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잡초’ 놔두고 개혁은 무슨!
▲ 농업중앙회 전경과 최원병 회장. | ||
2008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전국 농·축·인삼협 지역조합의 개수는 1087개, 조합원 수는 240만 명가량에 달한다. 이 가운데 지역농협은 987개, 210만여 명으로 지역조합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몇몇 지역농협들 사이에서 ‘조합장 비리 척결’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을 농협중앙회가 흘려들을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부산 지역에서 조합장들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노조 부산지역본부는 ‘조합장들이 조합장운영협의회(협의회)의 돈을 마음대로 사용해왔다’며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할 예정이다. 협의회는 지역조합과 회원들 간의 상호협력, 이해증진, 공동사업개발 등을 위해 설립한 모임으로 각 조합의 조합장들로 구성됐다. 운영자금은 조합별로 매월 15만 원씩 납부하는 돈으로 충당하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상당수 조합장들은 협의회의 설치근거와는 무관한 용도에 비용을 집행했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조합장 퇴직시 지급했던 전별금 500만 원이다. 조합장이 병원에 입원할 때 협의회 자금에서 100만 원을 지급한 경우도 있었다. 또한 농협중앙회 고위 임원을 위한 전별금과 선물 구입에도 수천만 원이 쓰이기도 한단다.
일부 조합장들은 전임 농협중앙회 회장들에게도 협의회 돈을 썼던 것으로 전해진다. 노조에 따르면 한호선 전 회장이 도지사 및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자 협찬금 명목으로 각각 240만 원과 650만 원을 줬다고 한다. 뇌물 수수로 현재 수감 중인 정대근 전 회장에게도 사식비로 100만 원이 지급됐다는 것이 노조 측 주장이다. 이밖에도 일부 조합장들은 공식 경비가 나오는 해외 연수를 다녀올 때도 별도로 협의회 돈 3000만 원을 사용했다고 한다. 돈이 부족할 경우 자신이 속한 지역농협의 특별결의를 거쳐 추가로 돈을 걷은 경우도 있었다.
노조는 이처럼 협의회 돈을 사적인 목적에 쓴 조합장들을 횡령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농협중앙회를 향해서도 방만한 비용집행을 사실상 방치했다며 그 책임을 묻고 있다. 그동안 노조는 여러 차례 농협중앙회 측에 협의회에 대한 감사를 요구했지만 이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협의회 돈뿐만이 아니다. 노조에 따르면 새로운 농사기술과 비료 개발 등 농정사업에 쓰여야 할 지도사업비도 조합장들이 제멋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부산의 한 조합장은 지도사업비를 개인적인 경조사와 회식에 썼다. 보통 한 해 지출되는 지도사업비는 2억~3억 원 수준인데 이 조합장이 취임한 이후 그 규모는 12억 원가량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이 조합에서 근무하는 한 조합원은 “우리 조합장은 각종 모임과 경조사에 빠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구청장 선거에 나가기 위한 것이란 말이 파다하다. 농민을 위해 쓰여야 할 지도사업비가 조합장 출세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고 분개했다. 이어 그는 “조합장 선거를 하면 지도사업비로 조합원들에게 밥을 산다. 조합장들이 지도사업비를 자신의 임기연장과 입지구축에 쓰고 있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일부 조합장들이 명절에 쌀, 은수저세트 등 조합원들을 위한 선물을 살 때 지도사업비를 사용한 점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액수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노조는 ‘조합장들이 2만~3만 원 수준의 선물을 산 후 영수증은 10만 원으로 처리한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조합장은 “혹시 실수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일부러 그런 적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노조에 따르면 지도사업비를 담당하는 부서에 자신의 최측근을 임명한 조합장들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이 자리에 자신의 아들을 채용한 경우도 있었다. 이 조합장은 각 지역농협이 채용할 수 있는 ‘영농지도역’ 직에 아들을 뽑은 후 지도사업비 집행부서에 앉혔다. 그리고 얼마 후에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일선 조합원들은 “비정규직인 영농지도역은 정규직 전환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비리는 부산지역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다른 지역들에서도 비리 척결 주장이 계속 터져 나오고 있다.
뿐만아니라 지역조합들은 지난 1월 16일 농협중앙회가 의욕적으로 선보인 ‘농협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한다. 농협중앙회장의 비상임화와 연임 제한, 인사권 축소 등 지배구조 개선안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만 조합 통폐합, 조합장 비상임화, 조합 선택권 확대 등과 같은 일선 조합에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반대 목소리가 높다. 노조 전남지역의 한 관계자는 “비리는 농협중앙회가 저질러 놓고 그 책임은 지역조합에 전가하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협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전망은 불투명하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부정적인 기류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회장 간선제와 조합장 비상임화를 놓고 여·야의 충돌이 예고되고 있다. 지난 2007년과 지난해 8월에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제출됐다가 국회에서 흐지부지된 적이 있어 이번 역시 개혁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 한 관계자는 “(개혁이) 좌초될 경우 개혁을 최우선과제로 삼았던 최원병 회장의 리더십이 훼손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