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팀 저팀 다 가는 ‘하이에나걸’ 수두룩
‘시구(始球)’의 사전적 의미는 시즌 개막전이나 올스타전, 챔피언 결정전 등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경기를 치를 때, 경기가 시작에 앞서 유명 인사가 공을 던지는 것을 뜻한다. 과거 프로야구 시구는 특별한 날에만 이뤄졌고, 시구자도 사회 각계 인사가 맡았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프로야구 시구식은 매일 열린다. 시구자도 연예인 일변도다. 그래서일까. 요즘 야구계에선 “시구가 무슨 연예인 홍보 무대냐”며 “무개념 연예인 시구 때문에 시구의 의미조차 퇴색한 지 오래”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5월 3일 LG-두산전이 열린 잠실구장. 이날도 관례행사처럼 시구식이 열렸다. 이날 시구자는 배우 클라라. 양팀 더그아웃에서 “클라라가 누구냐”는 말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선수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구자의 의상 때문이었다. 클라라는 두산 유니폼 상의를 입고 나왔지만, 리폼을 했는지 영락없는 배꼽티였다. 하의는 몸에 제대로 밀착된 줄무늬 레깅스. 양팀 선수들은 저마다 호기심을 떠나 난감하다는 표정들 일색이었다. 다행히 시구는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의상 논란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남성연대 성재기 상임대표는 한술 더 떠 자신의 트위터에 ‘클라라의 시구복장은 1980년대만 해도 매춘부의 옷차림이었다’며 ‘여자들이 머리 말고, 몸을 앞세우는 세상은 질이 떨어진다’고 비난을 쏟아냈다. 모 야구해설가도 “야구장은 야구선수들의 직장이자 일터다. 클라라가 다른 회사에 갈 때도 이런 식의 복장으로 나타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 해설가는 “클라라란 무명배우가 의도적으로 의상논란을 야기시켜 매스컴을 타려던 게 아닌가 싶다”며 “결과적으로 인터넷 포털사이트 메인을 장식했으니, 클라라는 대성공을 거뒀고, 야구계는 무명배우의 쇼에 실컷 놀아난 꼴”이라고 혀를 찼다.
물론 클라라의 시구 복장을 옹호한 이도 있었다. 한 누리꾼은 “속옷을 입고 나온 것도 아닌데 왜들 난리인지 모르겠다. 옷은 그렇게 입었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시구에 임하지 않았느냐”며 “야구공도 제대로 못 잡는 연예인보단 훨씬 성의가 느껴져 좋았다”고 옹호했다.
# 시구로 ‘배신’ 때리는 연예인들
클라라가 지난 5월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LG전에 시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클라라의 시구가 해프닝으로 끝났다면 방송인 박은지의 시구는 두고두고 뒷말을 남겼다. 이유가 뭘까. 박 씨의 ‘말 바꾸기’가 화근이었다. 5월 4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삼성-롯데전에 앞서 박 씨가 시구자로 마운드에 섰다. 롯데 유니폼 상의를 입은 박 씨는 시구가 끝나고서 롯데 더그아웃을 찾아 “롯데 파이팅”하고 덕담을 던졌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롯데팬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이날 경기와 상관없는 두산팬들은 분노를 터트리기까지 했다. 왜냐? 2010년 9월 박 씨가 잠실구장에서 두산 유니폼을 입고 시구자로 나선 전력 때문이었다. 한 롯데팬은 “불과 3년 전 박 씨가 두산 옷을 입고 시구자로 나섰고, 시구가 끝나고선 ‘두산 파이팅’을 외쳤다”며 “당시 두산의 상대팀이 바로 롯데였다”고 폭로했다.
두산팬들은 “3년 전엔 두산이 이기고, 롯데가 지길 바랐던 박 씨가 이젠 ‘롯데 파이팅’을 외치고 다닌다”며 “자신의 홍보를 위해서라면 9개 구단을 순례하며 시구자로 나설 사람”이라고 박 씨를 힐난했다.
두산 측도 박 씨의 롯데 시구에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두산 관계자는 “박 씨가 롯데 측 시구자로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3년 전엔 우리 팀 팬이라고 해놓고 지금은 ‘원조 롯데팬’처럼 행동하는 걸 보고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고 밝혔다. 롯데 측은 “박 씨가 과거 두산 쪽 시구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롯데 관계자는 “좋아하는 팀이야 수시로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냐”며 “박 씨뿐만 아니라 많은 연예인이 복수의 팀에서 시구자로 나섰다”고 설명했다.
# 스타들 시구에 집착하는 까닭
2009년 KIA 경기에서 시구를 하는 박시연. 일요신문 DB
시구계의 하이에나들은 박 씨 말고도 꽤 된다. ‘미남 배우’ J 씨는 영화 홍보 필요성을 느끼거나 기업 스폰서의 제안이 오면 팀을 가리지 않고 시구자로 나선다.
‘시구 하이에나’들이 많은 건 연예인 상당수가 시구를 개인 홍보 무대로 여기기 때문이다. 연예매니지먼트사인 <스타폭스> 이대희 대표는 “시구 사진이 찍히면 실시간으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전송되고, 곧바로 검색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며 “이름이 덜 알려진 연예인들은 자신을 알리는 수단으로 시구를 하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A급 스타들이 시구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대표는 “배우의 경우 영화나 드라마 홍보, 가수는 새 음반이 나왔을 때 시구를 이슈 삼는 게 보통”이라며 “광고주의 요청으로 마지못해 시구자로 나서는 연예인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야구 자체와 특정팀을 좋아해 사심 없이 시구자로 나서는 연예인도 많다. 김장훈이 대표적이다. 평소 두산 골수팬임을 자처하는 김장훈은 두산 시구 때만 마운드에 선다. 그는 시구가 끝나고서도 야구장을 떠나지 않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열성적으로 두산을 응원한다.
소녀시대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최고의 걸그룹 소녀시대를 시구자로 모시려고 여러 구단에서 요청했지만, 소녀시대는 오직 두산 시구에만 응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측은 “2007년 무명의 소녀시대가 막 데뷔했을 때 마침 두산에서 시구 제안이 왔다”며 “당시 시구에서 멤버 유리가 시구를 잘한 통에 전국적으로 소녀시대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 스토리 있는 시구자를 개발하라
지난 4일 롯데 경기에서 시구를 하는 박은지.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덧붙여 구 교수는 “시구의 격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시구 횟수도 지금보다 줄여 ‘시구가 특별한 행사’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시구의 바른 예 넥센 ‘3·3·3 법칙’
연예인3 : 스폰서3 : 일반인3
9개 구단 홍보팀 및 마케팅팀 실무자들은 날마다 피가 마른다. 시구 때문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언제부터인가 시구식이 연중행사가 됐다. 그 때문에 시구자를 물색하고 선정하느라 골치가 아프다”며 “시구자 섭외를 위해 하루 종일 전화통을 붙잡고 살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구단 관계자는 “시구자를 섭외했다고 만사가 해결되진 않는다”며 “시구식이 열리기까지 돌발사고가 벌어질까봐 전전긍긍하기 일쑤”라고 밝혔다.
사실이다. 이 구단은 시구를 약속한 연예인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된 바람에 예정된 시구식을 갑작스레 취소한 경험이 있다. 어떤 시구자는 시구식 하루 전에 전화를 걸어와 “급한 스케줄이 잡히는 바람에 시구식을 못할 것 같다”고 불참을 통보해 구단 관계자들을 황당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구단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우리도 연예인 일변도의 시구 문화가 개선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솔직히 연예인 시구를 보려고 구장을 찾는 야구팬은 거의 없다”며 “시구가 화제가 돼 야구팬이 느는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구단들이 연예인 시구에 매달리는 이유가 뭘까.
수도권 모 구단 마케팅 팀장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먼저 섭외의 용이성이다. “우리도 최근 이슈가 되는 사회 각계 각층 인사를 시구자로 모시고 싶다. 하지만, 생각보다 섭외가 어렵다. 반면 연예인들은 시구에 적극적이라, 상대적으로 섭외가 쉽다.”
다음은 언론의 관심이다. “웬만한 여성 연예인이 시구자로 나서면 언론사들이 이를 놓치지 않고, 일제히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원체 언론의 시구 관심이 높다 보니 연예인, 그것도 여성 연예인을 써야 주목받을 수 있다.”
연예인 시구가 많은 대표적인 팀은 두산이다. 두산은 한 시즌 시구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여성 연예인이다. 반면 여성 연예인에 집착하지 않는 구단도 있다. 넥센이 그렇다. 넥센 홍보팀 관계자는 “우리 팀 시구는 ‘3·3·3’ 법칙에 따라 운영된다”고 말했다.
“‘우리 팀 시구자의 30%는 연예인이다. 연예인 섭외는 전적으로 화제 생산 차원이다. 나머지 30%는 스폰서 관계자들로, 우리를 도와주는 스폰서에 대한 배려 차원이다. 마지막 30%는 보통사람들로, 경찰·군인·소방수·장애인·청소부 등 우리 이웃들의 잔잔한 감동을 공유하자는 차원이다.” 그래서일까. 넥센은 9개 구단 가운데 가장 시구식을 효율적으로 운영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연예인3 : 스폰서3 : 일반인3
구단 관계자는 “시구자를 섭외했다고 만사가 해결되진 않는다”며 “시구식이 열리기까지 돌발사고가 벌어질까봐 전전긍긍하기 일쑤”라고 밝혔다.
사실이다. 이 구단은 시구를 약속한 연예인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된 바람에 예정된 시구식을 갑작스레 취소한 경험이 있다. 어떤 시구자는 시구식 하루 전에 전화를 걸어와 “급한 스케줄이 잡히는 바람에 시구식을 못할 것 같다”고 불참을 통보해 구단 관계자들을 황당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구단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우리도 연예인 일변도의 시구 문화가 개선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솔직히 연예인 시구를 보려고 구장을 찾는 야구팬은 거의 없다”며 “시구가 화제가 돼 야구팬이 느는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구단들이 연예인 시구에 매달리는 이유가 뭘까.
수도권 모 구단 마케팅 팀장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먼저 섭외의 용이성이다. “우리도 최근 이슈가 되는 사회 각계 각층 인사를 시구자로 모시고 싶다. 하지만, 생각보다 섭외가 어렵다. 반면 연예인들은 시구에 적극적이라, 상대적으로 섭외가 쉽다.”
다음은 언론의 관심이다. “웬만한 여성 연예인이 시구자로 나서면 언론사들이 이를 놓치지 않고, 일제히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원체 언론의 시구 관심이 높다 보니 연예인, 그것도 여성 연예인을 써야 주목받을 수 있다.”
연예인 시구가 많은 대표적인 팀은 두산이다. 두산은 한 시즌 시구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여성 연예인이다. 반면 여성 연예인에 집착하지 않는 구단도 있다. 넥센이 그렇다. 넥센 홍보팀 관계자는 “우리 팀 시구는 ‘3·3·3’ 법칙에 따라 운영된다”고 말했다.
“‘우리 팀 시구자의 30%는 연예인이다. 연예인 섭외는 전적으로 화제 생산 차원이다. 나머지 30%는 스폰서 관계자들로, 우리를 도와주는 스폰서에 대한 배려 차원이다. 마지막 30%는 보통사람들로, 경찰·군인·소방수·장애인·청소부 등 우리 이웃들의 잔잔한 감동을 공유하자는 차원이다.” 그래서일까. 넥센은 9개 구단 가운데 가장 시구식을 효율적으로 운영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