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치명적 죄악”…65년 만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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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레타 영과 사생아 딸 주디(원안 왼쪽).
1935년에 클라크 게이블의 딸 주디를 낳은 로레타 영은 일단 아이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성 엘리자베스 병원으로 보냈다. 그리고 몇 달 뒤 그녀는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주디를 자신의 ‘양녀’로 입양했다. 하지만 할리우드 일각에선 로레타 영의 진실에 대해 수군대는 사람들이 생겼다. 영은 그들의 의심을 잠재우기 위해 언론을 이용했다. 그녀는 1937년에 당대 최고의 가십 칼럼니스트인 루엘라 파슨스에게 연락해 인터뷰를 요구했고, 자신이 세 살 된 제인과 두 살인 주디를 입양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이었다. 처음부터 제인이라는 입양아는 없었다. 주디 한 명만 입양했다고 하면, 그녀와 주디 사이의 관계를 의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류상의 입양아’를 만든 것이었다. 기사가 나온 지 몇 주 뒤 로레타 영은 “아쉽게도 제인은 생모가 다시 데려갔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스타들의 사생활에 대해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할리우드의 호사가들을 속이기엔 로레타 영의 방법은 너무 어설펐다. 가장 두려운 건 주디가 성장하면서 점점 클라크 게이블을 닮아갈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게이블 특유의 귀 모양이 주디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영은 주디를 파파라치로부터 철저하게 봉쇄했고, 매일 밤마다 잘 때 기구를 이용해 딸의 귀를 꾹꾹 눌러 주었다. 그리고 주디가 좀 더 자랐을 땐 귀 부분을 성형수술 해주었다.
1939년에 클라크 게이블은 세 번째 아내인 캐럴 롬바드와 결혼했고, 다음 해 로레타 영은 작가이자 프로듀서였던 토머스 루이스와 결혼했다. 루이스는 주디를 따스하게 딸로 받아들여 ‘주디 루이스’라는 이름을 주었고, 토머스 루이스와 영은 1940년대에 두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불안한 상황은 계속 되었다. 진실은 새어나가기 마련이었고, 점점 자라나는 주디의 주변엔 그녀의 생부와 생모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클라크 게이블과 로레타 영은 <키 투 더 시티(Key to the City)>(1950)라는 영화에서 공연한다. 그들은 15년 전에 그들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로맨틱 코미디의 연인이 되어 사랑을 나누었다.
이 시기 즈음이었다. 주디는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직접 만나게 된다. 어느 날 오후 게이블은 같은 영화에 출연한 ‘동료 연기자’로서 로레타 영의 집을 방문했고, 몇 시간 동안 머물며 자신의 딸인 주디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1994년에 쓴 자서전에서 주디 루이스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클라크 게이블이라는 당시 할리우드 최고의 거물 배우와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함을 느꼈다.”
자신이 아버지라는 걸 감춘 채 이야기를 나눈 게이블은 주디의 이마에 따뜻한 키스를 남기고 사라졌다. 당시 주디는 15세였다.
결국 진실은 조금씩 드러났다. 스무 살이 된 주디는 해외여행을 위해 여권을 만들면서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로레타 영이 자신의 생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후 로레타 영과 주디의 갈등은 점점 더 커져갔다. 로레타 영은 스크린에서 텔레비전으로 활동 영역을 옮겨 ‘로레타 영 쇼’를 이끌며 승승장구하고 있었고, 주디는 작가 겸 프로듀서로 역시 텔레비전 산업의 유망주로 성장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업계의 라이벌이 된 모녀에 대해 언론은 조명하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로레타와 주디 사이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커져갔다.
그리고 1986년 주디는 자신의 배다른 남동생을 찾아간다. 클라크 게이블이 다섯 번째 아내에게서 낳은 존 클라크 게이블은 주디보다 여섯 살 아래였다. 만날 당시 존은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주디가 찾아갔을 때 전혀 알아보지 못했던 것은 물론, 자신에게 누나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진실은 밝혀질 수밖에 없었다. 신호탄은 1994년에 주디가 내놓은 자서전이었다. 로레타 영의 딸로 살아가면서 겪었던, 스트레스로 가득 찬 삶에 대한 책으로 인해 로레타 영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클라크 게이블과 로레타 영과 주디 루이스와의 관계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2000년. 로레타 영이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죽음 이후 회고록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로레타 영은 20대 초반에 클라크 게이블을 만나고 딸 주디를 낳은 후 65년 동안 소문만 무성하게 흘린 채 감춰야 했던 자신의 진실을, 최초로 털어놓았다. 그녀는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 낳은 딸 주디가 자신에겐 “걸어다니는 치명적인 죄악”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거의 평생을 ‘도덕’과 ‘윤리’와 싸워야 했고, 그 대가는 딸의 정신적 고통과 진실을 감춰야 하는 현실이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