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사정’ 둑 다시 터졌다
▲ 청와대에서 열린 공공기관 합동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 옆자리에 앉은 김종신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 ||
미국 법무부 발표로 이번 사건이 국내에 알려진 후 한수원은 “자체 조사를 통해 철저하게 진위를 가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수원 감독기관인 지식경제부의 이윤호 장관도 “사실로 확인될 경우 사장을 포함,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결국 지난 10일 한수원은 “미국의 한 밸브업체 임원이 재판과정에서 5만 7000달러가량을 한수원 관계자에게 송금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에 대해 검찰 수사를 의뢰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현재 한수원은 2003년부터 2007년 사이 밸브 구매를 담당했던 직원들 중 혐의자를 추려놓은 상태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은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수원은 2007년 8월경 문제의 밸브업체로부터 통보를 받은 데다 한 달 전인 지난 1월에 조사를 시작해서 한 달이 넘도록 아무런 결과를 내놓지 않다가 사건이 불거진 지 이틀 만에 ‘용의자 색출’까지 완료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미리 모든 것을 파악해 놓은 상태에서 문제가 커질 조짐을 보이자 뒤늦게 조치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문이 떠오르는 것이다. 검찰 수사 의뢰도 이미 수사가 예정돼 있었다는 점에서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은폐는 있을 수 없다. 진상 확인을 위해 최대한 협조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어찌 됐건 한수원 뇌물 수수 의혹은 검찰 수사를 통해 실체가 규명될 전망이다. 또한 총리실과 감사원 등에서도 이번 사건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부터 사정기관들은 공기업을 집중적으로 조사해왔다. 여기엔 한국전력과 그 자회사들도 포함됐었다. 하지만 금품수수 의혹을 받던 김영철 전 한국중부발전 사장이 자살하면서 사실상 ‘올 스톱’된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기업 사정이 재개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한수원 뇌물 수수 사건이 국제적인 망신으로 여겨지는 만큼 공기업 사정에 대한 요구가 거세질 듯하다. 부담 없이 (사정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총리실 관계자도 “공기업 개혁을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 비리에 대한 부분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며 이를 뒷받침했다.
정치권도 이번 임시국회에서 한수원 문제를 다룰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의도 주변에서는 그동안 한수원의 대형 입찰과 관련해 오르내렸던 몇몇 의혹들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여기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지난 정권의 몇몇 인사들에 대해서는 이미 검찰이 대부분의 조사를 마쳤다는 전언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J 씨로 한수원 임원으로부터 수억 원의 돈을 받고 인사 청탁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한수원은 초상집 분위기다. 벌써부터 대대적인 ‘물갈이론’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재신임 받은 김종신 현 사장 교체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한수원의 한 관계자는 “그렇게 큰 액수도 아니고 아직 우리가 받았다는 것이 입증된 것도 아닌데 죄인 취급하는 것은 곤란한 것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