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정권 때 ‘모난돌’ 요즘엔 ‘귀한돌’
▲ 지난 8일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첫 비상경제대책회의가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이뤄졌다. 이 자리에는 현 정부의 핵심 멤버들이 모였으며 그중 참여정부 시절 인사들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윤증현 전 위원장이 이날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경제자문회의 멤버이기 때문이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현 정부 측 인사 7명과 국정경험이 풍부한 전직 총리·장관급 인사, 기업가 등 민간 측 27명으로 구성돼 있다. 비상경제대책회의에는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중 4명이 참석했는데 최명주 GK파트너스 사장, 김기환 서울파이낸스포럼 회장, 박기석 시공테크 회장과 함께 윤 전 위원장이 포함된 것이다.
윤 전 위원장이 이처럼 현 정부에서 중용될 수 있는 배경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며 소신을 꺾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 전 위원장은 역대 금감위원장 중 유일하게 3년 임기를 다 채웠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임에도 불구하고 금산분리 완화를 놓고 참여정부 386 핵심 실세들과 맞선 것으로 유명하다. 금산분리 유지라는 참여정부의 코드와 달리 윤 전 위원장은 끊임없이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했다.
윤 전 위원장은 또한 지난 2007년 6월 국회에 출석,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 후보의 BBK 연루 의혹에 대해 “현재까지 서류상 드러난 바로는 이 전 시장의 주가 조작 혐의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 전 위원장의 이 같은 소신과 이 대통령과의 인연이 윤 전 위원장의 주가를 더욱 높이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그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옷’을 벗을 경우 그 뒤를 이을 수 있는 유력 후보군 중 한 명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처럼 참여정부 시절 경제정책을 놓고 386 실세들과 맞서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고위 관료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 중용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도 이와 비슷한 케이스다. 박 수석은 경제부처 재직 시절 ‘경제기획원-재경부 경제정책국장-재경부 1차관’으로 승승장구해왔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대표적 정책으로 꼽히는 부동산 문제에서 박 수석은 참여정부 ‘386’들과 격렬하게 맞섰다.
박 수석의 지론은 “(부동산 문제는)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공급 확대를 통해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것. 하지만 참여정부의 주요 부동산 정책은 세제 강화를 통한 수요억제책이었다. 특히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라’는 들끓는 여론과 참여정부 핵심의 압력에도 그는 “공급을 위축시킨다”며 끝까지 반대했다. 결국 그는 부동산 정책 수립 라인에서 배제됐고 2007년 옷을 벗게 된다. 참여정부 시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던 박 수석은 현 정부 들어 경제 위기 상황에서 실세로서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 비상경제대책회의에 참석한 윤증현 전 금감위원장, 한덕수 전 총리, 박병원 경제수석(왼쪽부터). | ||
박 수석은 현재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강윤구 사회정책수석, 정진곤 교육과학문화수석 등으로 구성된 청와대 정책팀을 이끌고 있다. 정동기 민정수석,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이동관 대변인, 박형준 홍보기획관으로 구성된 정무팀을 맡은 맹형규 정무수석과 청와대에서 사실상 ‘투톱’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비상경제대책회의의 실무책임자로 경제부처 차관급을 소집, 비상경제대책 실무회의를 주 1회 주재하고 있다. 이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 박 수석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정부부처뿐만 아니고 경제계에도 전 정권과 각을 세운 사람들이 속속 중용되고 있다. 진동수 한국수출입은행장과 윤진식 한국금융지주 회장이 대표적이다. 진 은행장은 참여정부 시절 재경부 2차관으로 남북경협추진위원장을 맡아 남북경협을 총괄했다. 하지만 ‘재경부 뚝심’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남북경협과 관련해 ‘원칙과 소신’을 지키다가 참여정부 386들과 크고 작은 갈등을 빚었다.
참여정부 386들과 맞섰던 박병원 수석이 정권 막판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선임된 것과 달리 진 행장은 같은 시기 기업은행장 인선 과정에서 ‘내정설’에 반발해 응모를 철회하기도 했다. 사실 갈등이라기보다는 미움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하고 청와대 경제수석 유력 후보로 거론된 끝에 수출입은행장에 안착했다.
윤진식 회장도 재경부 차관 출신으로 지난 2003년 초대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임명됐지만 같은 해 12월 원전수거물관리센터 용지 선정 과정에서 발생한 혼란에 총대를 메고 옷을 벗었다. 사실상 야인으로 지내다 이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과 한나라당 선대위 경제살리기특위 부위원장을 지냈다. 이어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윤 회장은 차기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에 이름이 오르내릴 정도로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용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courag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