로 그다지 크지 않지만 GS는 이번에 적발된 4개 기업들 중 가장 많은 공시 위반 건수를 기록한 것으로 드러나 정보유출 사건으로 인해 실추된 그룹 이미지가 또 다시 상처를 받게 됐다.
LG그룹에서 분리될 당시부터 불거져온 상호와 로고 문제도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대법원은 ‘편의점 명칭을 LG25시에서 GS25시로 일방적으로 변경한 GS리테일은 가맹업주에게 5200만 원의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결했다. 전체 가맹업주 중 80%가량이 GS와 상호변경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져 줄 소송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여전히 LG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할 듯하다. 또한 중견 무역업체인 삼이실업과 4년째 벌이고 있는 로고 분쟁도 현재 특허심판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GS가 이처럼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를 그룹의 지배구조에서 찾기도 한다. GS는 지주회사인 GS홀딩스가 나머지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GS홀딩스는 허창수 회장(4.77%)을 비롯해 허씨 일가 47명이 지분 47.31%를 가지고 있다. 그룹의 중요한 일도 허 회장 단독이 아닌 허씨 일가의 시니어급들이 결정하는 ‘집단지도체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보기 드문 ‘화합경영’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신속한 의사결정이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M&A에서 잇달아 실패한 것이나 위기에 재빨리 대처하지 못해 사태를 키운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GS의 가족경영도 최근엔 금이 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두고 허씨 일가 내부에서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수전에서 잡음을 일으켜 그룹 전체가 비난을 받자 가족 모임에서 허 회장에 대한 불만 섞인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계열사 분리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허 회장이 건설·유통부문을 맡고 사촌형인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 정유부문을 떼어내 분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GS에서는 “루머일 뿐”이라며 펄쩍 뛴다. 하지만 1948년생인 허 회장도 이제 서서히 경영권 승계를 준비해야 하는 만큼 후대에 있을지도 모르는 경영권 분쟁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계열사 분리는 한 번쯤 고려해볼 만한 카드라고 재계 일각에서는 관측하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