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도 출산도 ‘쉬쉬’…모두를 속였다
로레타 영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레트 버틀러로 더 알려진 클라크 게이블과 사이에서 사생아를 낳았다.
로레타 영이라는 여배우가 있었다. 한때 10년 동안 자신의 이름을 내건 ‘로레타 영 쇼’(The Loretta Young Show. 1953~63)를 진행하기도 했던 그녀는 무성영화 시기에 데뷔해 1930~40년대에 스타덤에 오르며 <농부의 딸(The Farmer’s Daughter)>(1947)이라는 영화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배우다. 스크린 위에선 밝게 웃으며 아름다운 매력을 발산했지만, 사실 그녀는 복잡한 내면과 억압적인 심리 상태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그녀의 어머니 글래디스는 엄격한 가톨릭의 종교적 윤리관을 딸에게 강요했다. 로레타 영은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1930년에 출연한 <2층의 미스터리>라는 영화에서 만난 그랜트 위더스라는 배우와 사랑에 빠진 영은 연인과 함께 어머니 몰래 애리조나 지역으로 도망쳐 결혼을 했다. 그때 영의 나이는 17세였다. 어머니 글래디스는 가톨릭교도가 아닌 남자와의 결혼을 반대하며 돌아오라고 했지만 영은 어머니의 말을 무시하며 결혼을 강행했다(결국은 1년 뒤 이혼한다). 이 일 이후 어머니에게 순종하려 했던 걸까? 다음에 사귄 남자는 아일랜드 출신의 가톨릭 신자였다. 바로 스펜서 트레이시. 영보다 13살 많았고 9번 오스카 후보에 올라 두 개의 트로피를 가져갔던 명배우였다. 그런데 결정적 결함이 있었으니…. 당시 트레이시는 두 아이를 둔 유부남이었다.
사랑에 빠진 로레타 영에게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에 의해 심어진 윤리와 도덕의 계율은 그녀를 괴롭혔고, 영은 고해성사를 하며 신부님에게 스펜서 트레이시와의 육체관계를 털어놓았다. 신부는 “그 관계를 끝내지 않으면 죄를 사해 줄 수 없다”며 경고했고, 이외에도 만만치 않았던 주변의 압박 속에서 결국 영과 트레이시는 관계를 끝냈다. 하지만 다음 해인 1934년 로레타 영은 <야성의 부름>이라는 영화에서 당시 할리우드에서 ‘킹’(King)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던 클라크 게이블을 만난다. 그는 아예 무신론자였고 당시 두 번째 아내와 결혼 생활 중이던 유부남이었으며 로레타 영 외에 엘리자베스 앨런이라는 여배우와도 내연의 관계였다.
로레타 영, 클라크 게이블
<십자군>(1935) 촬영 기간에 로레타 영은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게이블에게 전화를 걸었고, 게이블은 영에게 “제대로 몸 관리를 했어야 했던 것 아니냐”며 마치 임신이 그녀 책임인 것처럼 핀잔을 주었다.
충격을 받은 로레타 영은 실의에 빠져 있었다. 이때 계속 게이블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게이블은 당장 오겠다고 했다. 영은 게이블이 낙태를 시키려 한다고 생각했다. 두려웠다. 가톨릭의 관점에서 낙태는 씻을 수 없는 큰 죄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게이블에게 절대 오지 말라고 소리쳤고, 일단 촬영을 마쳤다. 이후 영은 건강상의 문제로 해외에서 요양을 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영국으로 향했지만 그곳엔 취재진이 들끓었다. 결국 미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할리우드 베니스 비치의 집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하지만 저널은 곧 그녀의 소재지를 알아냈고 결국 로레타 영은 쇼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도로시 매너스라는 칼럼니스트에게 특종을 주겠다며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몸이 안 좋으니 침대에 기대 누워 인터뷰를 하겠다며, 두꺼운 이불로 배를 감싸 임신 사실을 숨겼다. 미봉책이지만 일단 그렇게 로레타 영은 대중을 속였고, 매너스의 인터뷰 내용은 미국의 수많은 신문에 실렸다.
1935년 11월 6일 문과 창문을 꽁꽁 닫은 집에서 로레타 영은 딸을 낳았다. 뉴욕에 있는 게이블에게 보낸 전보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름다운 푸른 눈의 금발 여자 아이. 오늘 아침 8시15분.” 11월 18일에 게이블은 뉴욕에서 돌아왔고, 기자들에게 아내와 별거 중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기를 보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산후 조리를 마친 후 로레타 영은 컴백했다. 아이는 집에 상주하는 유모가 키웠다. 그리고 다음해 1월 게이블은 드디어 자신의 첫 아이를 볼 수 있었다. 늦은 밤의 방문이었고, 아이를 안은 후 게이블은 로레타 영에게 아기 침대를 사라며 400달러를 건넸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