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장사? ‘고정 수입’ 없으면 꿈도 꾸지마!
2004년 ‘키이스트’를 차리며 독립한 배용준은 1인 기획사의 시초가 된 배우이다.
1세대 1인 기획사는 대부분 전자에 해당된다. 배우 배용준이 시작이었다. 그는 지난 2004년 한류를 촉발시킨 드라마 <겨울연가>의 인기에 힘입어 1인 기획사 ‘키이스트’를 만들었다. 이후 소지섭 이나영 등 숱한 스타들이 키이스트를 거쳐 갔고 현재는 김수현 김현중 임수정 등 25명의 연예인이 소속돼 있다.
배용준과 쌍벽을 이루는 월드 스타 이병헌 역시 2006년 자신의 영문이름 이니셜을 딴 BH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현재는 고수 한가인 한효주 한채영 등 14명의 스타가 속한 중견 기획사로 성장했다. 배우 송승헌(스톰에스컴퍼니) 정우성(레드브릭하우스) 등도 1인 기획사를 만든 후 선후배 배우들을 영입하며 세를 불리고 있다.
최지우 소지섭 장근석 김태희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은 홀로서기로 1인 체제를 유지하며 연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덩치를 키우기보다는 1인 기획사의 기본 취지를 지킨다는 입장이다.
1인 기획사를 세운 대다수 스타들은 ‘한류’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이는 고정적인 수입의 유무로 귀결된다. 국내 활동이 없을 때도 해외 팬 미팅 및 MD 판매를 통해 수익을 내며 회사 운영 자금을 충당할 수 있기 때문. 결국 기본적인 경상비를 감당할 수준의 매출을 내지 못하는 연예인들에게 1인 기획사는 언감생심이다.
톱스타들이 1인 기획사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익 때문이다. 톱스타의 경우 기존 연예기획사에서는 기본 경비를 제외한 순수익을 8:2~7:3 정도의 비율로 나눠 갖는다. 드라마 한 편을 찍고 5억 원을 받았다고 가정할 때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3억 원 정도다. 하지만 매년 5월 거액의 세금까지 내고 나면 파이는 더 작아진다.
이런 구조에 눈뜨기 시작한 스타들은 1인 기획사 유혹에 귀 기울이게 된다. 자신이 회사를 직접 운영하면 경상비 지출을 조절할 수 있고 일정 금액의 월급을 지급하는 것 외에는 수익을 나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1인 기획사를 선택하는 또 다른 이유는 선택권 때문이다. 기성 연예기획사에 속해 있을 때는 직·간접적으로 회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여야 할 때가 생긴다. 회사를 통해 들어오는 각종 민원을 응대하는 것 또한 스트레스다. 하지만 1인 기획사를 세우는 순간 자신의 뜻이 시작이자 끝이다.
한 연예 관계자는 “톱스타의 경우 대부분 ‘스타’와 ‘배우’의 경계에서 고민한다. 때문에 작품을 선택할 때도 회사와 마찰을 빚을 때가 많다. 회사가 자신의 위상에 걸맞은 대우와 의사 존중을 하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방법으로 1인 기획사를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1인 기획사가 장밋빛 미래만 제시하는 건 아니다.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 외형만 보고 덜컥 법인을 세웠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기존 연예기획사에 몸담고 있었을 때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가 줄어든 만큼 새로운 스트레스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1인 기획사를 설립하는 순간부터 엄청난 고정비가 지출된다. 사무실 임대료를 비롯해 관리비, 비품 구입비, 직원 월급 등이 꼬박꼬박 청구된다. 연예인 단 1명이 소속된 법인일지라도 모든 구색을 갖추고 사무실을 운영하려면 매달 1000만 원 안팎의 돈이 필요하다.
1인 기획사에서 일하고 있는 매니저는 “평소 통 크고 호탕하기로 유명한 배우 A가 ‘휴지 사용을 줄이라’고 말하더라. 고정비가 많이 들어가니 비품이라도 아껴보자는 심산인 것 같았다”고 씁쓸해 했다.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양날의 칼’이다. 작품을 선택할 때 객관성을 잃기 때문이다. 직원들 역시 소속 배우이자 고용주인 그들의 의견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 건전한 비판이 설 자리조차 찾기 힘들다.
리스크 매니지먼트도 취약해진다. 업계에서 기득권을 갖고 있는 몸값 비싼 매니저보다는 자신의 말을 잘 듣는 매니저를 선호하기 때문에 각종 사건·사고 및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됐을 때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1인 기획사를 설립하며 가족 매니지먼트를 내세운 경우는 더 많은 문제를 잉태할 수 있다. 혈연관계로 맺어져 일은 믿고 맡길 수 있지만 업계 생리를 제대로 모르는 가족들이 리스트 관리에 구멍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가족의 일이라고 무조건 감싸고 옹호하려는 태도는 대중의 반감만 살 뿐이다.
가족 매니지먼트의 대표 주자인 배우 김태희는 최근 SBS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 출연하며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이를 두고 언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SBS의 한 관계자는 “연기 면에서 미흡한 부분도 있지만 과거 출연작에 비해 분명 발전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언론 보도가 압도적으로 많다. 김태희의 연기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명을 해주고 언론의 방향을 잡아주는 리스크 매니지먼트가 미흡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톱스타 중의 톱스타로 분류되는 장동건은 지난해 자신이 운영하던 기획사를 접고 SM엔터테인먼트의 계열사인 SM C&C에 둥지를 틀었다. 전지현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신생 매니지먼트에 계약을 맺었다.
또 다른 연예 관계자는 “연예 사업은 전문적 분야다. 하지만 쉽게 접하고 평가할 수 있다는 이유로 대중뿐만 아니라 연예인들도 연예 사업을 쉽게 생각하고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회사를 운영하는 데는 상당한 비용과 전문성이 필요하다. 때문에 근시안적으로 판단해 무분별하게 만들어진 1인 기획사는 자생력을 갖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